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의대 1509명 증원’은 그의 파면으로 25학년도에만 해당하는 단발성에 그쳤습니다. 26학년도 의대 정원은 ‘전과 동(同)’, 그러니까 24학년도 이전과 동일하게 됐습니다.
25년 4월 말 현재, 대통령 당선이 가장 유력한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정부에 이어 ‘공공의대 설립’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 후보를 지지하지 않지만, 그의 공공의대 정책은 절대적으로 지지합니다.
이유요?
1. 여러분이 의사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수술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고, 결과가 “어떻니 저떻니” 하면서 형사 소송까지도 걸릴 수 있는 외과 의사를 하시렵니까? 그렇다고 외과 의사가 다른 직역 의사보다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닙니다.
아니면, 점이나 빼고 콧대를 살짝 깎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의사를 하시렵니까?
요즘은 ‘탈모 성지 병원(의원)’도 생겼습니다. 탈모인은 많은데, 탈모약은 처방전 없이는 구하지 못합니다. 해서, 서울 종로 등 몇몇 개인 의원에서 탈모 방지약 처방전을 1년 치 1만 원, 6개월 치 5000원에 써주고 있습니다. 이런 의원에 처방전을 받으려는 탈모인들이 몰리면서 탈모 성지 병원으로 불리는 것이지요.
하긴, 동네 의원 원장으로 하루에 감기 환자를 여러 명 보면서 일해도 충분히 먹고 사는데, 왜 ‘피칠갑’한 수술복을 입고 스트레스가 왕창 쌓이는 외과 의사를 할까요?
제가 의사라면 ‘탈모성지 병원’을 운영하면서 감기 환자나 받을 겁니다. 이것, 욕할 수 있나요?
직업 선호도는 결국 돈과 명예를 따라갑니다. 똑같은 의대를 나와서 누구는 큰 스트레스 없이 탈모 처방전을 쓰거나 얼굴에 점을 빼면서 돈을 버는데, 외과 의사는 형사 소송까지 불사하면서, 게다가 피부과 의사 등보다도 벌이가 시원치 않다면, 외과 의사를 택할 사람은 없습니다.
2. 다시금 여러분이 의사라고 가정합시다.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 된 지 오래입니다. 수도권 집중을 이야기하는데, 서울에서 집 장만을 못 하니까 경기도나 인천으로 빠지는 것이지, 서울에서 살기 싫어서 경기도나 인천으로 빠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맹모와 맹부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대치동에서 공부시켜야 좋은 대학을 갈 확률이 높습니다. 그게 안 되면 목동 혹은 중계동 등으로 빠지는 것이고요.
사정이 이럴진대, 결혼한 의사라면 당연히 서울에서 살고 싶을 겁니다. 누가 슈바이처처럼 어느 산골이나 낙도에서 의사를 하려고 할까요?
3. 상황이 이렇습니다. 이것이 현금 대한민국 의료의 현실이지요. 누가 외과 의사가 되려고 할까요? 누가 낙도나 산골에서 의사를 하려고 할까요?
특정 직업에 ‘성직과도 같은 사명감’을 요구하는 것은 정말로 이기적이고 추악한 태도라고 저는 봅니다. 상대에게 요구하기 전에, 귀하가 그런 태도로 일해 보세요. 가능한지.
결국 외과 의사 등 ‘일의 강도와 스트레스 등에 비해 벌이가 많지 않은 의사 직역’ 그리고 ‘도시화가 안 된 지역’의 의사는 공공 의대를 통해 공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공공 의대 없이도 가능할 수는 있습니다. 교사의 예를 들지요.
요즘 중고교 교사 중 담임은 ‘기간제 교사’가 상당수 맡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막말로 2010년대 이전에는 ‘사랑의 매’도 가능했고, 창피한 일이지만 촌지도 있던 시절입니다.(물론 이를 거부하신 교사도 많았겠지요.)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사랑의 매는 이제 폭력으로 간주 되며,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박카스 한 병이라도 얻어먹으면 김영란법에 의해 ‘직무연관과 관련한 접대’로 간주 될 수 있습니다.
한데 담임 수당은 월 20만 원입니다. 책임은 많은데, 보상은 없다시피하니 누가 담임을 하려고 할까요? 특히나 고 3 담임은 하고한 날 야간 자율 학습도 맡아야 하는데. 이러니 기간제 교사가 담임을 하는 겁니다.
해결책요? 간단합니다. 담임 수당을 확 올리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월 100만 원으로.
