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남친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남친은 나를 데리러 집 앞으로 왔고 내가 정한 식당까지는 십분 내외의 거리에 있었다. 식당으로 향하던 길 신호등은 초록불이 켜졌고 목적지를 향해 사 차선 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알고 있던 길이라 남친과 나는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중앙분리대 밑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새가 왜 저기...?'
새를 향해 손가락으로 위치를 가리켰으나 남친은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며 살펴보니 작은 까치 한 마리가 보였다.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중앙분리대 밑에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까치 모습에 신경이 쓰였다. 이대로 간다면 후회할 것 같았다. 남친에게 차를 돌리라고 이야기하였고, 남친은 잠시 쉬는 거라며 신경을 쓰지 말라고 했다. 신경이 쓰이니 다시 그 자리에 가보자며 유턴을 권유했고, 나의 성화에 못 이긴 남친은 유턴 차선에서 신호를 기다렸다.'까치가 위험하게 왜 저기 앉아 있을까?'머릿속에는 온통 까치 생각뿐이었다.
까치가 있던 갓길에 차를 세웠다. 까치는 날 수 없어 그 자리에 풀썩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두 손으로 조심히 안아 들었다. 까치는 '이게 무슨 일이지?'라는 듯 갸웃거리며 내게 몸을 맡겼다. 얼른 차에 타서 살펴보니 한쪽 눈에서 빨갛게 피가 흘렀던 자국이 있었고 다른 곳은 괜찮아 보였다. 식당으로 가려던 발길을 멈추고 내비게이션을 켜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동물병원을 검색했다. 식당과 반대 방향이었지만 그 부분은 나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드디어 병원에 도착 했다. 나는 조심스레 까치를 품에 안고 병원 접수대로 향했다. 접수대 분께서 날 보더니 수의사 선생님을 호출했다. 선생님께서는 이리저리 조심스럽게 까치를 살펴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저희는 조류를 보지 않습니다."
절망스러웠다.
"선생님, 그럼 이 까치는 어떻게 하나요?"
간절한 눈빛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애원했다. 선생님께서는 동암에 가면 특수 동물을 보는 병원이 있다며 알려주셨다.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지체 없이 동암에 있는 특수동물병원으로 출발했다. 남자 친구는 지금 이 시각에 동암에 가는 건 무리라고 했다. 평소대로라면 25분이면 가는 길인데 50분이 소요된다고 네비에 찍혔다. 금요일 저녁 퇴근 시간이라 평일 막히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린다는 만류에도 나는 동암까지 가겠다고 했고, 나를 이길 수 없던 남친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차도 막히고 신호등도 많이 걸리다 보니 자연스레 까치에게 눈이 갔다. 까치는 까맣고 동그란 눈에, 검정 부리를 지녔고, 생각보다 아주 보드라운 털이 머리통을 둘러싸고 있었다. 우리 둘은 까치를 쓰다듬으며 신기해했다.
동암동물병원의 규모는 누가 보아도 컸고 전용 주차장도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층에 올라가 접수대로 향했다. 접수대에 조심스레 까치를 내밀자, 여기서는 까치를 진료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나는 동네 동물병원에서 추천받아 한 시간 걸려 여기까지 왔다고 하소연했다. 내 하소연이 먹힌 걸까. 수의사로 보이는, 안에 계시던 파란색 가운을 입은 분께서 나오셨다. 그분은 까치를 받아 들고 '처치실'이라고 적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드디어 까치가 아픈 곳을 고칠 수 있을 거라 희망을 품었다. 접수대에서는 나를 다시 불렀다. 그분은 나에게 종이 한 장을 주었다. 첫 진료라 접수해야 하니 작성하라고 했다. 그 종이에는 이름, 성별, 보호자 이름, 연락처를 적는 칸이 있었다. 까치를 까치라고 적기 식상하기도 하고, 아직 암놈인지 수놈인지 알 수가 없어서 '까순이'라고 적고, 내 이름과 연락처를 남겼다. 병원 직원은 소파에 앉아 대기하라고 했고, 남친과 나는 새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용품의 목록을 이야기했다. 새장애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가운 입은 분이 나를 급하게 불렀다. 나는 얼른 그 사람을 따라 처치실로 들어갔다. 까순이는 부리에 잘 맞는 귀여운 호흡기를 끼고 있었고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운 입은 분에게 집중했다. 그분께서는 까치가 끼고 있던 호흡기 줄을 빼시며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까치 심장이 멈췄습니다."
이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사실 정신이 멍해져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까순이가 숨을 거둔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힘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까치가 불쌍했다. 가여웠다. 한참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내게 선생님께서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까치와 지내신 지 오래 되셨나 봐요."
"아니요. 흐흑. 방금 중앙선에 앉아 있는 걸 보고 데려 온 거예요. 흐흐흑."
"아...."
내 대답에 그분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셨다. 옆에 있던 다른 분은 까순이를 패드로 둘둘 싸매고 있었다. 접수대 앞으로 가니 화장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고, 나는 묻어줄 곳이 있다며 까순이를 받아 들었다. 접수대에 계신 분이 울고 있는 내게 병원비를 청구했다. 3만 5천 원. 남친은 병원비에 놀라 이렇게나 많이 나오냐며 반문했다. 직원분은 야간진료에, 특수 동물이라 그렇다고 설명해 주셨다. 나는 군말 없이 카드로 치료비를 결제하고 카드와 영수증을 받아 들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까순이의 사체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집 앞 화단에 묻었다. 무덤에 돌로 하트를 만들어 작은 표시도 했다. 나에겐 함께 지낸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비록 까순이와 지낸 시간은 몇 시간에 불과하다. 잠시였으나 함께할 수 있을 거라는 설렘으로 들떴었다. 내 두 손에 누워 있던 작은 생명체의 심장이 멈췄다는 말에 이름 모를 슬픔을 느꼈다. 이날, 살아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다. 집으로 돌아가니 우리 집 강아지 '짱이'가 꼬리를 흔들며 날 반겼다. 하늘에 올라간 까순이를 생각하며 짱이를 바라본다. "짱아, 언니가 앞으로 더 잘해줄게." 내게 이런 마음을 심어준 까치에게 고마운 밤이다. 주변을 더 돌아보고 애정을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