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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나린 Apr 18. 2023

기자, 그리고 여기자, 그리고 백수

< 세번째 사직서, 그 후 열달 >

몇달 전까지만 해도 내 직업은 기자였다.

남들과 똑같이 들어간 대학교를 남들보다 늦게 졸업한 뒤 처음 가진 직업이었다.

대학 졸업장을 받은지 한달여만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지방 도시인 고향에서 나는 지역일간지 사회부 기자 일을 시작했다.

각종 정보를 좇아 경쟁하는 극소수가 집단을 이룬 기이한 직업이었다. 그래서 호기심 어린 시선을 심심찮게 받기도 했지만, 그 속내를 알고 보면 신기할 것 하나 없었다.



나는 여기자였다.

때론 건방스럽기까지 한 이 직업에서도 '기가 쎄다'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어지간히 꼬여버린 비아냥이었다. 출입처든 취재 상대든 장악력을 강조하면서도 뒤돌아서서는 여성성을 기대하는 모순이었다.

시쳇말로 사스마와리, 뭐라도 하나 건져보려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는 게 성실함과 능력의 척도가 되는 조직이었고, 그것에 나는 단 한번의 의문도 제기한 적이 없었다. 어느날 동료 여기자가 후배들에겐 절대 강요하지 않을 거라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웃음 팔라고 강요하는 것과 뭐가 다르죠?"



지난해 나는 사직서를 냈다.

처음 들어간 지역일간지에서 또다른 일간지로, 다시 또 다른 신문사로 자리를 옮겼다.

첫번째 이직 때는 희망에 부풀었고, 두번째에는 절망 속에서 걸어본 도박이었다.

세번째 사직서를 꺼내들었을 때는 무기력에 눌린 것만 같았다.

기자 생활 10년 만에 백수가 됐다. 결혼 4년차 주부라는 이름에 숨었다.

얼마간이 될지도 모를 공백이 도리어 개운해서 문득 연민이 들었다. 많이 지쳤구나.

백수가 된지 열달이 지났다. 아직 몇몇은 나를 기자라고 부른다. 이름을 부르기엔 멀고, 인연을 닫아버리기엔 가까운 관계다.

지난 10년의 기억들을 기록해야겠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절의 나를 지나 지금 내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달만에 키보드 앞에서 손가락을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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