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베짱이를 꿈꾸며.

불혹에 나이에도 꿈은 꿀 수 있으니까.

by 하늘샘




태생부터 자유방랑한 사람이 있다.

내가 그렇다.

늘 자유방랑을 꿈꾼다.

자유도 누리고 방랑도 누리는 꿈.

그렇지만 현실에서 나는 늘 개미다.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솝우화는 개미의 부지런함을 찬송하고 베짱이처럼 살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려고 만든 것이다.

어릴 때는 그랬다. 아 개미처럼 살아야 하는구나. 부지런하게 겨울을 준비하면서, 그래야 겨울에 얼어 죽지 않는구나. 이 기억이 왜 이렇게 오래 남아 있을까. 늘 베짱이처럼 얼어 죽지 않기 위해 겨울을 준비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요즘 새삼 베짱이를 다시 생각한다.

베짱이처럼 즐겁게,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인생도 참 행복하겠구나.

어른이 되어 다시 생각해 본 개미와 베짱이는

왜 이렇게 다른 느낌일까.




개미가 불쌍하고 베짱이는 행복해 보인다.

아마도 지금 내가 개미처럼 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합 12년의 정규교육시절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수업시간에 딴생각하기 기술만 점점 늘어났다.

선생님 말씀에 고개만 열심히 끄덕였지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개근상을 받았다. 부지런히 학교를 다녔다는 말이다. 개미처럼.

대학교도 열심히 다녔다. 휴학 없이 4년 만에 졸업했다. 개미처럼.


무엇을 위한 부지런함이었을까.

빨리 졸업해서 얼른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개미처럼… 개미도 그 정도 압박감은 못 느꼈을 것이다.




2002년에 대학에 입학을 했을 때 1학년은 바로 과를 정하지 않고, 1년 동안의 학부시절을 거친 후 2학년 때야 과를 결정했다.

그때 행정학과, 정치외교학과, 문화미디어과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TV 보는 걸 좋아했던 나는 새로 생긴 문화미디어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기 행정학과에 와있었다. 당시엔 공무원의 인기는 상상 초월이었으니까.


거기에 복수전공으로 사회복지까지 전공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이 잘되니까.

전공 2개를 이수하면서, 4년 내내 아르바이트도 쉰 적이 없다. 학점도 잘 챙겨야 했다.

그 결과로 4점대가 넘는 학점으로 졸업을 했다.


나는 개미 중에 상개미였다.

왜 그랬을까.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이었을까. 나의 열심은 오로지 생계였다.

먹고사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압박은 나의 온 생애를 짓눌렀다.

나의 부지런함은 먹고살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태어났다.




가난은 꿈도 가난하게 만들었다.

상담을 받으면서 알았다. 삶의 모든 순간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과 한 고리에 걸려 있었다.

42살에 나는 생존의 강을 다 건너왔다.

나룻배의 노를 버려도 된다. 하지만 아직도 노를 어깨에 메고 산을 헤맨다.

나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쟁터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전쟁터에 나만 남아서 어깨에 노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습관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 생존방식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힘들면 쉬어가도 되고, 아니면 포기해도 된다. 하지만 여전히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고 내가 나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 부지런함이 나를 갉아먹고 있는데도 말이다. 목적이 없는 부지런함은 나를 태워 없앨 것이다. 어쩌면 비겁한 나의 변명일지도 모른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속담처럼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었기에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과 그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난 생존이라는 꿈을 꾸었다. 이제 그 꿈을 이뤘다.

하지만 왜 자꾸 내 마음속에 누군가 계속 말을 거는 것일까.


네가 꿈꾸던 자유 방랑은 어디 갔냐고.

언제까지 그렇게 주절주절 변명만 할 거냐고.

나의 어린아이는 오늘도 나에게 말을 건다.

네가 꿈꾸던 자유 방랑한 베짱이는 어디로 갔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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