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삶이 가치 있다는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지극히 사적인 기록일 수 있음에도 올해부터 읽고 필사한 책들을 정리하면서 마지막날을 보내려 한다. 미처 핸드폰에 저장만 되어 있고 인쇄하지 못한 책들도 부지기수다. 이참에 샅샅이 찾아서 a4용지로 뽑아 종이책처럼 손으로 만져봐야겠다. 손에 만져지는 물성을 좋아한다.
올해를 돌아보면, 그러니까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쓰는 사람이었고, 그다음으로는 필사하는 사람이었다. 읽은 책을 필사하면서 생각에 잠겨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작년과 다르게 필사에 가속이 붙은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3월에 계약한 첫 책이 11월 말에 나올 때까지 기다림에 지칠 때면 불안감에 어쩔 줄 몰라할 때면 필사에 매달려 다른 세계로 도망가곤 했다.
단어와 단어 사이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사이, 줄과 줄 사이사이를 떠다니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다. 필사하는 시간과 필사하면서 드는 생각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는 필사라는 행위에 빚져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