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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Dec 27. 2023

113. 단점과 잘 지내려면?

"거기까진 좋다니까? 다음이 문제야. 주저앉아도 너무 주저앉잖아. 그러니까 드라이브 스윙이 제대로 나올 리가 있나."


서비스에 이어 넘어오는 핌풀 고수님 공을 백드라이브로 넘긴 것까지는 좋았다. 다음 공이  화쪽으로 깎여서 커트로 오는데  자신 있게 포핸드 드라이브를 걸지 못한다. 이도 저도 아닌 드라이브에 보다 못한 관장님이 한 말씀하신다. 자리를 잡았다 일어나면서 스윙을 해야 하는데 앉아도 너무 주저앉는단다. 앉아서 일어나면서 걸어야 하는데 앉았는데 또다시 앉으면서 건다는 거다. "진짜요?"  미치고 팔짝 뛰겠다. 레슨 시간에는 그렇게도 잘 걸리던 포핸드 드라이브가 왜 핌풀 러버 고수님만 만나면 이렇게 죽을 쑤는지.


원인을 내 맘대로 자체 분석하자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 데 있다. 평소 백 드라이브나 쇼트 몰빵 하다시피 연습해서 그렇다. 그러면서 내심 뿌듯했다. 쇼트나 백 드라이브가 원하는 대로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코스 가르기가 한결 편해졌고 쉬워졌기에 제대로 가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나의  주 득점 포인트는 상대의 서비스를 쇼트나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한 후 돌아서 스매싱으로 빵 쳐서 점수를 내거나 화쪽으로 오는 리시브 공을 스매싱으로 백 쪽과 화쪽으로 코스를 갈라 점수를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핌풀 고수님과의 이러한 방식이 먹히질 않는다. 핌풀인 경우 핌풀러버의 특성상 백드라이브 후에도 커트 공이 오는데 이 공을 처리하는데 미숙하다. 백 드라이브 후 돌아서 포핸드 드라이브를 걸어 점수를 내거나 화쪽으로 오는 커트 공 역시 포핸드 드라이브를 걸어 결정구를 내야 하는데 이놈의 결정구를 못 만들어 내는 데 있다. 백 드라이브로는 결정구를 내기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연신 백드라이만 걸고 있다. '이렇게 백 드라이브만 걸어선 안 돼. 포핸드 드라이브로 결정구를 내란 말이야' 속으로 힘껏 외쳐보지만 몸은 백 드라이브하고 있다. 왜 이러는 거냐고요?


포핸드 드라이브가 약하다는 걸 눈치챈 고수님은 계속해서 화쪽으로  커트 공을 보내고 드라이브에 자신 없는 나는 어정쩡한 커트를 하거나 속도가 장난이 아니게 느린 루프 드라이브를 건다. 내가 생각해도 드라이브 거는 시늉만 하고 있다. 좌 백드라이브, 우 포핸드 드라이브를 멋지게 구사하는 탁구인이 되는 게 꿈인데 치우쳐 있어도 백에 너무 치우쳐 있다.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 낀다.


두 번째는 포핸드 드라이브에 대한 자신감 부족이다. 백드라이브에 대한 믿음은 타의 추종을 불어할 만큼 인 것과 비교하면 가히 하늘과 땅 차이다. 내 드라이브를 내가 믿지 못한다. 자꾸 '연습 부족이야. 백드라이브만큼 연습하지 않았잖아.' 합리화시킨다. "나 한 번만 믿어 보라니까?" 아무리 포핸드 드라이브가 그렇게 말해도 갖은 핑계를 대면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믿음은 연습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신봉하고 있기에 백 드라이브 연습량과 비교하면서 가뜩이나 위축되어 자신감을 상실한 포핸드 드라이브를 점점 구석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렇게 믿질 못하니 드라이브가 자신 있게 나오겠냐고요?


원인 분석은 이제 끝났고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백 드라이브에 편향된 탁구를 어찌할 거냐고? 포핸드 드라이브에 대한 자신감 부족을 어찌할 거냐고? 이렇듯 인생은 매번 문제를 던져주고  '너는 어떻게 할 거냐?'라고 물어온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탁구를 대하는 태도가 더 나아가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리라.


우선  좌우 균형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인정하려 한다. 안재현 선수를 예로 들면 포핸드 드라이브가 장기인데(일명 화잡이) 백에서 밀려 포핸드 드라이브 칠 기회가 없어 세계 대회에서 고전한다고 한다. 그래서 유남규 코치가 백 쪽 연습에 시간을 줄 테니 여유를 가지고 연습해 보라고 시간을 주었다고 한다. 국가 대표임에도 좌우 밸런스를 이루는 게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다. 임창국의 '핑퐁타임'에 자주 출현하는 오픈 2부 이도현 선수 역시 백 드라이브에 주력하면서 그렇게 잘 되던 포핸드 드라이브가 잘 안 된다고 푸념한다. 감히 비교조차 안 되지만 그러한 과정이 선수에게나 고수에게나 누구나 있다는 사실은 위로가 된다. 마치 "괜찮아. 너만 그러는 게 아니야. 그냥 과정 중에 있을 뿐이야."라고 말해 주는 것만 같다.


그래서 한 번에 무리하게 목표를 세워 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 대신에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실행하기로 했다.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포핸드 드라이브를 대하는 마음부터 달리 하기로 했다. 그 친구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로  했다. 무조건적인 믿음. 묻지고 따지지 않겠다는 믿음. 어제는 핌풀 고수님과의 3구 연습에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주문을 외우면서 파이팅을 외쳤다. '그래 네 스윙에 자신감을 가지라고. 넌 포핸드 드라이브를 잘 걸 수 있다고." 주문이 통한 건지 전날보다 드라이브 스윙이 빨라졌고 결정구도 3개나 낼 수 있었다. 움츠러들었던 스윙이 실수를 해도 패기가 흘러넘쳤다. 판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것만으로도 희망이 보였다.


단점 없는 사람이 있을까?  단점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가 각자의 숙제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어린 시절 읽었던  <바람과 해님>이라는 동화가 생각난다. 결국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해님이었듯이 나를 바꾸는 것도 어쩌면 해님처럼 따사로운 햇빛일지 모른다. 그러니 포핸드 드라이브라는 친구를 매번 하지 않은 숙제처럼 여기지 말고 정복해야 할 그 무언가로도 여기지 말고 다정한 친구처럼 대해야겠다. "친구야. 앞으로는 너를 위축시키는 말 말고 너를 기운 내게 하는 말들만 해 줄게.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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