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필사의 말들) 유발 하라리『사피엔스』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사람들이 가장 개인적 욕망이라고 여기는 것조차 상상의 질서에 의해 프로그램된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휴가에 돈을 많은 돈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낭만주의적 소비지상주의를 진정으로 소비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는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향해 스스로 활짝 열어야 하고, 다양한 관계들을 두루 맛보아야 하며, 평소와 다른 요리를 시식해봐야 하고, 다른 종류의 음악을 감상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이다. 이 모두를 실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반복되는 일상과 친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먼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 냄새와 취향과 규범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우리는 새로운 경험이 어떻게 나의 시야를 넓히고 내 인생을 바꾸었는가 하는 낭만주의적 신화를 되풀이해서 듣는다.”(p.173)
“소비지상주의는 우리에게 행복해지려면 가능한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TV의 모든 광고는 어떤 물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면 우리 삶이 어떻게 나아진다고 말하는 또 하나의 신화다. 다양성을 권하는 낭만주의는 소비지상주의와 꼭 들어맞는다. 여행 산업은 비행기표나 호텔 객실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경험을 판다. 파리는 도시가 아니고 인도는 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경험이다. 그것을 소비하면 우리의 시야가 넓어지고 인간으로서의 잠재력이 실현되고, 더 행복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여행은 어떤 독립된 욕망을 반영하기라기보다는 낭만주의적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열렬한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p.174)
유발 하라리는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며 허구 덕분에 우리가 단순한 상상을 넘어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고, 공통의 신화들을 짜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전설, 신화, 신, 종교 덕분에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어 보잘것없었던 유인원들이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에 말에 따르면 낭만주의와 소비지상주의 역시 하나의 신화다. 이 문장이 인상적이었던 건 일상에서 내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욕망이 사실 상상의 질서에 의해 프로그램화되어 있다는 말이 불편해서다. 그 역시 내가 느끼는 것처럼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들의 삶을 규율하는 질서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후회하지 말자. 좋았다면 멋진 것이고 나빴다면 경험인 것이다.” 내 모토 중 하나다. 누구의 말인지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경험하는 건 뭐든 좋은 거야’라는 애초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지지해 주는 말이었기에 냉큼 포스트잇에 적어 냉장고 문에 붙여놓았다. 그리곤 이 말이 무슨 마법의 말이라도 되는 양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이 말을 되풀이하면서 스스로를 세뇌시켜 왔다. 경험은 무조건 좋은 거라고 시도 때도 없이 스스로 알아서 낭만주의적 신화를 되풀이해 왔다.
.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경험 제일주의가 내 삶을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어도 먹을 건 덜 먹어도 여행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무조건 삶의 우선순위였다. 너무 아껴 친정엄마로부터 지독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당시로서는 꽤 금액이 드는 서유럽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무슨 신의 계시라도 받은 양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떠났고 여행 후에는 그런 과감한 결정을 내린 나 자신을 칭찬했다. ‘봐, 나는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하는 사람이라고.’ 자부심 또한 흘러넘쳤다.
내게 있어 다양한 경험은 마치 성경의 교리처럼 절대적이었다. 파리는 도시가 아니었고 영국은 나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경험이었다. 가정 경제 내에서 무리가 되지 않는 한 국내, 해외여행은 물론 공연, 전시 등 가리지 않고 다녔다. 혼자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전시, 공연 등을 보러 다니는 모임에 들어가 다양한 문화체험을 해 온 지 벌써 13년째다. 모임의 이름 역시 ‘문화체험’이다. 책 모임 역시 책을 읽는 목적도 있었지만 책을 통해 경험해 보지 못하는 걸 대리만족하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그야말로 낭만주의의 열혈 신자였다.
요즘 나의 낭만주의는 소비지상주의와 콜라보를 하며 의생활에서 정점을 찍고 있다. “많이 입어봐야 다양한 옷을 경험해 봐야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을 수 있다.”라는 신화에 빠져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주문하고 반품하는 걸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반품비가 아까워 한참을 고민했을 텐데 ‘다양한 옷을 입어보라잖아. 반품비는 경험에 대한 비용이라고 치자. 아웃렛에 가는 비용보다는 싸잖아.’라며 이러한 신화를 되풀이한다. 아웃렛에서 옷을 사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드는 옷을 하나도 못 사 허탕을 치고 돌아와도 내 모토를 들이밀면 장땡이다. “후회하지 말자. 좋았다면 멋진 것이고 나빴다면 경험인 것이다.” 아!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도 만들었다. 이 말은 모든 경험을 합리화시키고 또 다른 경험을 하라고 부추긴다. 내게 있어 경험은 절대적인 선이 되었다. 아니 내가 믿는 종교가 되었다. 믿나이다. 믿습니다.
이런 내게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네 욕망이 진짜 네 욕망이야?” 사실 내 욕망이라고 철석같이 믿어왔던 것이 내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상상의 질서에 의해 프로그램된 것이었다니! 그저 낭만주의와 소비지상주의 시대를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에 불과했다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그의 관점으로 TV나 유튜브를 본다. 낭만주의적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열렬한 믿음이 흘러넘치는 말들로 가득하다. “여기는 죽기 전에 꼭 와 봐야 하는 곳입니다.” “이걸 먹어보지 않으면 정말 후회하실 겁니다.” “이걸 사면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온 세상이 이러한 신화를 되풀이하며 돌림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그래서 어쩔 건데? 답답한 내게 그는 다시 한번 팩폭을 날린다.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우리가 감옥 벽을 부수고 자유를 향해 달려간다고 해도, 실상은 더 큰 감옥의 더 넓은 운동장을 향해 달려가는 것일 뿐이다.” 아 놔, 진실을 알았음에도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니 그럼 어쩌라는 거지? 그가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답이 되려나? “역사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배운다. 역사를 배움으로써 우리를 얽어매고 있었던 자유롭지 못한 생각들이 있는가? 그걸 보고 깨닫고 거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2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낭만주의와 소비지상주의 시대는 지금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몇 백 년, 몇 천년 지난 다음에도 그렇게 비춰질까?
이런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당장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세상이 이런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아는 것일 뿐. 그럼에도 이런 사실을 안다는 건 경험 제일주의자인 나를 잠깐은 멈춰 서게 하지 않을까? 무언가를 욕망할 때 스스로에게 한 번은 물어볼 것 같다. “네 욕망이 네 욕망이더냐?” 그런데 큰일이다. 다음 주 문화체험 모임에서 ‘가드너와 함께하는 비밀정원’ 프로그램을 단체로 신청해 천리포 수목원 미공개지역을 돌아보기로 했는데 유발 하라리의 이 말이 귓전에 맴돌 것 같다. 에구 아는 것도 병이다. 차라리 몰랐으면 미지의 장소까지 경험하는 스스로를 한없이 칭찬하며 뿌듯해할 텐데. 망했네 망했어. 기대했던 일정인데 갑자기 김이 빠진다. 앞으로의 여행은 또 어쩔 거냐고? 일상 전반에 깔려 있는 경험주의를 어찌할 거냐고요. 에라 모르겠다. 아는 거라곤 일상에 조그마한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뿐. 이미 균열은 김 빠지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