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에서 삶을 배웁니다_2.
새로운 바느질 작품을 시작할 때, 사실 막 기대되고 빨리 시작하고 싶고 그렇지만은 않다.
또 얼마나 많은 바늘 땀을 놓아야 할까.
그런 한 땀 한 땀마다 보이는 나의 가지런하지 못한 바느질 솜씨에
싹 다 풀러제끼고 싶은 마음을 얼마나 눌러야 할까.
갑자기 빠져버린 실에, 제 위치에 맺지 못한 매듭에 얼마나 '아씨'를 되뇌어야 할까.
하지만 일련의 껄끄러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게 만드는 유혹의 지점이 있기에 용기를 내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바느질감(비단) 색상 고르기 작업이다.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는 날에는 공방에 가기 전 지하철에서부터 색상조합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저번에는 어두운 계열만 골랐으니까 이번에는 화사하게 가볼까?'
'이번 판의 컨셉은 엘레강스다!'
'컬러가 테라피도 된다는데, 이왕이면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색으로 골라야겠다.' 등등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공방에 와서 막상 내 손으로 비단을 만지며 마음이 가는 것을 고르다 보면 아까의 구상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래도 괜찮다. 이 과정이 좀 더 길어도 좋겠다.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면서 색을 서로 맞대어보고 바꿔보며 이번 판의 뮤즈를 골라내는 것. 만약 누군가 나 대신 골라놓은 비단을 건네주고 정확한 재단과 가지런한 바느질만 하라고 한다면 더 이상 바느질은 나에게 즐거움의 대상이 못 될 것이다.
물론 내가 고른 천을 가져왔다고 해서 막상 작업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느질 안에서 자유의 영역은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해진 도안, 정해진 바느질법과 매듭법, 정해진 완성형. 이 정해진 것들 속에서 일련의 껄끄러움과 '아씨' 유발 포인트를 무수히 거쳐야 한다.
하지만 꾸역꾸역 하게 된다. 이유는 내가 픽한 뮤즈들이 어떤 케미를 내는지, 과연 잘 어우러져서 그럴듯한 모습으로 만들어질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완성하고 싶어진다. 지난함을 거쳐서라도 끝을 내고 싶어진다.
이렇듯 내 마음이 한 조각이라도 담긴 지난함은 버틸 수 있나 보다. 그래서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나 보다.
(그래서일까...주식투자 세계의 사람들이 뻔한 지수 투자보다는 본인이 선택한 종목 주식에 투자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신만의 뮤즈를 찾아 빨강나라 끝까지 가보고 싶어서.)
바느질감 색깔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몇 시간씩 고되게 애써야 하는 일을 참을 수 있다면, 일상살이에서도 뭔가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며 시작하는 루틴을 갖는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매일 아침 먹기로 정해 놓고 얼려놓은 빵 말고, 대량구매해 놓은 드립백 말고, 사흘도리로 돌려 입는 셔츠 말고, 오늘 하루 시작에 앞서 오늘의 스페셜티를 골라잡는 것. 내 마음에 드는 빵, 차, 펜, 벨트, 향수, 구두... 어느 것 하나라도 오늘을 짓기 전에 선택하며 시작하는 하루. 어떻게 해서라도 잘 마무리 지어보고 싶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