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의 해석과 정리
난 영화를 많이 봐도 두 번 정도 보는 사람인데 헤어질 결심은 여섯 번 보게 된 영화다. 볼 때마다 새로운 걸 보게 되고 이해되는 영화! 나의 나름대로의 생각과 해석을 정리해서 남겨본다.
1. 서래와 해준의 고전적인 사랑
정안(해준의 부인)은 이과다. 해준은 이과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안은 폭력과 살인이 없으면 생기가 없는 해준을 이해하지 못한다. 정안은 해준이 경찰인 것도, 담배를 피우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아 한다. 해준이 바다를 좋아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해준이 집밥 해주는 등 집안일을 하는 것은 좋아한다. 무언가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서래는 해준을 해준 자신보다도 더 온전히 이해한다. 이해한다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가슴으로 알고 있다. 바다를 좋아하는 것도, 자신을 좋아하는 것도, 경찰이라는 직업, 불면증, 살인에 대한 태도, 심지어는 결혼생활까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해준은 정안에게는 "그걸 다 세고 앉았냐"라고 했지만, 서래에게는 "당신이 없는 402일 동안..! 흐흐흑" 한 것이다. 해준 내면의, 감추고 있었던 진짜 자아의 본모습은 서래이다. 폭력과 가깝고,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 그래서 서래가 없는 동안 해준은 사는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깊은 곳,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한 사람이기에.
영화 속에서 해준과 서래의 사랑은 굉장히 고전적인 사랑의 모양을 하고 있다.
담배를 피우게 하는 것, 잠을 재워주는 것,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 서로의 깊은 곳까지 이해하는 것...
그 사람 자체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해도 되는 관계.
이런 오래된 모양의 사랑이 스마트폰과 스마트 워치들에 둘러싸여 표현되는 것이 <헤어질 결심>의 큰 매력이다.
2. 서래의 살인
서래의 사랑은 정서경 작가님이 인용하고 싶었다던 미실의 대사에서 알 수 있다.
"사랑은 남김없이 빼앗는 것이다"
그래서 서래는 엄마를 죽였고, 기도수를 죽였고, 철썩이 엄마를 죽였다.
엄마는 펜타닐로 편안하게. 기도수는 기도수 tv에서 말한 대로 비금봉에서,가장 좋아하는 시간대인 10시에, 말로 5번을 들으면 죽어도 좋다는 말을 해서 고소공포를 이겨가면서 정확하게 그렇게 죽여줬다. 철썩이 엄마 또한 당뇨로 차라리 죽여달라고 할 정도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죽여드린 것이다. 그리고 모두 서래가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철썩이 엄마는 고맙다고 했다) 그래서 영화를 몇 번 보고 나서는 서래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의 목숨을 빼앗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래 생각하다 보니, 서래가 그들을 사랑하기에 남김없이 빼앗겨 준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서래는 엄마를 죽인 후 본인도 죽고 싶어했다. "걔 자살충동 있어요"라고 말하는 오지구의 대사에 서래를 비춘 것이 그 근거이다. 자살할 장소를 대나무로 미리 표시해둔 것에서도 서래의 자살충동을 알 수 있다.
아무튼, 그녀는 죽고 싶어 했다.
그런데 기도수를 만났고 그는 서래의 이야기를 듣고 울어준 단일한 사람이기에 폭력을 참아가면서 함께 살았다. 하지만 서래가 철썩이에게 맞을 때 10분만 참고 반격한 것처럼, 기도수 또한 관계의 10분이 넘어가자 죽인 것이다. 기도수 살해 방법은 고소공포를 이겨내고 죽여야 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기도수는 서래가 진짜로 사랑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해준만큼은 아니지만)
하지만 서래가 살인을 즐겼을까? 그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래는 자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살인을 했다고 생각한다. 죽고 싶었기에, 엄마를 죽일 때도 너무 고통스러웠기에,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 살인을 한 것이다.
