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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수발러 Sep 08. 2022

비서로 살고 있습니다.

2. 비서라는 편견

'비서? 수행비서야? 별로네..'


 내가 사귀었던 전 남자친구의 어머니에게 전달받은 말이다. 그 말은 뽀족하게 나를 찔렀고 몇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자존심이 쎈 나에겐 용납하기 어려운 말이였다. 비서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을 단박에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결국 저 말은 그 친구와 이별을 결심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들이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 직업을 겪어보지 않고 선입견을 가지며 함부로 판단하기도 한다. '비서'라는 직종은 편견이 많은 직업이다. 나 역시도 이 직업을 택하기 전에 그랬다. 4년간 비서로서 살아가는 일은 많은 편견과 싸우는 일이기도 했다.


1. 이쁘다.


 비서라고 하면 다들 젋고 이쁜 비서를 생각한다.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 나오는 박민영처럼.

드라마, 영화, 소설에서는 늘 비서는 이쁘다. 또한 쉽게 불륜의 대상이 되거나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사람으로 묘사되곤 한다. 사람의 외모에 대한 평가는 정말 지양해야 하는 것 중 하나이지만, 비서만큼은 정말 예외였다. 나이, 외모, 머리스타일, 옷 스타일까지 모든 외적인 부분이 다 평가를 당하곤 한다. 나는 반문하고 싶다.


  “비서는 왜 이뻐야 하나요?”


 직종에 상관없이, 단정하고 적당히 꾸민 외모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 금융권은 정장에 단정한 이미지를 선호하고, 항공사는 키가 크며, 잘 웃는 상을 선호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비서도 단정해보여야 하는 직종 중 하나일 뿐이다. 단정해보여야 하는 이유는 비서의 행동이 CEO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손님들을 만나거나 외부로 의전해야 할 경우 상황에 맞는 옷차림은 직장인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흔히 내가 비서라고 말하면 늘 오피스룩을 입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도 짧은 원피스를 좋아하는 편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와이드 슬랙스 또는 긴치마 어쩌다 원피스다. 그렇게 입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할때 매우 불편했다.무거운 상자도 들어야 하고, 오너의 컴퓨터가 고장나면 기어 들어가서 고쳐야 했다. 또 비오는 날에는  동사무소도 걸어가야했다. 말 그대로 ‘만능’ 이 되어야했다. 외근을 나갈때 많이 걸어야했기 때문에 높은 구두는 불편했다. 일의 능률을 위해 편한 복장으로, 서서히 나에게 맞는 복장으로 옷들을 바꿔 입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복장으로 비서에 대한 환상을 현실에서 완성 시켜주고 싶지 않았다. 



                                     “저는 이런 비서가 아닙니다"


2. 단순 업무이다.


 영화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을 보면 비서들이 나온다. 상고를 나왔고, 직원들에게 커피를 주고 전화연결을 하는 단순 업무를 하는 비서들이다. 흥행했던 영화이지만, 나는 보면서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타인에게 비추어지는 내 직종이 저런 모습이라니. 그 동안 비서라고 하면 친구들에게  '자존심 상하지 않아?'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비서라고 하면 내가 커피만 내린다 생각한다면, 정말 생각이 짧은 사람이다.


 은행원들은 현금만 인출해주고, 삼성전자를 다닌다고 해서 핸드폰만 만드는 건 아니지 않는가?


 업무의 범위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학력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대체로 중견기업 이상의 정규직 비서들은 4년제 학사가 자격요건이다. 흔히 아는 대기업과 탄탄한 중견기업들은 사내에서 유망한 인재들을 비서실로 채용한다.거기에 영어 실력은 기본이며, 비서들의 전공에 따라서 CEO들이 일을 도와줄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나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경영학과를 복수전공했다. 그 덕으로  외부 회의자료, 영어 해석, 책의 대필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중이다. 간혹 사내의 행사에서 인사말과 맺음말도 작성하기도 한다.

이런 일만 하는 거 아닙니다.



3. 비서라는 그 단어 자체에 담긴 편견


"비서는 무슨 일 해요?"

"힘드시겠다"

"이쁘시네요"

"그만두면 뭐해요?"

 

 “비서입니다” 라고 직업을 밝혔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반응 들이다. 다들 CEO 옆에서 치마를 입고 서 있는 사람 혹은 단순업무만 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미래에 할일이 없는 사람.

 그래서 나는 이 직종에 있으면서 많은 모멸감과 회의감을 느끼곤 했다. 이상과 현실이 다르듯이, 그 직종에 있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고충이 있다. 그런 편견의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을 견디기가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놔둔다. 그 편견 가득한 눈초리들을 그대로 둔다. 그들의 시야가 좁은 것이기 때문에 굳이 설득 시킬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나도 당신을 편견으로 볼테니까”


 그래서일까 종종 다른 비서분들을 만나면 왠지 모를 동료애가 생긴다.  이 직업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항상 존경을 보낸다. 나는 우리들의 직업에 대한 좋은 편견이 사라지길 바라본다. 우선 미디어에 비치는 비서의 모습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 작은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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