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서란?
나는 중견 기업의 오너 비서다. 사실 내가 비서일을 한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가족들도 놀랐으니까. 예상한 반응이였다.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진학했던 국어국문학과에서 교직이수에 실패했다. 내가 국어국문에 진학한 이유는 책을 좋아했다. 단순히 그 특유의 신파적인 소설이 좋았다. 내 삶을 반영해주는 것 같았으니까. 그 말은 별 다른 명확한 이유가 없었다는 의미도 된다. 맞다. 별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공무원 준비에 실패했고, 수많은 공채에 떨어진 후에 비서로 들어왔다.
첫 직장은 로펌이였다. 여대였던 나에게 당시 로펌비서는 큰 인기직종이였다. 9-6에, 적당한 급여에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다들 들어가고 싶어했다. 인기직종이였다기 보다는 취업의 가능성이 여성들에게 열려 있는 분야라고 정정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우선 돈을 벌어야 했던 나는 꽤 괜찮은 로펌의 대표변호사의 비서로 들어간다. 같은 학교 선배들도 있고,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 사회생활의 댓가는 꽤 혹독했다.
내 상사는 쉽게 일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였다. 무슨 이유에서든 늘 항상 모욕을 주고 일을 알려주었다. 출근하면 모니터만 보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시간만 죽이고, 욕은 욕대로 먹는 그런 힘든 날들이였다. 다행이 그 상사와 큰 갈등 후에 나를 실여급여를 받기 위해 짤라주었고, 나는 너무 고마웠다.
아마 그 곳에서 나를 퇴사시켜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다시는 그 이후에 비서를 안하겠다고 나왔지만, 결국 다시 기업 비서로 돌아왔다. 현재 4년차 기업 비서로 일하고 있다. 그만큼 이 일에 애정이 있다는건지, 적성에 맞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보다 이 직종의 비애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비서의 일상과 편견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었다.
비서는 크게 업무비서와 수행비서로 나뉜다. 내근직인지 외근직인지의 차이이다.
수행비서는 보통 운전을 겹업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24시간 대기가 가능한 남자들이 많다. 드라마가 "김비서가 왜그럴까"에 보면 나오는 박민영이 수행비서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보통 수행비서는 남자인 경우가 많다. CEO가 남성인 경우 같은 성별을 선호하기도 하고, 짐을 나르고, 실시간 대기하는 일들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듣는 대기업들의 비서는 좀 다르다. 수행비서와 업무비서를 다 고용하며, 수도 여러명이다.
<드라마 김비서가 왜그럴까 中>
이런 상사와 비서는 없다. 드라마일뿐.
비서들의 일상
1. 의전
의전이라는 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출근하면 문앞에 나가서 인사하고, 옷 정리하고, 커피와 노트북 설치 등 업무 세팅 정도의 가벼운 일들을 말한다. 또 퇴근하면 같이 내려가서 차까지 보필하는 것을 의전이라고한다.
이건 상사의 스타일마다 다르다.
문앞까지를 원하는 상사도 있고, 차앞까지 원하는 상사도 있으니, 이건 그 상사들의 요구에 맞춰서 해주는 것이 좋다.
2. 업무전반의 서포트
이건 보스의 성향에 따라 매우 편차가 크기 때문에 범위와 정의를 명확하게 단정짓긴 어렵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짓는 사람과 공적인 영역안에 사적인 영역이 포함되는 사람이 있다.
이 부분이 이 직종의 재직 여부를 결정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일을 하다 보면, 가끔 내가 회사에 다니는 건지, 집사가 된 느낌인지 구분이 안 될 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서'라는 직종에 대한 가장 많은 편견이 여기에서 나온다.
공적인 영역은 회의준비, 회의록 작성, 업무에 필요한 서류 작성, 골프장 예약, 식당예약, 외부손님 응접 등이다. 사적인 영역은 가족들의 케어및 본인의 케어(자산관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이 부분은 말하기가 매우 모호하다. 내가 모시고 있는 상사가 어떤 협회나 기관의 단체장을 맡겨 된다면, 보통 비서들이 그 부분을 맡아서 하게 된다.
