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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나린 Aug 30. 2023

기자보다 무서운 정치인

변방을 떠도는 이방인

내가 기자로 일하던 도시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지방도시다. 지방분권을 논하지만, 현실은 서울 수도권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지방도시는 변두리다. 변방의 작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은 몇몇의 리그처럼 안에서만 맴돌기 마련이다. 누군가 죽거나 다치거나, 연례행사 같은 노동계 하투로 도로가 막히고 택배 배송이 멈춰야 작은 관심을 받았다. 먹고살기 힘들고 바쁜 일상에서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변병의 도시는 전국을 들썩이게 했다. 그것도 몇년씩이나. 며칠도 아니고, 몇달도 아니고.

심지어 이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방경찰청 로비는 늘 삭막했다. 경찰서 직원들도 경찰청에만 오면 과묵해졌는데, 그중에서도 사방이 뚫린 로비는 재빠르게 스치듯 이동해야 할 공간이었다.

그날은 괜히 정신없이 어수선했다. 직원들의 발길이 목적 없이 종종거렸다. 주차장을 이중 삼중으로 메운 차들에서 카메라가 쏟아져 나왔다. 누가 나서서 포토라인을 그은 것도 아닌데, 카메라는 로비 가운데 적당한 위치를 찾아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늘어섰다.


이른 오전부터 지역 정치인들이 들이닥치겠노라 예고한 날이었다. 며칠 전 시청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경찰청에 항의하겠다는 게 목적이었다. 혐의는 현직 시장의 측근 비리 의혹. 곧 있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시장에겐 치명타였다. 시장과 같은 당 소속 정치인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씩씩거리며 몰려오겠다는 이유였다. 정치인이 정치적인 표현을 하겠다는 게,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당혹스러웠던 건 내가 몸 담고 있던 신문사 사주로부터 걸려온 한통의 전화였다. 그는 한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몇달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방경찰청장의 언행이라고 세간에 퍼진 이야기. 단순하게 요약하면 이랬다. 

'청장이 정부 유력자 A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당장 전화통화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사이라고 기자들에게 휴대전화를 꺼내 보이기까지 했다.'


키워드는 맞았고, 맥락은 틀렸다.

내가 보고 들은 그날 간담회 자리의 이야기가 맞다면 말이다. 청장의 입에서 A의 이름이 나오긴 했다.

간담회가 무르익을 즈음 한 기자가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의 답에서.


"최근에 B를 만나셨다던데 사실인가요?"


B는 지역에 오래된 정부여당 측 인사였다. 당시는 시장 출마가 유력한 인사였고, 이후로는 실제 공천을 받았다.

청장은 두세차례 B를 만났노라 인정했다. 누군가의 소개로 만났으나 첫인상이 불쾌했다는 소감을 털어놨다.

자신을 인사청탁이나 하려는 사람으로 취급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면서 덧붙인 청장의 말에 A의 이름이 등장했다. 자신이 인사청탁을 할 마음이었으면 A에게 할 수 있는데 구태여 B에게 말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실제 당시 A의 권력이 더 많은 것처럼 보였고, 청장과의 친분도 있었다. 지나온 청장의 행보는 A와의 친분이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만일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고 했다면 더 의심스러운 관계 같았다.


그날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기자들은 저마다 데스크에 그날의 대화를 보고했을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이.






경찰 수사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세갈래로 나눠진 사건은 경찰청 한 부서가 온전히 매달리다시피 했다. 몇번의 압수수색이 있었고, 사건의 당사자들과 때 아닌 숨바꼭질도 벌어졌다.

경찰 수사는 대망의 지방선거가 지나도록 이어졌다. 수사 상황을 알아내려는 기자들의 손끝에서 연일 기사가 쏟아졌다. 지역 정치인들의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결국 재선에 도전했던 시장은 경찰 수사의 치명타를 극복하지 못했다. 당시 지역적으로 우세한 정당의 현직이라는 프리미엄에도 그는 재선에 실패했다.

대신 수차례 도전한 선거마다 고배를 마셨던 B가 당선됐다. 칠전팔기의 성공 신화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B는 그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시청에 입성했다.


정치판의 선거 전쟁이 끝나자 뜨겁게 달아올랐던 경찰 수사에 대한 관심은 차츰 식었다.