사실 살인이 얼마나 번거롭고 힘든 일인가. 알리바이도 만들어야 하고, 증거도 없애야 하고, 경찰을 따돌려야 하고…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서래는 죽고 싶어서 살인을 했다고 생각한다.
도덕적으로는 앞뒤가 안 맞지만, 서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재미있는 건 두 번째 남편인 임호신이 죽었을 때, 여연수 형사의 대사에서 등에 4개의 자상이 있었다고 했지만, 수영장에 둥둥 떠 있는 임호신의 시신의 등에는 자상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건 아마 임호신이 죽은 뒤 서래가 찌른 칼자국일 것이라는 해석을 봤다. 맞는 해석인지 궁금한 부분이다.
사실 임호신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라서 서래가 진짜로 저지른 단일한 살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심지어 그녀가 직접 죽이지도 않았지만!
3. 해준의 부인, 정안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정안을 남자 주인공의 결혼 생활을 지겹게 해서, 불륜을 저지를 수밖에 없게 하는 전형적인 아내 캐릭터로 이해했다. 하지만 영화를 몇 번 더 볼 수록 재밌는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정안은 처음부터 부부 사이가 무너지고 있음을 해준이 알기도 전에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 초반 '우리 사이 괜찮은 거지?'라는 의미로 부부 사이에 관련된 주제로 대화를 계속 하면서 남편의 반응을 살핀다. 정안은 이미 붕괴되고 있는 관계임을 알고 있었지만 입으로라도 아니라고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가장 재밌는 장면은 시장에서 서래를 만났을 때이다.
나는 정안이 서래를 보고 놀란 해준을 보자마자 두 사람이 불륜 관계였음을 짐작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정안은 해준의 주머니에서 물휴지를 찾아 손을 닦고, 악수를 청한다. 그러면서 "안개는 여기를 떠나는 이유지 찾는 이유는 아닌데~?"라 말한다. '너 해준 찾으러 여기 왔지? 다 알아. 하지만 와이프는 나야'라는 의미의 말인 것이다.
임호신의 전화가 왔었다는 사실을 안 후, 정안은 해준에게 "니가 죽였냐? 니네 둘이 같이 죽였냐?"하고 묻는다. 관객석에선 웃음 나왔지만 난 '왜 저렇게 생각하지?' 싶었다. 영화를 몇 번 더 보니, 정안은 해준 안에 있는 폭력성을 알고 있었고, 서래 또한 비슷한 사람이자 불륜관계임을 눈치챘고, 살인 사건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이포에서 일어난 살인이니,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해준과 서래가 범인임을 짐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안은 떠난다. 이는 해준이 불륜을 했음을 눈치채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폭력성과 더 이상 함께 살지 못해서 떠나는 것이다. 정안이 서래를 만난 직후가 아닌 해준이 살인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후에 떠나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정안 또한 서래처럼 해준의 폭력성을 알고 있었다.
허나 정안은 그것이 싫었다. 서래는 이해했고.
어쩌면 사랑은 어떤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피를 대하는 서래와 정안의 태도도 참 재밌는 부분이다. 정안은 피 냄새를 싫어하는 해준이 피가 낭자하게 생선을 다듬는 걸 당연하게 보고 있는데, 서래는 해준을 위해 피범벅인 살해 현장을 말끔하게 청소한다. 아마 정안은 폭력과 가까운 남편이 피 냄새를 싫어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4. 서래의 외조부, 계봉석
처음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계봉석 이야기는 왜 있던 거지? 싶었다. 이 영화는 서래와 해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데, 굳이?
하지만 4번쯤 봤을 때 어렴풋이 감이 잡혔다. 그래서 이 영화는 n차 관람을 해야 하는 영화다. 처음 볼 때 이해가 안 되었던 것들이 3-4번 볼 때 우수수 이해된다.
