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00만원
“아니 어떻게 부모가 100만원도 없을 수 있지?”
한 선배가 자취방 이사준비를 하면서 뱉은 말이다.
새 이사집에 침대를 구매하는데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매장에서 바로 옆의 손님은 침대의 가격을 듣고 “100만원”이면 너무 비싸서 살수 없다고 매장을 나오는 모습을 봤다는 것이다.
그 정도도 못해주는 부모가 어디있냐는 것이다.
지방에서 여유롭게 자란 선배는 항상 20살때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산다. 월세도 부모님이도와주기 때문에 물건의 구매에 망설임이 없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본인만 책임지면 되는 사람, 설령 본인이 망하더라도 기댈 누군가가 있는 사람.
우리 부모님은 100만원이 없는 시절도 있었다. 물론 현재까지도 매우 큰 돈이다. 내가 직장생활에서 피같이 모은돈을 준 적도 종종있다.
나에게 부모는 내 피난처나 안식처가 아닌, 내가 책임져야할 존재였다. 생각해보면 가난은 대물림되는 것이맞다. 계속 가난이 이어지는 이유는 배울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가난에서 벗어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당장 오늘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 굶지 않는 것이 문제인데 침대의 종류나 옷의 종류를 고르는 것은 사치이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좋아하고 선택할 수 있는 취향은 상대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다. 가난하면 취향은 사치이다.
어떻게 100만원의 침대를 100만원의 가방을 구매할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그 돈이면 한달의 이자값과 식비를 메꿀수 있는데...이렇게 무언가 대체할수있는 것들이 생겨날 수록 나는 또 취향에서 멀어지고 현실에서 벗어날수 없게 된다.
그래서 조금더 사람들이 취향의 문제에서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좋아하는 것을 고를만한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점은 내가 생각보다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는 점이였다.
집안에서는 첫째로 가장으로, 모든 일들을 책임졌어야했고 온갖 불행과 사고를 몰고 오는 집안이여서 포기가 컸다. 하지만 그런 기질들이 나의 생업으로 이어지면서 굉장이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부의 자극에 굉장히 취약하지만 그것들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지쳐하는 성격이였다. 이런 성격임을 알았더라면 다른 직업을 선택했을 것 같다..
누군가의 한마디에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드는 하루다. 그만큼 나의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