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진자로서 지녀야 할 마인드 셋에 대하여
강사는 교사인가? 촉진자인가?
교사는 가르치는 자인가? 배움을 얻도록 도움을 주는 자인가?
말장난 같지만 강의를 준비하면서 항상 생각한다.
<촉진자>라는 말은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 처음으로 도입한 심리학과 교육학에 사용되는 용어이다. 칼 로저스가 말하는 촉진자란 비지시적으로 내담자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자발적인 성장을 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자이다. 다시 말해 집단의 자발성을 촉진하고 스스로 소통하려는 체계를 만들어 나가면서 성장하도록 돕는 자를 말한다. 그런 면에서 교사는 'Teacher' 즉 '가르치는 자'이기 전에 '촉진자' 즉 'Facilitator'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학교에 강의를 하러 갔는데 선생님께서
"저희 아이들이 좀 안 좋은데.... 잘 부탁합니다."하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셨다.
순간 선생님이 고개를 숙이는 행위와 말이 상충(相沖)하여 잠깐 깊은 생각을 했다.
'아이가 안 좋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
'고개를 숙이는 행위는 학생들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진심에서 우러난 행동일까?'
잠깐이지만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나는 오늘 그 어떤 선입관도 가지지 않고 교실에서 아이들과 마주해야겠다.'
마음을 다잡고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 눈에 처음 들어오는 모습은 '안 좋은 아이들'의 모습을 한 다소 정도 되지 않은 태도를 가진 학생들이었다.
여럿이 모여 앉아 키득키득 웃으며 강사가 들어오든 말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또 어떤 학생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무채색의 표정으로 눈만 들어 나는 흘끗흘끗 쳐다봤다.
아주 순간 '아! 나는 그 어떤 선입관도 가지지 않기로 했어!' 하고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는 그 어떤 잘못도 없었다. 그 삶의 배경이 어떠하든지 그들의 잘못도 아니고 상황이 그들은 소위 말하는 '안 좋은 아이들'로 만들고 있을 것이 뻔했다.
PPT를 올리고 나에 대한 소개를 하며 적극적으로 그들과 아이컨텍 했다. 나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퀴즈를 내기도 하고 약간의 게임과 퀴즈를 곁들이며 서로 마음을 여는 시간을 가졌다. 수업이 무겁지 않게 느껴져서 그런지 조금씩 수업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학생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고, 경계하지 않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조화가 잘 된 프로그램 덕분에 우려했던 상황(수업이 난장판이 되고 마는)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수업 마친 후 가장 큰 목소리로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쳐 준 학생도 그들이었다.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역할을 찾아주는 것이었다. 그 역할이 활성화되니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고, 자신이 잘하고 있는 그것을 더 잘해 내려고 수업 마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켜주었다.
교사가, 강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똑똑이 보여주는 사례였다.
나는 군인성강의를 참 좋아한다. 군 강의를 하고 나면 에너지를 얻는다. 청년들의 고민과 진로와 인생을 고민하는 자리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때가 많이 있다.
지난밤 비가 철철 내리는 까만 길, 서울에서 원주까지 내달렸다. 첫 강의는 컨디션을 잘 유지하고 가야 내가 가진 에너지를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하루 전 원주에 도착했다.
교육 시작 40분 전에 교육장에 도착하여 세팅하고 오늘부터 3일을 함께 할 장병들을 만났다.
군은 삶의 이력 즉, 학벌, 생활 수준, 직업, 연령 등이 모두 다른 청년들이 모인 곳이다. 이들에게 18개월은 크나 큰 희생이요, 처절하게 자신과 싸워야 하는 낯선 장소이다. 이곳에서의 18개월을 의미롭게 보내기 위한 교육을 하는 강사가 바로 '나'이다. 군 인성 강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젊은이들이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헌납한 18개월에 대한 감사와 경의를 진심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이 고통의 시간을 잘 견디고 나면, 이 낯선 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전우를 배려하고, 갈등 상황을 만났을 때 잘 풀어나가는 문제해결을 가진다면 유능한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강의를 통해 촉진하는 것이 '군 강사'로서 나의 자세이다.
오늘을 마무리하는 끝맺음을 하는데 너무나도 진지한 28명의 눈빛이 나에게 다다랐다. 서울로 돌아오는 120KM의 길이 멀지 않게 느껴졌다. 오늘같은 기분에서 원주는 매우 가까운 도시였다.
교육의 대상자들이 자신의 맥락을 찾아갈 수 있다고 믿는 믿음.
오늘의 배움을 통해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
그들의 빈 부분은 채우기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
그리고, 잘하고 싶지만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친절함.
그들의 처절함에 공감하고 어둠 뒤에 빛이 더 밝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자신의 삶을 기대하게 만들 친구
그러한 사람이 강사요 교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군 장병들을 만나고 서울로 올라오며 짧게 든 생각을 글로 써 본다.
마인드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