그러면 온갖 잡일과 여러가지 일을 하게 되면서..힘든 상황이 발생할수 있다.
3. 골프예약
'골프를 안치시는 우리 회장님은 너무 좋아요..' 친한 모기업 비서친구의 말이였다.
골프광인 나의 오너와는 반대로 골프를 안쳐 할일이 대폭 줄어든다고 했다. 맞다. 비서의 스트레스는 골프와 항공권으로 온다고 말하고 싶다.
1) 우선 본인의 상사가 어떤 회원권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대표적으로 이용하는 CC는 남서울, 해슬리, 티리니티, 화산, 블루원 등 이다. 정회원인지, 준회원인지에 따라서 예약 날짜와 취소 가능한 날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골프 예약 같은 경우는 매우 예민한 문제이다. 홈페이지로 하는 곳은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 하며, 전화예약을 하는 곳은 100통이 넘어도 안받는다.
2) 처음에는 예약을 못하거나, 예약날짜를 놓치는 등을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그런데 생각보다 CEO들은 골프에 매우 예민하다. 접대를 하거나 서로 친목을 쌓는 목적을 떠나서 본인의 어떤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무료 취소 날짜를 놓치면 패널티 20-30만원 이거나 2달간 예약정지등의 패널티가 있다. 골프장도 ' 2~3억짜리 회원권 구매하고 매주 필드 나가면 넘어가주지…'싶지만 회원제 골프장은 더 나아가 부자들의 생각은 서민인 나와는 다른 것 같다.
4. 항공권 예약
의외로 내가 골프보다 어려워했던 예약이였다. 이유는 나는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해서 살면서 타본적이 2-3번인정도로 매우 적었다. 그런 나에게 비행기 예약은 너무 고난이도였다.
1. 이코노미, 비즈니스/2. 이코노미 구매 마일리지 업그레이드/3. 프레스티지 대기...확약
일단 밀리언마일러 회원인지 확인후에, 내가 모시는 오너가 어떤 걸 선호하는 지 물어봐야한다.
비즈니스 구매석을 선호하는지, 일반석을 구매해서 마일리지로 업그레이드 하는걸 선호하는지 알아야 한다. 변경 패널티, 취소 패널티 등 변동사항에 대해 체크해야 할 것이 정말 많다.
차라리 여행사와 계약해서 여행사가 대행해준다면 정말 편하다. 물로 여행사와 계약하는 비용을 지불하기도하고 발권대행료가 붙고 비싸지만 정말 훨씬 편하기 때문에 이 편을 추천한다.
5. 그 외의 상사의 지시
이건 정말 단정짓기 어렵다. 사람마다 고유의 특성이 있든, CEO들도 각자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A회사의 비서는 개인적인 일이 정말 하나도 없다. 개인적 여행도 알아서 다 가시고, 통보만 해주셔서 편하다고 한다. B회사의 나의 비서인 절친 대리님은 약하나 까지 다 챙겨줘야할 정도로 개인적인 일을 많이 시킨다. 대신 그만큼 명절, 생일, 경조사들 챙겨주는 일들이 많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듯이, CEO들이 특성에 따라서 장단점이 극명하다. CEO의 성향에 맞추어 드리는 것이 베스트다. 그게 비서들의 몫이다. 하지만 정말 아니다 싶으면, 합의점을 찾으면 된다.
<드라마 공작도시 中>
이런 CEO를 만날 수도 있다...
이 일에 대한 편견을 말하자면 3페이지도 가능할 정도이다. 하지만 비서가 없는 CEO는 없다.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CEO' 들은 비서가 필요하다. 그만큼 우리 비서들의 역량이 크다는 거 아닐까.
비서만큼 편견이 심한 직종도 없다. 잘 모르는 사람들의 판단과 오해에 마음이 상하지 않길 바라며, 오늘도 수많은 비서들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