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맞수 열전>을 펴내며

'민족과 국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역사교육의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며

by 역사교사의 나날들

2022년 10월 7일. 우여곡절 끝에 5년간의 작업에 거친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바로 <동아시아 맞수 열전>이다. 5년간 여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이 작업을 이끌며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다. 그만큼 이 책은 애증의 작업이었다.



이 책이 처음 기획되던 시기가 2017년, 아마 내가 마지막으로 고등학교에서 동아시아사 과목을 가르쳤던 해인 것 같다. '신규'교사였기 때문에 등 떠밀리듯 맡아 너무나 큰 어려움을 주었던 동아시아사였지만, 돌이켜보면 임용시험에 갓 붙은 오만한 젊은이를 겸손하게 또 다시 수업을 위한 노력과 실천이라는 세계로 입문시켜준 고마운 과목이다.


2013년 임용이 되고 2017년까지 5년 동안 내리 한국사와 동아시아사를 동시에 가르치면서 나는 동아시아사가 '과목'으로서가 아니라 '시각'으로 존재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소위 '세계사'라고 하는 과목과 '한국사'라는 과목에서도 이러한 시각과 방법이 반영되어야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나에겐 민족과 국가를 상대화하고 보다 넓고 다양한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구체적인 방법이 '동아시아사'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동아시아'라는 지역 렌즈로 역사를 바라보다보니 '사람'의 이야기가 어느 한 편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간된 책에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자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얼마나 반영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역연대기의 방식을 취해 현대에서 고대로 거슬러간다. 통사가 아니라 '맞수', '열전'이기 때문에 해당 시대를 상징하는 두 명의 인물이나 단체를 비교한다. 책 속에서 다루어지는 시대별 두 명의 인물이나 단체는 같은 시대에서 전혀 상반된 선택을 한 경우도 있고, 서로 다른 국가에 있었으나 비슷한 선택을 한 경우도 있다.


22개의 주제 중 내가 직접 쓴 주제(물론 여러 검토 과정에서 '우리'의 것이 되었지만서도)는 5개, 10명의 인물이다. 칼럼까지 하면 1명의 인물이 더 추가된다. 다른 분들의 원고 중에 더 훌륭하고 값진 원고들이 많으나,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이 관여한 주제들에 대해서 몇 자 언급하고자 한다.

목차.png <동아시아 맞수 열전>의 목차

양칠성과 탁경현, 하세가와 데루와 오노다 히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그리고 후세 다쓰치, 형평사와 수평사, 박상진과 판보이쩌우. 이 인물들을 관통하는 것은 민족과 국가의 '경계'의 시점을 표상하는 인물들이나 단체라는 점이다.


양칠성과 탁경현은 전범과 영웅, 피해자와 가해자 그 사이 어디에선가 표류를 하고 있다. 하세가와 데루와 오노다 히로는 애국과 매국의 개념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후세 다쓰치는 낮은 자들의 연대가 민족과 국가, 식민 지배와 피지배가 만들어낸 경계선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형평사와 수평사 역시 민족과 국가를 넘어선 낮은자들의 연대를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해치고 억압하는 것들이 그들과 함께 낮은 곳에 살아가는 '이웃'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박상진과 판보이쩌우는 식민지배 상황에 놓인 대한 제국과 베트남이 중국의 신해혁명과 연동되어 공화국을 모색하게 되는 상황을 보여주며, 각국의 독립운동은 단순한 민족 독립을 넘어서 '공화'의 가치를 지향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해당 주제들의 초고나 문제의식은 대부분 수업에서 비롯되었다. 당연히 여러 과정에서 상당히 바뀌었지만, 실제 수업을 위해 제작한 읽기 학습지가 자양분이 된 글들이 꽤 있다. 특히 하세가와 데루 vs 오노다 히로 주제는 한중일 평화교재 실천 교류회에서 발표도 하였고, 전국역사교사모임의 회보지인 <역사교육>에도 수업 사례를 발표하기도 하며 다양한 형태의 글로 생산이 된 상태였다.


제목은 '동아시아'이지만, 충분히 '한국사'나 '세계사', 중학교 '역사'에서 다루었던 경험이 있고, 다루어질 수 있는 주제들과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국사'가 아닌 '한국사', 보다 우리 손에 잡히는 '세계사'를 위해서는 이러한 동아시아적인 문제의식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판사에서 온 실물 책을 펴보니....수정사항이 미처 반영안된 것이 발견된다. 보고 보고 또 본다고 했는데

참 가슴이 미어지고 민망하다. 문득 진삼국사기표의 끝부분 내용이 떠오른다. 학부 시절 접했을 땐 그저 당대 지식인들의 허세 섞인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겸손이라 생각했는데, 김부식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신의 학술이 이와 같이 천박하고 이전 시대의 사적(事蹟)이 저와 같이 아득합니다. 이러므로 한껏 정신과 힘을 다하여 겨우 권책을 이루었으나 결국 보잘것이 없어 스스로 부끄러울 뿐입니다. 바라오니 성상 폐하께옵서 이 거칠고 남루한 편찬을 양해하여 주시고 망령된 저작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이것이 비록 이름난 산에 비밀스러이 소장될 거리는 되지 못하나 간장항아리 덮개와 같은 쓸모 없는 것으로는 돌려보내지 말기를 바랍니다."


다른 분들의 원고는 모르겠으나, 여기에 실린 나의 글들은 졸고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설픈 글과 문제의식을 토대로 더 의미있고 멋진 수업을 이끌어내줄 역사교사 분들이, 또 학생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김부식이 쓴 '간장항아리 덮개'는 현 시대로 치면 라면 받침대 같은 것일까? 어쩌다보니 또 책 작업에 참여하고 관여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또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빚을 지게 되었다. 이 책과 관련하여 마음을 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 책이 '간장항아리 덮개(라면 받침대)'보다는 지금보다 나은, 민족과 국가의 경계선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수업이 그리 낯설지 않은 역사수업 문화로 자리잡는 데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길 기대한다.

저자.jpg 책의 저자들. 전현직 7명의 역사교사들이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