경찰 수사의 결과물은 당초 알려진 의혹들에 온전히 닿지 않았다. 뻥튀기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이 의혹의 습성이고, 수사의 한계라는 현실을 고려하면 그리 이상한 결말도 아니었다.

경찰이 수차례 신청했던 사전구속영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그저 뒤통수가 찜찜한 일 정도로 여겼다.

그렇게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경찰은 수사를 마무리한 사건기록을 검찰에 보내면서 '기소의견'을 달았다. 그간의 수사로 입건한 이들의 죄가 충분히 의심되니,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재판을 열어달라는 뜻이다. 재판을 요청하는, 다시 말해 소를 제기하는 공소권, 기소권은 검찰의 고유 권한이니 경찰의 역할은 '기소의견'에서 마무리되는 듯했다.







검찰은 달랐다.

'증거불충분'. 검찰이 경찰의 수사 자료를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세건의 의혹 중 두건의 결론이 그러했다. 경찰이 그동안 수사한 자료들만으로는 입건된 이들의 죄를 물을 수가 없다는 것. 그래서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도 없다는 것. 검찰은 법원에 소를 제기하지 않는, 불기소를 결정했다.


대혼돈의 서막이 올랐다.

경찰 내사가 시작되고 해가 두번 바뀌었다. 사람들의 기억도 희미해질 즈음이다.

넋 놓고 앉아있는데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았다.

경찰은 반발했고, 기자들은 덩달아 바빠질 일만 남았다. 얼얼한 뒤통수를 쓸어내리면서 이성의 끈을 단단히 부여잡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다.


검찰은 사건을 법정으로 가지고 갈 때 공소장을 쓴다. 법원에 사건의 당사자들에게 합당한 죄를 물어달라 요청하는 글이다. 공소장에는 이 범죄가 얼마나 나쁜 행위인지, 피의자들이 얼마나 악랄하게 그 범죄를 저질렀는지, 또 이를 통해 얼마나 큰 이득을 봤는지 등의 내용이 세세하게 담겨있다.

반대로 검찰이 사건의 기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할 때는 불기소결정문을 작성한다. 사건의 고소인 등에게 제공하는 불기소결정문에는 죄를 묻지 않기로 한 이유가 구구절절하게 쓰여있다.

적잖은 경력의 기자 생활에서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을 형광펜으로 그어가며 꼼꼼하게 봤던 적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두건이었으니, 유이한 경험이었다.


검찰의 결론에 동의하기엔 석연치 않았다. 다른 속내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펼쳐졌다.

중앙에서는 그동안의 경찰 수사에 더 윗선이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경찰 수사가 부당하게 이뤄졌고, 그 목적이 지방선거에 있으며, 검찰이 불기소 처분으로 부당 수사를 바로 잡았다는 말들은 점점 불어났다. 더 구체적이고 더 많은 사족들이 말들에 붙었다.

그 말들은 서울, 그러니까 중앙에서 생겨났다. 중앙 정치권에서, 검찰에서, 그곳에 출입하는 기자들에게서.


그해 크리스마스이브. 검찰은 경찰청에 선물 대신 압수수색 박스를 들고 들이닥쳤다.

중앙 기자들도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내가 담뱃재를 털어내는 선배 기자와 주고받은 대화는, 그것을 엿들은 중앙 기자의 손을 거쳐 기사로 소비됐다. 맥락은 사라지고 키워드만 남은 기사를 보며 나와 선배 기자는 입을 다물고 황당함의 눈짓을 해야 했다.

검찰 영감들과 수사관들은 벌써 몇시간째 경찰청 사무실을 털고 있었다.

복도에 주저앉아 소위 뻗치기를 하며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거대한 그림이 중앙에서 그려졌다.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게 되는 일들이 쌓여갔다.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을 지나면서 그 거대한 그림의 퍼즐이 조금씩 끼워 맞춰졌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중앙 유력 인사들의 이름이 새롭게 등장했다.

칠전팔기의 성공신화 주인공인 줄 알았던 B는 재선 시장은커녕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의도가 있든 없든 경찰 수사 덕을 봤던 그는 검찰 수사로 쓴맛을 보는 신세가 됐다.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고, 결론의 향방을 알 길이 없다.

몇년에 걸쳐 휘몰아치는 태풍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손의 부채질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손이 왼손인지, 오른손인지 알 수 없어도, 그 손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분명 이 도시에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나는 그 보이지 않는 손의 손톱도 되지 못했다.

그저 변방을 떠도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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