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바느질로 명상은 못합니다.

바느질에서 삶을 배웁니다_3.

by 두잉씽킹

그런 날이 있다.

퇴근 후에 집에 와서 샤워를 하면서 직장에서 있었던 일(대체로 언짢은 일)을 떠올리고 곱씹다가 내가 샴푸를 했는지 안 했는지, 로션을 발랐는지 지금 바를 차례인지 헷갈리는 그런 날.

그런 날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중에도, 마땅한 프로그램을 찾아 TV를 보는 중에도 뭉게뭉게 부풀어 오르는 말풍선에 갇히고 만다.


이렇게 생각이 많은 타입이라면 손을 놀리는 일이 도움이 된다고 해서 바느질을 시작한 것도 있다. 분명히 효과는 있는데, 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도움이 된다.

바느질이나 뜨개질이 '손으로 하는 명상'으로 여겨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고즈넉이 석양이 지는 때에 가만히 앉아서 한 땀씩 바늘 걸음을 새기는 모습은 그야말로 '고요'이다. 그렇게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 바늘 길만 걸어가는 구도求道의 상태를, 바느질만 시작하면 나에게도 허락해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실제 바느질감을 손에 쥐고 있으면 참한 구도자보다는 번뇌에 사로잡힌 중생 모드에 가깝다. 바느질 고수와는 다르게 적어도 나는 아직 그렇다.


오늘 꼭 완성하고 싶고,

완성하면 지인에게 선물해볼까도 싶고

바늘 들어갈 자리를 1mm만 옮겼으면 싶고,

비뚤어진 바늘땀은 보기 싫어 다시 하고 싶고,

다시 하려 풀어내기는 성가셔 그냥 내가 갖고 말자 싶고,


뭐 이런 식이다. 그래서 바느질 내내 속이 시끄럽다.

아직 내 바느질은 참하지도 캄(calm) 하지도 않은 소란스러운 작업이다.


럼에도 생각이 많아 고민이라는 사람이 있다면 바느질을 추천한다. 묵직하고 퍽퍽한 인생 고민에 시달리는 사람도 잠시나마 매듭짓기 고민, 고르지 못한 땀 고민, 내선물 남선물 고민 같이 가벼운 생각거리에 포-옥 둘러싸이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느질에 꽁꽁 묶여 한갓진 생각들에 집중하다가 바늘을 놓으면 마음이 꽤 환기가 되어있다. 어지러운 마음이 정리가 된다.


어쩌면 내가 정한 목표 지점까지 눈속임이나 치팅없이(땀 간격 넓히거나 대충 매듭짓거나 등) 근면하고 똑바르게 내 바늘이 걸어간 길이 시각적으로 보여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바느질에서 내가 원한 건 고요함이라는 사실은 여전하다. 아마 무아지경으로 손을 움직여도 제자리에 가지런히 땀을 놓는 실력이 되면 가능할까... 언젠가는 고요한 구도자의 바느질 경지에 다달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