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들의 공감과 연대, 형평사vs수평사
형평사는 <한국근현대사> 과목이 등장하는 7차 교육과정 때부터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등장하였다. 그러나 민족운동인 듯 아닌듯한 일제강점기 대중운동으로 서술되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러 사정으로 본 단행본의 출간이 늦어지며, 이미 써놓았던 이 형평사와 수평사 원고가 2018년 당시 참여하고 있던 2015 개정 교육과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초고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당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한국사'스럽지 않게 새롭게 시도하고 싶었던 것은 일본의 수평사와 연대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형평사가 일제의 제국주의 침략 전쟁이 확대되어가며 친일적인 직업이익대변 단체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었다.
이전 교과서는 이상하게 '형평'이라는 단어가 보여서 그런지 제6회 형평사 대회 포스터를 주로 썼는데, 나는 한 청년이 양팔 저울을 들고 있는 제8회 형평사 대회 포스터가 '형평'의 의미를 더 잘 전달할 것 같아 이 포스터를 활용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교과서에 실렸다. 그리고 이 책의 원고였기에 이 책에도 실렸다.
2018년에 수정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역사과 교육과정에 의거한 교과서 중 내가 참여했던 금성을 비롯한 해냄, 동아 등 몇몇 교과서들도 '수평사'와의 연대를 본문에서 다루었다. 이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한국사'가 '자민족사'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시야에서 다루어지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 여긴다.
2019년, 반일불매운동과 반일감정이 고조되며, 교육부가 '역사교육 강화'라는 정책으로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하고자 하였던 기억이 있다. 이에 대해 나는 형평사와 수평사의 이야기를 토대로, 우리가 배격해야할 대상은 무엇이며, 연대해야할 대상은 누구인가에 대해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고 하며, 교육부의 정책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도 있다.([기고] '평화'와 '인권' 위한 역사교육, '학생'과 '교사'로부터 : http://www.edu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639)
미스터 선샤인 드라마에서 이병헌이 '이 나라가 독립을 하면, 노비도 백정도 잘 살 수 있는 것이냐, 누구를 위한 것이냐?'라고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1926년 형평사에 방문한 수평사 인원들과의 회의 중 형평사의 임윤재가 ' 조선이 독립한다면, 양반이나 상민의 해방이지 백정의 해방은 아니다'라고 말한 기록이 있다는 것을 보아 형평사의 문제는 '독립'의 의미와 '해방'의 의미 역시 계층과 사람에 따라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었음을 알려주며, 이것은 '전근대'의 문제와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민족운동'의 성격이 부족하면 한국사 교과서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한국사' 취급을 받을 수 없는 현 사회의 현실 속에서 이 부분을 책에서 다루기에는 다소 힘들다고 판단하였다. 아마 새롭게 등장할 교육과정에 의거한 교과서에 이러한 문제의식이 담긴다면, 그래도 지난번 교육과정보다 한 걸음 나아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주제의 포인트는 국가와 민족을 넘어선 연대이기도 하지만, 백정과 부라쿠민을 짓밟았던 이들이 그들과 처지가 딱히 다르지 않은 이웃들이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도 그렇진 않은지? 우리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들에게 혐오와 차별을 행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형평, 반수평운동에 참여한 이들을 보며 우리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지 않을까?
이 파트의 칼럼으로 기획되어 있었던 것은 부라쿠민 출신으로 중의원까지 선출되었던 마쓰모토 지이치로 이야기였다. 전쟁 중에는 그 역시 일본의 제국주의에 찬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패전 이후 수평사의 기치를 계승한 부라쿠해방동맹을 재건하며 '부라쿠 해방의 아버지'라 평가받는 인물이다.
올해는 수평사 창립 100주년, 내년에는 형평사 창립 100주년이다.
*다시 살피다가 또 오류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큰 실수를 한 듯하다. 형평사의 회원 자격은 형평운동의 취지에 동의하는 모두에게 열려있었지만, 수평사의 경우에는 기존의 융화단체들과는 차별점을 두기 위해 부라쿠민만을 회원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수평사는 사회주의 볼셰비키파의 영향으로 연대를 지향하였으며, 어떤 면에서는 형평사보다 형평사-수평사 상호연대에 상당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2쇄가 발간되어 수정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