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빠에게
아빠가 죽었다.
나는 21살, 동생은 19살이었다.
아빠는 늘 죽음의 문턱에 한발 걸치고 살았다. 간경화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도, 술을 끊지 못했다. 아빠를 살려주세요. 처음으로 나의 소원을 들어준 하늘에게 두 번째도 들어 달라고 하는 건 욕심이었다. 아빠가 죽었다. 결국 죽었다.
내가 예상한 아빠의 죽음은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합병증이었다.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불행의 총량이 있다면 나의 총량은 얼마만큼일까. 아빠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생각했다.
아빠는 칼에 찔려 죽었다.
죽음조차 험하기 그지없었다.
차가운 길바닥에서 쉰인가 쉰 하나에 생일을 앞둔 남자가 생을 마감했다.
어김없이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가던 아빠는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신원미상의 남자와 경비 아저씨가 실랑이하는 걸 보았다.
술기운인지, 객기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아빠는 남자를 타일렀다. 당신보다 나도 많은 어른한테 젊은 사람이 그라믄 되겠나.
남자는 이미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품속에 회칼을 감추고 있었다.
누가 먼저 장소를 옮기자고 했는지는 모른다. 남자는 함께 주차장으로 갔고, 아빠는 회칼에 찔려 죽었다.
경비아저씨가 도망가려던 범인을 잡았다.
아빠는 십 년 넘게 산 임대아파트 주차장에서 회칼에 찔려 죽었다. 등교하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하던 복도식 아파트 난간, 그 까마득한 아래가 사건의 현장이 되었다.
동생은 폴리스라인 넘어 누워있는 아빠를 보았다. 하얀 홑이불 같은 것을 덮고 있는 아빠에게 가겠다며 오열하는 동생을 옆집 아저씨가 겨우 말렸다.
타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던 나에게 전화했을 때, 동생의 목소리는 나지막이 떨렸다.
아빠가, 아빠가, …….
동생은 차마 말을 끝내지 못했다.
울음소리는 곧 통곡으로 바뀌었다.
동생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누나야, 아빠가, 아빠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지만, 알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왜, 아빠가 다쳤나, 아빠가 쓰러졌나, 그러다 동생이 뭉특한 부고를 뱉어놓았다.
죽었다. 아빠가 죽었다.
무슨 소리고, 아빠와 통화한 게 며칠 전인데.
그게 무슨 소리고, 말을 제대로 해라.
아빠가 죽었다는 게 무슨 소리고,
동생은 답할 수 없었다. 그 대답은 수화기를 가져간 옆집아저씨가 대신해주었다.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내일부터 기말고사가 시작되는데,
이 시험만 끝나면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텐데, 청천벽력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늘이 노래진다는 말도 진짜였구나.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올려다본 제주의 밤하늘이 노랬다. 세상이 온통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어떻게 비행기를 탔는지, 공항에서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지금도 기억나지 않지만,
내내 한 생각만을 했다는 건 기억난다.
거짓말이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세상이 나를 이렇게까지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수는 없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빠가 나를 맞아 줄 것이다. 그럴 것이다. 죽은 사람과 아빠를 착각했겠지. 멀쩡히 살아있는 아빠가 그렇게 말해 줄 것이다. 하지만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는 알았다. 주방 건조대에 착착 정리된 그릇들이, 햇빛이 잡아채는 텅 빈 집의 먼지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빠는 죽었다.
큰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동아대 병원으로 향했다. 전에는 아빠를 살려준 병원이, 지금은 아빠를 부검했다. 어떻게 연락을 받았는지 엄마도 와있었다. 이혼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자식이 있으면 타인이 될 수 없었다. 부검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고, 비통함이 가득 찬 복도에서 형사들은 낮은 목소리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부검을 마친 의사가 형사에게 뭐라고 뭐라고 설명을 했고, 겁에 질린 우리 남매를 흘끗 본 그는 첨언했다.
아버지가 평소에 술을 많이 드셨는지 장기가 이미 많이 망가진 상태라,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오래 사시진 못했을 거라고. 이것도 위로가 될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죽음은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잔인한 마지막일 순 없었다.
부검을 마친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집에서 가까운 종합병원 부속 장례식장으로 가는 동안 앰뷸런스는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아빠를 꼭 붙들었다. 아빠의 몸은 정말이지, 차디차다는 말로는 표현이 다 안 될 정도로 깊은 냉기가 느껴졌다. 나는 자꾸만 아빠의 마른 뺨을 쓰다듬었다. 내 체온을 이렇게 전하다 보면 아빠가 다시 눈을 뜨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기적이 일어난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어떤 정신으로 3일장을 치렀는지, 곡을 하라고 하면 곡을 했고, 밥을 먹으라고 하면 밥을 먹었고, 잠시 눈을 붙이라고 하면 쪽잠을 잤다.
