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초보에서 초보로
얼마 전, 나는
중고등학교 영어 문법 교재로 잘 알려진,
『천일문 입문』과 『천일문 기본』 두 권의 강의를 완강했다.
총 3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영어를 못한다.
문장을 마주하면 여전히 버벅대고,
익숙한 단어 앞에서도 종종 네이버 사전을 연다.
객관적인 실력만 놓고 본다면 아직도 ‘초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2024년 10월, 『트렌드 코리아 2025』를 읽으며
영어가 갑자기 ‘선택’이 아니라 ‘생존’처럼 느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만 지금 이 순간을 또 미룬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후회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영어는 늘 내 삶의 주변을 맴돌다 사라지곤 했다.
시작과 포기를 셀 수 없을 만큼 반복했고,
언제나 중간에서 멈췄다.
이번에도 대단한 각오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또 안 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보다
“이번엔 영어의 세계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조금 더 컸을 뿐이다.
공부를 이어 가는 동안,
중간에 3개월 정도 주식 공부에 집중하느라
펜을 내려놓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어느 하나도 대충 하고 싶지 않았기에
잠시 우선순위를 조정했을 뿐,
내 마음은 언제나 영어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24년 11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목표를 수정했다.
말하기보다 읽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영어는 아는 만큼 들리고,
들려야 비로소 말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속도가 느려도 괜찮았다.
두려움 없이 문장을 마주할 수 있는 힘,
원서를 펼쳤을 때 도망치지 않는 마음을 먼저 갖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문법을 붙잡았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쉽게 이해되지 않았고, 강의 내용은 머릿속에서 금세 흩어졌다.
문법을 공부하고 있는데도 문장은 여전히 어색하게 읽혔다.
알고 있다는 느낌보다
모른다는 감정이 훨씬 컸다.
몰라서 답답했던 그 시간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문법을
여러 강사의 설명으로 네 번 반복해서 들었다.
중학영문법 정우쌤, 이충권선생님, 지저스잉글리쉬,
그리고 천일문 찰리쌤과 이충권 선생님 강의는 정말 최고였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반복은 언제나 정직했다.
처음 가보는 길은 누구나 헤맨다.
하지만 같은 길을 몇 번이고 지나면 어느 순간 익숙해진다.
문법이 꼭 그랬다.
수십 번 봐도 막막했던 내용이
어느 날부터는 목차만 봐도
“아, 이 내용이구나” 하고 숲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어휘가 부족해 해석이 어색할 때도 많지만,
문장의 구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구문 해석만큼은 예전보다 훨씬 안정되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역시 답은 반복이었다는 것을.
3개월간 천일문 찰리쌤과 함께한
약 200unit 무료강의.
퇴근 후의 피로를 안고, 책을 덮고 싶었던
수많은 매일을 이겨낸 시간이었다.
지금 나는 배운 내용을 정리하며 단권화를 진행 중이다.
나만의 문법 노트를 만들고,
천일문 기본서 3회독을 목표로 문법을 체화하고 있다.
이번에는 정말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그 다음에는 단어를 공부할 예정이다.
무작정 외우는 방식이 아니라,
어원을 통해 이해하고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싶다.
그리고 쉬운 영어책, 아이들 동화부터 시작해
원서라는 바다에 발을 들일 생각이다.
그리고 천일문 핵심과 완성까지 마치고 나면
내 영어는 지금보다 조금 더 자라 있겠지.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영어를 말하는 날도 오리라 믿는다.
두 권의 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강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번 공부는 이전과는 분명히 다르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하지만 이제 영어 책을 펼쳐도
예전처럼 무겁게 다가오진 않는다.
알면 알수록 영어는 점점 재미있어진다.
그래서 초보를 빨리 벗어나라고 했나 보다.
한때는 그저 스쳐가던 문장이
이제는 내 일상이 되었다.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것이 더 가치 있다.”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끝까지 가보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영어책을 펼친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언제 도착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 지난한 시간이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쉬운 이정표가 되기를,
조용히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