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낡은 도시의 사랑법

그때의 재희와 영이는 어디로 갔을까.

by 하늘샘


신선하다. 책을 읽으면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머릿속에 그 느낌이 떠나지 않았다.

영화보다 책은 더 묵직했으나,

영화는 가벼우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캐릭터 재희가 스크린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김고은은 재희 그 자체였다.



청춘은 참 싱그러우며, 나는 낡아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20대의 내가 스크린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부러웠다. 아니 굉장히 부러웠다. 영화 속의 그들이. 나도 저렇게 내일이 없는 것처럼 놀아볼걸.

내일이 없는 것처럼 연애해 볼걸.

클럽에서 신나게 춤추는 모습이 나올 때마다 클럽이 없었던 제주도가 떠올랐다.

기숙사 친구들과 의기투합해서 처음 가 본 곳은 관광나이트였다. 우린 제주도에 놀러 온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과 함께 춤을 췄다.

정말로 춤만 췄다. 밤새도록.


두 번째 의기투합 때는 그나마 동아리친구들과 젊은 애들이 많다는, 탑동 나이트클럽에 갔다. 그때는 꼭 블루스타임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좋아하지도 않는 선배와 어색하게 블루스를 췄다. 관광나이트건 탑동나이트이건 결국 나이트클럽이 싫어졌다.

시끄럽고 어둡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 시절 단짝은 음주가무를 참 좋아했다.

그때도 여전히 자의식이 없던 나는 친구가 가자는 대로 곧잘 따라다녔다.




부산에서 유명한 나이트클럽을 그녀 덕분에 경험할 수 있었다. 천장이 열린다는 괴정 나이트클럽, 부산에서 제일 컸다는 하단 성인나이트클럽,

물이 그렇게 좋다던 해운대 나이트클럽.

친구는 부킹도 꼭 해야 한다는 주의였으므로

난 사감 선생님 같은 눈빛으로 항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참 재미없는 20대였다.


재희처럼 살아볼걸. 역시 사람은 가보지 못한 길에 미련을 두기 마련인 것 같다.

한때 나에겐 영이 같은 남사친도 있었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처럼 현실에 찌든 중년으로 낡아가고 있을까. 아니다. 중년이라니. 인정할 수 없다. 그렇게 됐다.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는 유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찰나이기에 아름답겠지. 영화 속 저들의 청춘도 지나가겠지. 이래야 조금은 배가 덜 아프다.

이놈의 심보란. 영화관을 나오면서 괜히 심술이 났다. 젊고 예쁜 것들아 너희도 나처럼 낡아갈 것이다. 그래도 행복해라. 재희야.

그래도 행복해라. 영아.

너희는 낡아가더라도 아름답게 낡아갈 테니. 늦었지만 이 지구 어디선가 낡아가고 있을

나의 친구들도 남은 시간은 아름답게 낡아가기를 바라본다. 나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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