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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덕재 Feb 25. 2023

책방 구구절절 개점 1주일

책방 구구절절 개점 일주일 간 지인들 말고, 처음 본 사람들 가운데 인상적인 사람 몇 명을 꼽아 본다면, 여성들이 압도적이다. 남성들은 술 마시러 돌아 다니느라 바쁜 것으로 추정한다.


1 책을 들춰보며 판권을 열심히 살핀 30대 여성, “ 이 편집자가 다른 출판사로 옮기지 않았나요?” “ 이 편집자가 시 쓰는 그분 맞나요 ?” 책 내용도 관심을 갖지만 어떤 출판사에서 누가 만들었는지 관심이 많아 보였다. 여전히 책의 물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


2. 염색을 하지 않은 백발의 70대 여성 “ 카뮈 소설책이 있다고 해서 들렀어요?” k리그 개막 기념으로 카뮈의 소설을 진열해 놓고 있는데,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왔다고 했다, 축구는 관심 없지만 젊었을 때 카뮈의 소설을 자주 읽었다는 그 분은 어제와 그제 가방에서 탄산음료 한 병을 꺼내 놓고 가셨다. “가방이 무거워서요” 


3. 스스로 87살이라고 밝힌 남성은 페북을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책방이 생겼다고 해서 반가워서요. 내가 학교 앞에서 서점을 오래 했거든요” 20대 후반 경기도에서 서점을 하다가 대전으로 내려온 뒤 오랫동안 서점을 운영했다고 했다 “ 요즘 애들은 책을 너무 안 봐요.  우리 젊었을 때는 밥 사먹을 돈 아껴 책 사서 봤는데...” 나가면서 고맙게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무슨 기관에서 프로그램을 듣는데  3월에 개강하면 여기서 교재를 살 수 있도록 강사한테 얘기해 볼게요”

4. 지난 토요일인가, 불을 끄기 직전 들어온 젊은 남자 군인이 가방을 메고 서가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계산대에 책 한 권을 올려놓았다. 장 뤽 낭시가 지은 <나를 만지지 마라>(문학과지성사)


부활 첫날,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가 그를 알아보고 몸을 잡으려 하자 이렇게 말한다. "나를 만지지 마라.“ 복음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많은 걸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이병 계급장을 단 군인에게 힘차게 인사를 했다 ” 건강하게 군 생활 하세요“


5. 20대 젊은 여성 한 명이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들어오더니 휙 둘러보며 한 마디. 머문 시간은 1분 남짓 ” 불이 켜져서 들어와 봤어요. 불이 켜진 것만으로도 반갑네요“ 봄이 금방 올 것 같은 명랑한 분위기를 남기고 나갔다.


6 전형적인 파마머리를 한 50대 여성이 문을 열고 한 발만 가게에 걸친 채 ”여기서 책도 빌려줘요?“ ”빌려주지는 않아요, 그냥 들어와서 읽고만 가셔도 됩니다“  ”아, 나는 책방이라서 써 있어서 비디오방처럼 빌려주는 줄 알았지 호호호“


7 여자 초등학생, 대략 2-3학년 정도로 보였다. 이 학생이 방명록에 남긴 글은 짧았다 ” 대박나세요“  어린 학생이 생각하는 대박이란 무슨 뜻일까. 흔히 말하는 그런 뜻일까.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고.

8 책방 문을 연 채 밖에 서 있는데 50대 남성이 지나가다 걸음을 멈추고 한마디 한다 ” 치킨집이나 고깃집도 좋지만 동네에 책방 하나는 있어야죠“ 낮술 한잔 하신 듯 술 냄새가 풍겼다. 일찍 문을 닫고 술 마시러 가고 싶었다.


일주일간 많이 팔린 책은.. 1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2. 넷플릭스에 영화가 올라와서 그런지 <가재가 노래하는 곳>  3. 나태주 시인의 < 별빛 너머의 별>.. 


좁은 마음 속으로 독백 " 내 시집도 전국 여러 책방에서 하루 한 권씩만 나가도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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