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사과
아직도 고아원에 살고 있네요.
선생님의 눈이 촉촉해졌다.
오늘 선생님은 나와 함께 울어주었다.
엄마가 드디어 무릎인공관절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부산에서 잘하는 병원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지 1년 만이다. 그 부탁을 착실히 수행했다. 아는 지인을 통해 알아낸 결과를 엄마에게 전달했다. 엄마의 수술 날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보호자이니까. 하지만 억울했다. 그녀가 나의 보호자였던 적이 있었던가.
엄마의 수술날짜가 잡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연달아 꿈을 꿨다.
첫 번째 꿈에서 더부살이하는 집에 주인집 남자아이를 죽였다. 12살짜리 남자아이를 토막 내서 죽이고 그 아이 행세를 했다.
두 번째 꿈은 내가 살던 동네가 수몰된다는 말을 듣고 동생과 함께 마지막으로 보러 가는 꿈을 꿨다. 꿈인데도 어린 시절 고생한 동생이 생각나서 울었다. 마지막 꿈은 고아원에 맡겨놓은 나의 첫 번째 아이를 찾아가라는 연락을 받고 5살짜리 남자아이를 갓난아이처럼 안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꿈을 꿨다. 엄마의 수술전날은 한 시간을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엄마의 수술과 시어머니의 수술로 3주 만에 만난 상담선생님께 그동안 참았던 말을 쏟아냈다.
그 꿈들이 뭘까요. 그리고 왜 다 남자아이일까요.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모든 꿈이 연결되어 있네요라고 했다.
뭐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일까.
가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모든 것이 명료해 보이는 그녀가 부러웠다. 하늘 씨의 12살은 어땠어요?
나의 12살이라. 처음으로 학원을 다녔다.
내가 9살에 집을 나간 엄마는 12살이 되던 해에 연락이 왔다.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은 다시 물었다.
하늘 씨에게 학원은 어떤 의미였어요?
학원, 나에게 학원은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면 동생을 챙기고, 집안일을 해야 하는 나와는 다르게 보였다.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학원에 가고 싶었다. 엄마는 오십만 원을 송금해 줬다. 하지만 12살의 아이에겐 너무 큰돈이었고, 그 돈을 가지고 혼자 학원을 등록하는 것은 겁이 났다. 아빠에게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와 함께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았다. 아빠는 그 돈으로 술을 마셨다.
그리고 술에 취한 채 나를 데리고 학원에 갔다. 처음 보는 학원원장에게 엄마가 집을 나간 이야기와 몇 년 만에 돈을 줘서 애를 학원에 보내게 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도 낯부끄러운 순간이다.
부부가 하는 보습학원의 여자원장님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학원수업이 끝나도 내가 원하면 보충수업을 해줬고, 가끔 동생 몫의 간식까지 챙겨주었다. 그 학원에 2년을 다녔다.
행복했다. 공부가 재미있었다. 예비중학교 과정까지 배우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그 행복도 오래가지 않았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돈을 보내지 않았다. 아빠가 내주던 학원비도 길지 못했다. 늘 술에 절은 상태였던 아빠의 몸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얼굴이 노래졌고, 배에 복수가 찼다. 학원은커녕 쌀 한 톨 살 돈이 없었다. 아빠가 병석에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외상값도 늘어났다. 어김없이 그날도 라면으로 저녁을 때웠다. 누렇게 뜬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누워있는 아빠를 보고 겁이 났다.
아빠가 죽을까 봐. 울면서 말했다. 할머니에게, 고모에게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말하라고, 아빠가 죽으면 우리는 어떡하냐고. 목구멍으로 채 삼키도 못한 면발을 우걱우걱 씹으며 말했다. 죽지 말라고. 아빠가 죽으면 나랑 석이는 어떻게 사냐고.
아빠는 그날 자존심을 접고 부산에 사는 큰고모에게 전화를 했다. 다음날 달려온 큰고모는 아빠의 상태를 보고 부산에 있는 동아대병원으로 데려갔다. 응급실에서 배에 찬 복수를 몇 cc나 뽑고 나서야 병실로 옮겨졌다. 아빠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고, 몇 달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빠는 퇴원 후 둘째 고모 집으로 옮겼다.
친척들이 모였다. 아빠가 죽으면 우리 남매를 어떻게 할지 의논하는 자리였다. 할머니에게 우리를 키워달라고 고모들이 말했다.
할머니는 늙은 내가 어떻게 키우냐고, 키울 수 없다고 했다. 다들 어려운 형편에 우리까지 키울 형편이 안 된다는 말들이 오갔다.
결국은 고아원에 보내라는 말까지 들리자 나는 집 밖으로 나왔다. 내 뒤를 따라 동생도 나왔다.
우리는 열 걸음정도 떨어진 상태로 담벼락에 기대 한겨울 해지는 노을을 바라봤다.
선생님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너무 슬프네요.
그녀의 말에 참았던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선생님 저는 왜 동생을 안아주지 않고, 열 걸음 떨어진 채로 서 있었을까요.
그때 저는 너무 무서웠어요.
나 하나도 책임지기 무서운 데, 아빠가 죽으면 동생을 데리고 고아원에 가서 살 생각을 하니 너무 무서웠어요.
어떡하지, 쟤를 데리고 어떻게 고아원에 가서 살지, 어떻게 쟤를 지켜주지 나 하나도 버거운데,
쟤를 어떡하지, 나보다 어린 쟤를 어떻게 챙기지, 그래서 안아주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하면 미안해요.
안아줄걸. 꼭 안아줄걸. 미안해요. 너무 미안해요.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나를 가만히 바라봐 주었다. 한껏 더 벌게진 눈으로.
그리고 천천히 입을 떼었다.
12살의 남자아이는 어떤 아이예요?
버릇없고 제멋대로예요.
그 남자아이를 떠올리면 누가 생각나요?
엄마, 아빠요.
아 나는 엄마를 죽였구나.
선생님은 엄마에 대한 나의 분노가 그 정도로 심하다고 했다.
그럼 5살 남자아이는 누구일까요?
글쎄요. 하지만 그 아이를 안고 가는데 가뿐했어요.
그 아이를 데려가라고 했을 때 첫 번째 아이를 데리고 가라고 했다고 들었죠.
하늘 씨의 첫 번째 아이는 늘 동생이에요.
담벼락에 서서 동생은 누구를 바라봤을까요?
동생도 저를 봤겠죠.
그렇게 서로를 바라봤네요.
그때부터 둘은 고아원에서 사는 것과 같았네요.
그녀의 말들이 머릿속에 두서없이 스며들었다. 동생은 말했다. 아빠에게 딱 하나 고마운 건 고아원에 맡기지 않은 것이라고. 나도 그랬다. 하지만 우린 우리만의 고아원에서 살고 있었다. 동생은 중학교2학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쉬어본 적이 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고아원보다 집이 낫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참았다. 쫓겨나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참았다. 선생님은 고아원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차라리 고아원은 의식주는 걱정 없이 해결해 주잖아요. 그런가, 그럴지도 모른다.
추운 겨울 담벼락에 서 있던 나와 동생은 이미 고아원에서 사는 것이었으니까.
그때 동생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을까.
그랬다면 나는 그때의 동생에게 사과하고 싶다.
너를 안아주지 못하여 미안하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나보다 어린 너는 더 무서웠을 텐데.
그런 너를 안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15살의 나는 13살의 동생을 데리고 우리만의 고아원에서 이제 탈출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