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형준 Nov 13. 2023

제주도의 ‘생태법인’ 도입 추진에 경악하면서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귀중한 지렁이의 보존을 위해 제주도의 아파트 건설을 반대한다!      


말도 안 되는 구호라고 생각하시죠? 한데, 이런 주장이 가능할 수 있게 됐다고 봅니다. 오늘(23년 11월 13일) 제주도가 발표한 ‘생태법인 특별법 추진’ 보도자료를 보면요.     


https://www.jeju.go.kr/news/bodo/list.htm?act=view&seq=1437926     


보도자료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제주도는 국내 최초로 생태법인(Eco Legal Person) 제도를 도입해 세계 평화의 섬 제주의 환경·생태적 가치를 지키고 대한민국 생태환경 정책의 새로운 표준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2 생태법인은 사람 외에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자연환경이나 동식물 등 비인간 존재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해외에서는 뉴질랜드의 환가누이 강, 스페인의 석호(바다와 강이 만나는 연안에 형성된 호수) 등 자연물에 법적 지위를 부여한 사례가 있다.     


3. 특별법 형태로 추진되는 이 사안에 대해 오영훈 제주지사는 “생태법인 제도 도입은 법 제도의 변화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인류 공통과제를 해결하고 인간 중심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문명으로 대전환하기 위한 혁신”이라고 강조했고, 법안 추진 위원장 격인 최재천 교수는 “자연을 바라보는 인식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생태법인 제도가 제주에 도입돼 대한민국이 환경 선진국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악했습니다. 환경보호(존), 무척 중요합니다. 지구온난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하나하나 묻고자 합니다.       


  1. 생태법인 지정 대상은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자연환경이나 동식물’이라고 했는데, 가치가 중요하지 않은 환경이나 동식물이 있나요? 제주도는 제주남방돌고래를 생태법인 1호로 하겠다고 했는데, 토양 비옥화나 토양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지렁이는요? 식물 번식에 1등 공신인 꿀벌은요?     


  2. 법을 제정하려면 그것이 가져올 ‘후폭풍’ 역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환경보호도 좋고, 지구 생태계 유지도 좋지만, 이 법안이 사회나 국가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앞서도 지적해듯, 법안대로라면 결국 이 땅의 그 모든 생명체 하나하나가 생태법인이 될 수밖에 없을 터입니다. 이리되면, 제주도는 앞으로 개발은커녕, 건축과 관련한 그 어떤 현상 변경도 안 될 겁니다. 아파트나 중심상업시설 신축요? 안 되죠. 지렁이 보존해야 하는데. 꿀벌 번식에 방해가 되는데. 성산읍 일대에 제주 제2공항을 짓는다고라? 안 됩니다. 항공기 소음으로 공항 주변에 사람도 살기 힘든데, 청각이 사람보다 최소한 몇 배 예민한 동물은 어찌 살라고요? 제2공항에서의 항공기 운항으로 제주도의 조류는 이동 동선도 바꾸어야 합니다. 이 법안이 제주도의 바람대로 특별법 형식으로 발의되면, 특정 동식물이나 자연환경을 생태법인으로 앞세운 사람이나 집단에 의해 제주도 내 개발행위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될 겁니다.      


  3. ‘개발이 최고다’라는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사람 생각도 하자는 말입니다. 제주도청의 바람처럼, 제주남방돌고래를 보존하고 싶다면, ‘제주남방돌고래 보존 특별법’을 만드시면 됩니다. 보도자료에 적혔듯,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그 모든) 자연환경이나 동식물에 법인격을 부여’했을 때 초래할 부작용은 제주도청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생명체는 광합성을 하지 않는 이상, 타자를 착취하면서 삽니다. 식물을 잡아먹고 사는 동물도 있고, 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동물도 있습니다. 그것이 자연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우리의 그 어떤 ‘영양 섭취 행위’는 대개 동식물 착취에서 비롯합니다. 물론 그 도가 지나치면 안 되겠죠. 그리되면 지구가 유지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러니 환경보호 목소리를 더욱 높여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정도랄까 한도는 있지 않을까요? 특정 동식물이나 자연경관을 지키는 법률안은 문화재보호법 등에도 마련돼 있습니다. 환경 관련법에도 있을 것이고요. 한데, 거기서 더 나아가서 굳이 특별법 형태로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동식물을 죄다 생태법인으로 만들겠다고요?      


저 법안 제정 추진에 브레인 역할을 하신 최재천 교수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제발 동물이나 식물 섭취하지 마시고요, 광합성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추신     


최재천 교수를 개인적으로 뵌 것은 2002년이었습니다. 그때는 개미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로서, 동물생태학 연구에 매진하는 성실한 학자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분의 주장은 ‘극단적’이 되는 듯합니다.      


지난 8월, 최 교수는 서울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했는데, ‘4대강 반대는 양심의 문제’였다고 하더군요. 개인적 신념을 ‘양심’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는 점에서, 이분에게서 오만을 물씬 느꼈습니다.      


4대강이든 댐이든 건축을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지요. 시각에 따라서 말입니다. 한데 최 교수 시각대로라면, 4대강 건설 찬성은 ‘비양심’이 되는 겁니다. 한 가지 사항에 서로 다른 방향의 두 양심이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니, ‘그냥 내 신념에 따라 4대강 건설을 반대했다’면 될 것입니다. 양심 운운하지 말고요.      

생명의 다양성을 주장해온 학자가 어찌 사상의 다양성에는 이렇게 둔감, 아니 무지한지요. 그때 지극히 실망했는데, 오늘 다시금 저를 실망시키네요.      

작가의 이전글 군대에 군의관이 지금처럼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