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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절기에 눈을 뜬다는 건

(필사의 말들) 김신지 『제철행복』

by 하늘

“지구가 태양 둘레를 공전하는 걸 우리가 1년이라고 보잖아요. 지구 관측자는 지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태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1년에 걸쳐 태양이 움직이는 그 길, 경로를 24개의 구간으로 이렇게 나눠 둔 것이 24 절기라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저는 ‘해의 24걸음이다’라고 책에 표현했는데요. 그렇게 생각하면 계절 변화가 해의 에너지 때문에 일어나니까 해가 만들어내는 계절 변화를 24개로 나누고, 각각에 24개의 계절 이름을 붙여준 게 절기라고 이해하시면 조금 더 친밀하게 느껴지실 것 같아요.”


가끔은 크고 넓게 보아야 할 때가 있다. 지구가 태양 둘레를 공전하고 있지만 우리 눈에는 태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태양이 움직이는 경로를 1년에 걸쳐 24개로 나누고, 각각에 24개의 계절 이름을 붙여준 게 절기다. 우주라는 공간에서 지구는 태양 둘레를 돌고 있고, 태양둘레를 돌고 있는 지구에는 나라는 인간이 살고 있다. 이 인간은 해가 만들어내는 계절 변화, 즉 절기에 1도 관심이 없다. 이 인간에게는 단지 봄, 여름, 가을, 겨울만이 존재한다.

‘해의 24걸음’ 따윈 안중에도 없다.


고전 인문학자 고미숙은 『나이 듦 수업』에서 “사람이 잘 산다. 건강하다, 양생을 한다는 건 내 몸과 이 시공간의 리듬을 맞추는 거예요. 봄에는 봄에 맞는 양생을, 겨울에는 겨울에 맞는 양생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서재와 탁구장, 두 개의 점만을 오가는 일상, 나는 항상 이런 의문을 가지고 살았다. ‘내 라이프 스타일 너무 인위적인 거 아냐? 이런 삶이 자연스러운 걸까?’ 나는 내 몸과 이 시공간의 리듬을 맞추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내 몸 따로, 이 시공간 따로.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 한쪽이 항상 불편했다.


아프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생각은 있었으나 마음의 여유가 없어 생각을 미뤄두었던 것들을 꺼내 생각하기 시작한다.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갈비뼈 골절로 인해 운동 휴식기를 가지며 산책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단지 그 이유만일까? 나이도 한몫 거드는 것 같다. 오십이 넘으면서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겠지?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시작했다. 자연의 이치, 우주의 이치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때마침 찾아온 부상은 이런 생각의 기폭제가 되었다.

저녁 산책을 하면서 평소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던 달을 쳐다보게 되었고, (대체 뭐하고 산 거니?) 날이 감에 따라 달 모양이 바뀌는 걸 보며 마치 난생처음 달을 본 사람처럼 신기해했다.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내 눈에 달을 담기 시작한 건 서재와 탁구장, 두 개의 점만을 오가는 일상에서 잠시 빗겨선 날들이었다. 동네 주변을 걸으며 하루하루 달라지는 논이며 밭이며 자연의 모습들이 그 어느 때보다 다르게 다가왔다. 아주 잠깐 빗겨섰을 뿐인데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논에서 개구리들이 우렁차게 울어대던 5월의 어느 날, 나와는 전혀 상관없었던 무시하고 살아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던 절기가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시골 친정 벽에 걸려 있던 절기가 큼지막하게 표시되어 있던 크고 하얀 달력이 생각났다. 나라는 인간이 절기란 게 궁금해지다니! 마침 평상시 즐겨보는 북튜버가 김신지의 『제철행복』을 추천했고, 자연도 책으로 배워야 하는 인간이기에 냉큼 주문해 읽기 시작했다.


절기를 곁에 두고도 모른 채 살아온 내게 그녀는 1년을 24절기로 나누고 절기에 맞는 제철 행복을 소개한다. 한 해를 사계절이 아닌 절기에 따른 ‘이십사계절’로 촘촘히 겪게 도와준다. 작가 김신지가 말하는 ‘해의 24걸음’, 즉 절기에 맞춰 사는 것이 ‘내 몸과 이 시공간의 리듬을 맞추는 일이 아닐까?’ 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내 몸 따로, 이 시공간 따로’가 아닌 내 몸과 이 시공간을 조금씩 맞춰 가는 일. 올 한 해는 절기에 맞춰 살아보기로 했다. 아주 촘촘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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