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소리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졌어.

by 하늘샘



웃기는 소리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졌어.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졌어, 웃기지만.


사람들이 웃었다.

내가 또 실없는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실없는 농담을 잘한다.

심각한 분위기가 오래 떠도는 건 싫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는 차라리 가볍게 던져야 한다는 걸 살면서 깨달았다.



올해 초부터 유방에서 분비물이 나와 병원을 찾았다. 선생님은 초음파상으로 괜찮고 세포검사도 정상이나, 원인을 모르니 향후 지속관찰하자고 했다.

하지만 환자가 불안하면 전신마취를 하여 유두를 절개한 후 조직검사를 해야 정확한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전신마취’ 부분부터 이미 눈물을 흘렀다. 선생님은 담담하게 휴지를 건넸다.

주절주절 갑상선암 이야기부터 두서없이 쏟아냈다. 다시 생각하니 창피하다.

담담함을 넘어 차갑던 선생님이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 지금은 건강하시잖아요.


T였다. F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맞다.

지금은 건강하다.






두 달쯤 지나, 이 이야기를 상담선생님에게 했다. 선생님은 그래도 다른 병원을 가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흘리듯이 말했다. 너무 내 몸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것인가.

아마 지인이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면 나 또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병원은 여러 군데 가는 게 좋은 거라고.

그렇게 또 병원과 병원을 알아봤다.

성가시지만 진료기록지도 떼어왔다.

똑같은 검사를 다시 했다. 검사결과는 똑같았다.

당연하지. 이번 선생님도, 또 그런 증상이 나타나면 전신마취를 하여 유두를 절개하고….

그러면서 걱정하지 말라는 듯, 검사는 간단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너무 걱정은 안 하고 있지만, 선생님의 묘사가 끔찍하지만, 두 군데에서 같은 결과를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웃기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 졌다고 말했다.







늘 죽고 싶었다. 죽고 싶은 이유가 없는데도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나 또한 죽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 마음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어디서부터였을까. 몇 살 때부터였을까.

삶이 너무 힘들어 어서 빨리 늙고 싶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부터였을까.

아빠가 아팠을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아빠가 죽고 나서부터였을까.

너무 버티기 힘들어 이제 그만 죽고 싶다는 생각은 수천 번 했다.

하지만 내가 죽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동생이었다.

나만 바라보던 새까만 어린 눈동자.

내가 없으면 그 아이는 내 것보다 더 가혹한 세상에서 살아야 했다.

그 새까만 눈동자의 어린아이가 이제 제 몫을 든든히 해내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가소롭게도.



내가 갑상선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던 동생은 몇 년 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때 세상에 혼자 남는다는 공포가 밀려왔다고, 무서웠다고.

누나는 나의 유일한 가족이었는데, 누나마저 없다면 이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서른 넘은 녀석이 아이처럼 엉엉 울었던 이유였다.

난 물론 그때도 그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 안 죽는다. 수술만 하면 괜찮다.


선생님이 늘 말씀하신다. 나의 첫 번째 아이는 동생. 그걸 잘 키워냈으니, 나의 아이들도 잘 키워낼 것이라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고.

그래서 그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모조리 지켜봐야지.

내 안의 어린아이도 잘 자랄 수 있도록 지켜줘야지.

웃기는 소리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졌어. 진심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