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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 안 하기로 결정한 것 잘 했다고 생각하는 까닭

싹 다 뜯어고칠 국가 기관은 선관위부터입니다

by 신형준

저는 부정선거론을 믿지 않았습니다. 부정선거로 선거 결과가 뒤바뀌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사전투표제가 도입된 이후, 저는 그 모든 선거에서 사전선거를 했습니다.


한데 이번 선거만큼은 본투표를 하겠다고 몇 달 전부터 생각했습니다. 부정선거론을 믿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어서? 아닙니다. 다만, 평소 저와 생각이 비슷했던 이들에 대한 ‘마지막 예의’ 같은 것을 차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외우 한 분이 계십니다. 고교 동창. 나라 지키는 해병으로, 대령 예편했습니다.


수년 전부터 그는 부정선거론을 애타게 말했습니다.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제발 정황부터 자세히 파악해달라고 지인들에게 부탁했습니다.


대명천지에, 게다가 보는 눈이 한 둘도 아닌데 무슨 부정선거. 빵 담는 상자에 표를 일시 보관, 사전투표장 cctv 가림, 투표용지를 담은 봉인지의 뜯긴 흔적, 형상기억용지라는 말도 안 되는 표현의 등장...


정황이나 의심스러운 상황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증거와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그렇고요. (아, 저는 사전선거 결과가 ‘특정 값’에 항상 수렴하기에 부정선거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통계 값이 일정 비율에 수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다만 그의 애달픈 호소에,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예의’를 차리고 싶었습니다. 나라 지킨 그 친구에 대한 예의... 그 단순한 이유로 사전선거를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뿐 아니라, 부정선거론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얘기했던 분이 지인 중 한 분 더 계시네요. 평생을 국가 공무원으로 일하셨던 어느 홍보 전문가.)


어제, 사전선거 안 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이제는 하다 하다 ‘식당 선거’까지 등장했네요. 투표용지를 받은 사람이 어떻게 투표장을 빠져나와서 밥을 먹고 오도록 할 수 있나요? 그럴 것이면 선거 관리 감독은 왜 하나요? 아파트 대표 선거도 이리 하지는 않을 터인데.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사람들이 믿는 부정선거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선관위가 그간 정말로 선거를 엄중하게 잘 관리 감독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선관위는 이번 선거에서 정신 바짝 차리고 일했어야 합니다.


한데도 이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이전 선거에서 선관위가 어떤 태도로 일했을지는 안 봐도 뻔합니다. 매 맞는데도 정신 못 차리는 놈이라면, 맞기 전에는 어땠을까요.


부정선거를 믿겠다는 게 아닙니다. 항상 칭찬을 받아도 언제나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기관이 선관위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국가 기관입니다. 그래서 법원에서도 선관위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고요. 감사원 감사에서조차 자유로운 기관.


한데, 질타를 이리 받고서도 이 따위(정말 ‘따위’라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씁니다.) 태도로 일하는 국가 기관을 어떻게 믿습니까? 그러니 성경 표현을 빗대서 말한다면, ‘선관위 직원이 앞으로 선관위에서 일할 직원을 낳았던’ 것이겠죠. 대대손손 직원 승계까지 가능했던 기관...


이제 선관위 하면 치가 떨리는 국가 기관입니다, 제게는...


법원 검찰 개혁요? 새 정부가 먼저 싹 다 바꿔야 할 국가 기관은 선관위입니다.


저도 이제는 부탁드립니다. 가능하면 본투표 합시다. 저런 놈들을 어떻게 믿고 사전 투표를 하나요!


#사전투표하지맙시다 #사전투표 #선관위 #식당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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