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맞수 열전>, 그 뒷 이야기 -01

양칠성 vs 탁경현

by 역사교사의 나날들


가해와 피해, 전범과 영웅, 국가와 국가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그들. 양칠성과 탁경현.


양칠성은 일본군 포로감시원으로 인도네시아 지역에 갔다가 패전 이후 그 곳에서 인도네시아 독립군이 되어 싸우다 네덜란드군에게 일본군 동료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에게는 '일본인의 똥개'라는 별명이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그의 묘는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 옛 전우의 진정서로 인해 인도네시아의 국립 묘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그 묘비에는 야나가와 시치세이라는 일본식 이름과 코마루딘 이라는 인도네시아식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가 식민지 조선인이었음이 우쓰미 아이코와 같은 일본학자에 의해 밝혀지고 국내에도 소식이 알려져 지금은 야나가와 시치세이라는 이름 대신 '양칠성'이라는 한국 이름이 적힌 묘비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탁경현은 그래도 역사 다큐멘터리에서도 등장하는 등 꽤 잘 알려진 인물이다. 조선인 카미카제 특공대로 '동원'되어 오키나와 해상 어딘가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군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식민지 조선인 청년이다. 일본식 이름은 미쓰야마 후미히로. 그를 한국에 알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사실 그 이전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긴 했다만, 꽤 진지하게 알려진 것을 기준으로) 전혀 연고가 없는 일본인 배우 구로다 후쿠미였다. 꿈에서 그를 만났다던 구로다 후쿠미는 영혼이라도 그의 고향이라도 보내주고 싶다며 사천에 귀향을 비는 위령비를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도 제대로 기념하지 못하는데 카미카제 특공대를 위로하는 비석을 세우는 것에 대해 상당히 많은 반발이 있었고, 그 비석은 용인에 위치한 법륜사라는 절에 머물게 되었다.


두 인물은 저항과 지배, 가해와 피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바라보던 한국사와 동아시아사를 굉장히 혼란스럽게 만든다.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기억해야할까?


양칠성을 공부하며 '고려독립청년당'이라는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한 조선인 일본군 포로감시원들이 만든 독립단체와 그들의 항거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해 못내 아쉽다. 사실 다루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이 이야기를 엮어 어떤 스토리 라인으로 이끌고 가야할지가 잘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초고를 이미 4년 전쯤에 써놓은 상태라 가물가물하다 출간된 책을 읽다가 문득 이 기억이 떠올랐다. 고려독립청년당에서 활동한 일본군 포로감시원들 역시 친일과 저항, 가해와 피해의 경계 어딘가에 위치하는 듯하다.


책의 마무리 작업 쯤에 용인 문수산 법륜사에 위치한 탁경현 위령비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광복회 등의 시민단체와 여러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와 이 비석에 대해 문제를 삼았고, 결국 비석을 엎어 놓게 되었다고 한다. 구로다 후쿠미는 매년 법륜사에 찾았던 것 같은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엎어진 비석 위에서 자신과 함께 법륜사를 방문한 이들과 찍은 사진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인지 요 몇 년은 찾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현재 이 비석은 엎어진 채로 방치되어 그 주변에 무성하게 풀이 자라 그곳에 비석이 있다는 것조차 사람들이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문수산 법륜사를 통해 현재 탁경현 위령비의 사진(사실은 풀더미 사진에 가깝다)을 구해 책에 실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일도 몇가지 해소되었는데, 왜 탁경현과 아무런 연고도 없던 용인 문수산 법륜사로 이 비석이 가게 되었는가였다. 구로다 후쿠미의 통역을 도와주던 한국인분이 문수산 법륜사와 인연이 있었고, 이 쪽의 주지스님이 탁경현의 사정을 딱히 여겨 비석을 법륜사에 놓는 것을 허락했었다고 한다.

KakaoTalk_20221012_192508396.jpg 책에 실려있는 탁경현 귀향 기원비. 현재는 이곳에 비석이 있었는지조차 알기 힘들게 변해있다. 사진을 제공해주신 문수산 법륜사 측에 감사함을 전한다.

탁경현 외에도 꽤 많은 조선인 카미카제 특공대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아마 얼핏 글들을 보았을 때 대만인들도 특공대원 중에 있었던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다면 조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책 집필 중에 들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의 관심사에서는 꽤 멀어져 있는 주제이다. 카미카제 특공대에 대해 공부하며 해군에도 비슷한 특공대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 얼핏 기억나기도 한다.


사실 나는 혹시 몰라 모든 장에 칼럼을 넣어놨었다. 이 주제의 원래 칼럼은 BC급 전범으로 사형을 언도받았다가 감형을 받아 출소하였던 이학래의 이야기였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발효로 일본 국적을 잃은 이학래 및 그와 비슷한 처지의 식민지 조선인들은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그는 재일 조선인으로 살아가며 '동진회'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보상과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작년 3월에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학래는 2014년에 자국 출신 전범 문제를 내버려두었던 것은 위헌이라며 한국정부에도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는데 그가 죽은 뒤인 작년 8월 5:4로 각하되기도 하였다. 양칠성, 탁경현과 같이 상당히 여러 논쟁 지점들이 가로지르는 인물이며, '민족-국가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머리에 떠올리게 만든다.


이외에도 이 주제를 공부하며 스쳐지나간 '경계인'들이 상당히 많다. 이 이야기는 아마 다음에 이야기할 하세가와 데루vs오노다 히로에서 일부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