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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수발러 Sep 29. 2022

비서로 살고 있습니다.

3. 비서에게 필요한 역량

“비서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라는 질문은 내가 입사면접으로 받은 질문이다. 그 당시 나는 “책임감"이라고 말했다. 어떤 직종이라도 책임감은 필요하니까, 통용되는 답변이였다. 4년차인 지금은 “눈치”라고 말하고 싶다.


 눈치는 비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빠른 눈치로 임원의 스타일을  파악하면 일이 매우 수월해진다. 보통 비서가 모시게 되는 임원들은 매우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와의 사고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를 읽을수 있어야 한다.


A회장: 급한거 아니야~천천히 해서 줘. 한 2주?

속뜻: 당장해서 줘.


B회장: (누군가가 실수한 상황) 누가 한거야? 그럴수도 있지~

속뜻: 기억해둠.


C회장: 아 남으면 하나 가져가

속뜻: 가져가지 말고 수량체크해


 상사의 스타일을 파악하는 눈치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터득이 된다. 이런 것들을 한번에 알기란 불가능하기에, 임원와 비서와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내가 모시는 임원들의 스타일을 파악해두면 일을 할때 매우 수월하다. 물론 처음엔 당연히 어색하고 불편하다. 비서들이 모실 상사들은 금수저를 넘어선 다이어몬드 수저이기에..상상 이상으로 하대할수도 있다. 또한 예측불가로 기분파이며 주말이 없을 수도 있고 개인적인 일을 시킬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갑질에 자존감의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그냥 나랑은 다른 세계이며, 생계의 수단임을 명심하자


 예를 들면 내가 보시고 있는 CEO는 기분파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반문하지 않는다. 질문을 받는 것을 매우 싫어하시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으실 때에는 그냥 알아서 한다. 해야할 일도 대충 알려주시기 때문에 평소 원하는 업무스타일대로 맞추어드린다. 또한 매우 확실하게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돈 관련 부분이다.

예상과 달리 가격이 많이 나온 경우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대책을 최소 3안 정도를 만들어놓고, 표로 정리한다. 친한 타회사의 비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대본을 적는다고 한다. 다른 비서는 미리 행선지를 가본다고도 하고.. 물론 극단적인 경우지만 여기서의 포인트는 눈치로 상사의 스타일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장선이지만 일의 경중을 파악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생각보다 오너들의 세계는 복잡하다. 친한 사이면 직접 연락할 법도 한데, 보통 비서들을 통해서 전달한다. (그들이 사석에서 어떻게 따로 만나는 지는 모르겠으나, 미팅이나 식사 만남은 비서들을 통해서 전달하는 경우도 많다) 친하다면서 직접 연락하면 되지 이걸 굳이 나를 시키나 싶지만 그들 사이에선 이게 비즈니스고 예의인 셈이다.

 경중을 모를 때는 물어보자. 자꾸 물어봐서 임원이 화를 낸다고 하더라도 물어보고 진행하는 것이 맞다.

한 예로 누구나 아는 대기업 회장의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었다. 내가 모시는 상사와의 미팅이였고 주선자는 우리측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장소까지의 거리, 탁자의 모양, 앉아야 하는 자리 등을 정해달라는 그 쪽의 요청을 듣고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 내모습을 보고 회장님은 화를 내셨다.


 "우리가 그런것까지 해줄 필요는 없다고. 비서의 서열이 회장의 서열이라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적은 듯 싶다. 눈치가 빠르면 사회생활에 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 눈치가 조금 더 필요한 직종이 비서라고 생각한다. .여러번 시행착오를 겪고 나면 알 수 있다. 그 시행착오 과정에서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나 역시 자존심이 센 편이기에 많은 좌절감을 맛본 하루도 있었다. 현재도 자주 느끼는 모멸감이 들땐 어떤 직종이든 겪는 고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우리에게 그냥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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