아빠가 죽어도, 잠을 자고 밥을 먹을 수 있구나. 그럴 수 있구나.
장례업체를 하는 엄마의 외삼촌은 우리 남매를 붙들고 큰아버지를 욕 했다.
어떻게 친동생 장례비를 깎느냐고, 큰아버지는 우리에게 외삼촌을 욕 했다. 남도 아닌데 돈을 깎아주지 않는다고. 이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일로 여기에 앉아 있는지 알긴 알까.
피붙이라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온통 잔인했다. 고모들 눈치를 보면서도 우리 옆을 지키던 엄마가 울 때조차,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드디어 아빠가 엄마를 보는구나. 그렇게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더니, 결국 죽어서 엄마를 보는구나. 화장로 속으로 관이 들어가자, 기어코 둘째 고모가 엄마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었다.
니 때문이다. 니 때문에 우리 오빠가 죽었다.
니 년이 죽였다. 니가 죽였다.
나는 오래 참은 것처럼 느닷없이 폭발했다. 처음으로 고모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라 제발 그만해라. 제발 우리 엄마한테 그만해라. 그러면서 속으로 되뇌었다. 제발 이 순간만이라도 우리 남매가 아빠를 조용히 좀 배웅하게 해 줄 수 없나. 그럴 수 없나. 끝까지 이렇게 우악스럽게 보내야겠나. 그래야겠나. 고모는 기세에 놀라, 머리채를 쥐고 있던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그러는 사이, 아빠의 화장은 끝났다.
화부가 화장을 끝낸 아빠의 형체를 보여주었다. 사람이 불에 타면 남는 건 고작, 머리뼈, 갈비뼈, 넓적다리뼈. 아빠는 세 군데 뼈로 남았다.
곱게 곱게 빻은 가루가 되어, 우리에게 한 줌으로 돌아왔다.
큰아버지가 유골함을 어떤 걸로 하겠냐고 물었을 때, 가난한 형편을 그 순간만큼은 잊고 싶었다. 나는, 제일 비싼 유골함으로 해주세요.
큰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난한 우리 아빠는 제일 비싼 유골함에 담겼다.
화장을 마치고 돌아오던 운구버스에서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아빠는 늘 말했다. 내 죽으면 이 세상에 너희 둘밖에 없디. 그러니깐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한데이.
천지사방에 너희 둘밖에 없으니 의지하고 살라고. 아빠의 말이 맞았다.
여러 날에 걸쳐 아빠의 사망신고를 하고, 유품을 정리했다. 그날은 마지막 남은 문갑을 정리하고 있었다. 문갑 서랍마다 수첩이 가득했다.
늘 자랑스러워하던 제일모직을 다니던 시절 동료에 연락처, 와이셔츠 공장 사장이던 시절의 거래처 연락처, 병영수첩, 우리 남매가 해마다 쓴 어버이날 편지들. 아빠는 누군가 버린 문갑을 주워 정성스럽게 쓸고 닦아 그곳에 자신의 추억을 차곡차곡 넣어두었다. 담담하게 마지막 서랍을 열다가, 나는 무너져 내렸다.
가난하고 가난했던 내 아버지의 꿈이 그곳에 있었다.
빈 로또용지가 서랍 하나에 가득했다.
아빠는 로또에 당첨되면 무엇부터 하고 싶었을까, 무엇을 가장 하고 싶었을까,
아빠가 죽었다. 가난했던 나의 아빠가 죽었다. 로또용지 수 십장을 남기고.
가난하고 무능력한 그가 싫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그가 싫었다.
삶의 패배자 같은 그가 싫었다. 절대로 그와 같은 사람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빠가 죽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아빠와 다르게 살겠다는 나의 꿈은 이루어졌다.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않는다.
그를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복권가게를 볼 때마다 그의 꿈이 담긴 서랍이 떠오른다.
로또가 되면 뭘 하고 싶었어.
자식들에게 원망받지 않는 아빠가 되고 싶었어.
가난하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었어.
평생을 잊지 못한 엄마에게 돌아오라고 하고 싶었어.
아니 그거 말고, 아빠는 뭘 하고 싶었어.
아빠는…아빠는 뭘 하고 싶었어.
아빠 말이야. 아빠 말이야. 아빠는…
로또와 바꿔서 어떤 꿈을 사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