계봉석은 조선 해방군으로, '남만주의 살쾡이'이자 일본군 대장의 목덜미를 물어뜯은, 기개가 엄청난 인물이다. 독립운동은 어떤 관점에서는 엄청나게 낭만적이고 잔인한 사랑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무너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무너지더라도, 형태도 없는 조국이라는 존재를 사랑해서, 어떨 때는 폭력적인 방식으로까지 하는 운동이다. 자기 자신에게도 폭력적이고, 그 방식도 폭력적인, 사랑의 종류이다.
그래서 계봉석의 딸인 서래의 엄마도, 서래도, 폭력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사랑을 하는 인물임을 암시하기 위해 외조부를 독립운동가로 설정했다고 생각한다.(원래는 서래의 엄마와 계봉석이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는 설정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친자식이든 아니든 그들은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계봉석의 설명을 내레이션으로 할 때에 해준이 오지구를 쫓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으로 해준이 계봉석과 비슷한 인물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5. 서래는 왜 붕괴 이후에 해준을 사랑했나
서래는 처음엔 일부러 해준에게 접근해 사진을 태우고, 녹음을 없애서 수사를 방해하려 했다.
붕괴되었다는 고백 전에는 해준은 어쩌면 기도수보다 덜 사랑했던 존재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준이 자기가 붕괴되었다고 하자 서래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 사람이 자신 때문에 완전히 망가졌다는 고백을 들으며 진짜로 마음이 동한다.
서래 또한 엄마를 사랑해서 붕괴됐었기에, 해준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서래는 자신과 비슷한, 운명적인, 어쩌면 너무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라 친척 같기도 한, 그런 사람이 해준이었음을 녹음을 반복해서 들으며 안 것이고, 사랑에 빠진 것이다.
자신이 붕괴될 정도로 나를 사랑한 사람, 그리고 붕괴되었음에도 날 지켜준 사람, 나와 비슷한 사람.
그래서 그에게 산에서 다시 만나 휴대폰을 주면서 재수사를 하라고 하는 것이다. 붕괴가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 알기에, 해준이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6. 서래의 자살
하지만 서래는 자살을 함으로써 해준을 영원히 붕괴 상태에 머물게 한다. 의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서래에게 자살은 계속 자신이 품고 있던 문제이자,그걸 실행하지 못해서 살인을 하기도 했다. 서래는 이포에 올 때 자살을 결심(헤어질 결심) 했을 것이다. "난 해준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왔나봐요."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자고, 내 생각만 해요."라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사랑하는 남자인 해준을 보고, 할아버지의 산에 가서, 사랑했던 사람들의 유골을 사랑하는 사람과 뿌린다. 서래가 삶에서 미련이 남은 일은 그것 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갈 데가 없어서', '독한년'이라서 자살한다.
사실 바다로 가는 길에 해준이 전화했을 때, 서래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기를. 그렇다면 서래는 마침내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준은 자신이 사랑했다고 말한 것도 모르는 바보였다. 그래서 서래는 마침내 자살을 해야하기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더 사랑한다 말하고("더 깊은 데 빠뜨려요") 떠난다.
서래의 자살은 그냥 자살도 아니고, 미리 대나무를 꽂아놓은 걸 보아, 예전부터 '이곳에서, 이렇게 죽어야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란 게 참 마음이 아프다. 자살방법 또한 본능적으로 살고 싶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실패하는 어려운 방법이다.
그럼에도 서래는 해준을 사랑하기에,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찾게 해요."처럼 바다에 깊이깊이 빠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 말이 너무 좋아서...
그리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헤어짐을 남긴다.
오래전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은 원래 남과 여가 한 몸이었다가 쪼개진 존재라서, 서로 맞는 짝을 평생 동안 찾아다닌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서래와 해준은 서로라는 딱 맞는 짝을 만나서, 완벽한 한 몸이 될 수 있었는데 사라져 버린다.
그런 점이 <헤어질 결심>을 오래 잊지 못하는 영화로 만드는 것 같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을 바란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