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말들)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해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p.58)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빠져 좀 더 내게 집중하고 좀 더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개인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한참을 고민했다. 어릴 때부터 “함께 다 같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자라왔기에 뼛속 깊이 자리 잡은 공동체적인 정서를 쉽게 떨쳐 낼 수 없었다. 나 역시 개인주의는 좋은 말이 아니고 이기주의와 동급이라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정말 동급일까? 개인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집단의 목표보다 개인의 목표를 우선시하며, 집단 동일시보다는 개인의 속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다.”이고 이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고, 사회 일반의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둘의 사전적 의미는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비슷하게 받아들여지는 게 문제다. 그래서 개인주의자로 살기로 했지만 굳이 드러내지 않는다. 개인주의자라고 말하는 순간 이기주의자로 오해받을까 두려워 눈치껏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는 것도 싫고 친목을 위한 모임에서 굳이 구구절절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 또한 생뚱맞기 때문이다.
공동체적인 정서가 강한 곳, 예를 들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로 구성된 모임이나 친척 모임에서는 개인주의자인 걸 최대한 숨기고 공동체 구성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그러나 아주 친한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는 본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곳에서도 여지없이 공동체적인 정서와 나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충돌한다. 나는 첫 잔만 따라주고 나머지는 각자 자작하는 걸 좋아한다. 따라주어야 할 술 생각을 하느라 오고 가는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게 싫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마시는 술의 양을 모르고 먹는 게 답답해 맥주를 내 앞에 놓고 따로 먹자 난리가 났다. “하여튼 독특하다니까. 너 같은 사람은 처음 봐” 친분이 두텁고 허물없는 사이였지만 그들에게 내 행동은 어디서도 못 본 별난 것으로 치부되었다. 둘은 주거니 받거니 술을 따라 나눠 마시고 나는 내 앞에 있는 술을 자작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별것도 아닌 지극히 사소한 행동을 내 방식대로 하는 건데 둘은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그저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술을 마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나는 그저 내 방식으로 술을 마시는 게 좋을 뿐이다. 이게 뭐라고 온전한 나라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감각이 느껴지고 ‘원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구나’라는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술 먹는 방식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세상사 내 뜻대로 되는 일 별로 없는데 술자리에서라도 그것도 가장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라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개인주의자인 걸 오픈한 셈이다. 지인들도 처음엔 이상한 눈으로 보더니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내쳐지지 않아 다행이다. 나도 누울 자리를 보고 눕는다. 하지만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우리니까 만나주는 거야. 감사한 줄 알아.”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여진다는 믿음이 있기에 이내 맞받아친다. “아니 제가 술을 이렇게 마신다고 해서 큰 피해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하하하.” 나보다 3살, 5살 많은 언니들 사이에서 나는 그렇게 유별난 사람이 되었다.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 대신 자유와 얻었다.
한편 운동을 함께 하는 젊은이들과의 술자리에서는 이런 내 행동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술을 이렇게 먹든 저렇게 먹든 관심 자체가 없다. 간혹 탁구장에서 술자리가 벌어져도 선택지가 다양해졌다. 술자리에 합류하는 사람, 운동만 하다 가는 사람, 술 먹다 중간에 가는 사람,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 등등. 누구도 끝까지 남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주종도, 술의 양도 각자의 취향대로 마신다. 특히 구장에 20-30대의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워졌다. 이렇게 변화된 모습이 작가 문유석이 꿈꾸는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가 아닌가 싶다. “반드시 이래야 돼.”라는 사회적 압력에서 벗어나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존중받는 시대가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들이 만들어가야 할 시대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초보 개인주의자로 아직 갈 길이 멀다. 다만 개인주의자로 살게 되면서 한 가지 바뀐 게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판단을 덜 하게 되었다는 거다. 내가 사는 방식을 수용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저 내게 큰 피해만 없으면 다른 사람이 사는 방식을 쿨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다른 사람의 가치와 취향이 행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여유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이렇게 나의 개인주의자로서의 삶은 조금씩 지평을 넗혀가고 있다. 옳게 가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