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10년 넘게 해 오고 있다는 걸 아는 지인들이 가끔 물어올 때가 있다. “제일 좋아하는 책이 뭐예요?” 예전에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지만 요즘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요.”라며 마치 내가 쓴 책인 양 눈을 반짝이면서 말한다. 내가 쓴 책인 양? 물론 어림도 없는 소리인 줄 나도 안다. 그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같은 인간인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깜짝깜짝 놀라며 해박하고 방대한 지식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문장력은 또 어떠한가? 분명 인류의 빅히스토리라 사실적인 서술이 대부분인데 중간중간 허를 찌르는 문장에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을 수 없다.
그러면 나는 이 책이 왜 그렇게 좋을까? 4주에 걸친 토론, 한 달에 걸친 토할 것 같았던 62장의 필사, 일주일에 걸친 필사본 복습이 지난주 토요일에서야 비로소 끝났다. 복습이라 함은 A4용지에 인쇄된 필사본 문장들에 짧게나마 내 생각을 적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상과 연결되지 않는 책 읽기는 쓸모없다고 생각하기에 어떻게든 내 일상과 연결 짓기 위해 루틴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문장이 생활과 연결되진 않기에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다. 특히 이 책처럼 인류사를 일상에 적용하기란 더더욱이나 어렵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만큼 내 생활로 이끌어오려 용을 쓴다.
유발 하라리는 생물학과 역사학을 결합한 시각으로 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의 형태를 개관(전체를 대강 살펴봄)한다. 학창 시절 내게 역사는 달달 외워야 하는 과목이었고 생물 또한 내 일상 하고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시험을 보기 위한 과목으로만 존재했었다. 학창 시절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역사와 생물을 모른다고 해서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었기에 그것들은 계속해서 나와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역사학과 생물학이 내 일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공부를 그닥 잘하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던 한 인간이 우연히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부터가 시작이었다. 어느 날 독서 모임을 찾아간 건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닌 내 이름으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생존 본능이라고나 할까? 마치 나만의 세계가 생긴 것 같아 마냥 즐거웠고 녹록치 않았던 육아와 살림도 내 세계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한번 시작하면 잘 놓지 못하는 기질 때문에 이러한 삶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처음에는 몇 년 먼저 모임을 시작한 선배들의 책을 따라 읽기에도 벅찼다. 평상시 책 한 권 읽어본 경험이 전무한 내게 공부에 대한 어떤 베이스도 없던 내게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같은 책은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럼에도 다 읽어가진 못하더라도 조금씩 읽어 가는 걸로 버텼다. 육아, 집안일을 핑계 삼아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말이다. 버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버티는 건 그나마 내가 가진 유일한 장점이었기에(이런 장점이 있는 지도 10년이 지난 후에나 알았지만) 그렇게 시간은 쌓여갔다. 다행히도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같은 책들이 한 번씩 숨통을 튀어 주었다. 내가 참여했던 모임은 역사, 문화, 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로 일 년 치 계획을 세웠는데 이른바 독서의 편식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닥치는 대로 읽고 토론하는 시간들은 그렇게 쌓여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역 도서관에서 주최한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독서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책에서 논제(토론의 주제)를 뽑고 논제를 바탕으로 하는 토론을 컨셒으로 하는 숭례문학당 강사님이 토론을 진행하셨다. 인상적인 구절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우리 모임 방법과는 사뭇 달라 신선하게 느껴졌다. 10년 넘게 이어져 온 토론 방식이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나머지 ‘고인 물’ 같이 정체되었다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 ‘논제를 만들기 위해선 책을 깊이 읽을 수밖에 없겠는걸?’이라는 생각이 들 무렵, 서울까지 운전이 가능한 동생이 제안을 해왔다. “강사님이 논제 가지고 진행하는 것 보니까 멋지더라고요. 숭례문학당에 강사가 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던데 함께 가실래요?” 강사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한 번쯤 책을 깊게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논제 프로그램을 배워 독서 모임에 접목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덥석 그 차에 올라탔다.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논제를 뽑고 강사가 된 것처럼 번갈아 토론을 진행하는 시연의 시간들은 2년 가까이 이어졌다. 독서토론 리더가 되기 위한 입문, 리더 과정은 서울 숭례문학당 본사에서 배우고 갑작스러운 코로나의 유행으로 심화 과정은 zoom 수업을 통해 수료했다. 그림책에서부터 청소년, 교육, 고전, 문학, 사회, 역사책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에서 보통 자유 논제 5개, 선택 논제 2개를 뽑아야 했다. 과연 책을 샅샅이 읽지 않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까지 책을 너무 대충 읽은 거 아냐?’라는 반성이 물밀 듯 밀려왔다. 하지만 ‘이전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런 과정도 할 수 있는 거 아냐?’ 라며 애써 과거를 긍정했다.
잡식성으로 읽어왔던 책들을 마냥 허투루 읽은 건 아니라는 걸 아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몸 안 어딘가에 쌓여 있던 책의 흔적들이 수업시간 중 나도 모르게 말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대체 이런 말들이 어디 있다 나오는 거지?' 내가 말해놓고 내가 놀랐다.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과 논제를 뽑고 있는 책들이 서로 연결되어 말해지는 순간이었다. 책과 책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표현 방식만 다를 뿐이지 책들이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사피엔스』가 인생 책이라면서 이렇게 독서이력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이유는 뭘까? 사실 이 책이 좋았던 건 내가 읽었던 책들과 조금씩 알아왔던 지식의 파편들이 유발 하라리가 세워놓은 인류사의 커다란 카테고리 아래 모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마치 이 세계라는 퍼즐에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조금씩 끼워 맞춰지는 것 같은 느낌? 읽어 온 수많은 책들이 그의 책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책들이 서로 연결되고 정리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런 느낌 하나만으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이유를 더 뽑으라고 한다면 내가 매번 고민하는 일상의 문제들이 사실 인류사라는 거대한 틀에서 보면 어리석은 것일 수도, 그다지 대단치 않은 것 일수도 있다는 저자의 생각이 해방감을 주기 때문이다. 유독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들에 근거 찾는 걸 좋아하는 내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행동이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는지 알려주는
이 책은 그야말로 내게 딱 맞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이 세계가 어떻게 흘러왔는지에 대한 기준점을 제시하는 책이라 자주 펼쳐 볼 것 같다. 이 책 한 권으로 또 다른 세계가 열렸다. 사피엔스라는 종으로 어떻게 살고 있나 생각해 본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어떤 존재로 살다 가야하나 생각해 보기도 한다. 생각도 질문도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