한데 그 돈, 어디서 나올까요? 세금요? 우리나라에서 세금 쓸 데가 얼마나 많은데 담임 수당을 현행보다 400%p 올릴 수 있나요? 전방 지키는 군인들이 여전히 개 돼지 취급받는 것은 잘 아시죠? 그 돈 있으면 전방 지키는 군인들이나 화마와 싸우는 소방대원 님들 처우부터 개선해야죠.
현실적으로 유일한 대안은 비담임 교사의 월급을 깎아서 담임 수당을 ‘현실화’하는 겁니다. 한데, 이렇게 하자면 교사들이 동의할까요?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과 의사 지원자가 없다! 예, 의사에 대한 수술 보상비를 확 높이고, ‘고의적 과실이 없다면’ 수술로 인한 의료 소송비도 국가가 부담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돈 어디서 나오나요? 세금과도 같은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를 올리자고요? 그게 가능하다고 보세요? 변호사 평균 연봉보다 2배 이상 번다는 게 의사들의 평균 연봉인데, 외과 의사 등을 더 벌게 하려고 세금과도 같은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를 더 올리자고요?
결국 교사 담임 수당의 경우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업무를 하는 외과 의사 등에게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하는 공단지급금을 올리고, 감기 환자를 보는 의사에게 지급하는 공단지급금은 낮추는 방향’으로 우선 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 연봉을 받는 직종, 하여 ‘너도 나도 먹고 살기 좋은 의사가 되겠다는 흐름’ 때문에 00년대 이후 커트라인이 다락처럼 오른 게 의대인데, 왜 국민 주머니 사정은 생각도 않고 국민 주머니부터 털어서 의사 연봉을 올려줘야 하나요? 그 돈이 있다면, 전방 지키는 군인이나 소방대원 님들 월급부터 올리자고요.
한데, 이렇게 하자면 의사들이 찬성할까요?
결국, 특정 직역과 특정 지역에서 활동할 의사는 ‘일반 의대’와는 다른 의대(=공공의대)를 통해서 ‘최소한이나마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공공의대는 입학한 이는 교육비를 면제하든 아주 싸게 교육시키든 하고, 공공의대를 졸업하면 특정 직역과 특정 지역에서 평생 일하게 하면 됩니다.
문 정부 때도 그랬지만, 이재명 후보 역시 공공의대를 졸업하면 ‘의무 복무’처럼 ‘몇 년’만 특정 지역과 직역에서 근무시키겠다는데, 그러면 ‘의무 연한’만 채우고 죄다 서울 등 대도시로 빠지고, 점 빼고 대머리 치료제 처방전 쓰는 의사로 변할 겁니다. 그래서 ‘평생’ 근무시키자는 겁니다.
의사들은 이에 대해 “특정 직역과 특정 지역으로 의사 업무를 한정하는 것은 직업과 거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아니냐”는 말씀도 하십니다. 이분들은 아마 헌법을 단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을 겁니다.
예를 들어, 군인이든 경찰이든 교사든, 공무원은 국가로부터 임지를 임명받으면 따라야 합니다. 싫다면 그 직업을 그만두면 됩니다. 그분들이 LA에 살든 북경에 살든 상관없고요. 또한 정부 부처 중 문화부로 임명받으면 문화부에서‘만’ 일해야 합니다. 내가 문화부는 싫고 기획재정부가 좋다고, 기획재정부로 내 마음대로 갈 수는 없습니다.
공공의대 출신 의사 역시 그런 식으로 육성하고 활용하면 됩니다.
커트라인이 낮아져서 의료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분도 있더군요. 예, ‘일반의대’보다는 낮겠지요. 그래서 수능 몇 %로 낮아질 것 같아요?
제가 입학하던 84학년도에 몇몇 의대는 4% 성적으로도 충분히 갔습니다. 공공의대 커트라인이 4%대로 낮아질 것 같아요?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어차피 공대 나온 것보다는 대접받을 터이니, 여전히 공공의대 커트라인은 서울대 정도를 제외하면 여타 명문대 공대보다는 높을 겁니다. 84학번 때 4%대 성적으로 몇몇 지방대 의대 가셨던 분들이 지금 죄다 돌팔이 의사가 됐나요?
문 정부 때 공공의대 설립을 이야기하면서 시민단체 등에게 추천권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은 반드시 보완해야 합니다. 21세기판 음서제가 되면 안 되니까요.
특정 지역에서 평생 일할 의사는 가능하면 해당 지역 고교 출신에게 우선권을 주되, 지원자 중 공정하게 선발하면 됩니다. ‘학교 외적 상황’이 반영되지 않게 말입니다.
강성 우파를 자임하는 제가 공공 의대를 지지하는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