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휴학했을 때였나, 졸업하고 백수일 때였나. 아무튼 인생이 내맘같지 않아서 고민도 하고, 허송세월을 제일 많이 하던 시기였다. 본가에 누워있는데 아빠가 등산을 가자고 했다. 머리가 좀 커진 이후 나에게 아빠와의 등산은 언제나 지루하고 귀찮은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역대급으로 귀찮았다. 아빠가 오밤중에 출발하는 일정을 계획해놓았기 때문이다.
밤에 등산이요? 아빠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등산을 하니까 밤등산도 재미있겠죠. 근데 저는 맑은 날 최상의 조건 아래 등산을 해도 조금 재미있을까 말까인데, 밤이라뇨? 하지만 제안을 거절하고 풀죽은 아빠의 표정을 보는 게 더 귀찮은 일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아빠를 따라 나섰다. 처음 해보는 밤등산이었지만 기대감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불평불만 가득이었다. 깜깜해서 앞이 잘 안 보이고, 춥고, 사람도 아무도 없고. 곰이라도 나오면 어떡해요? 투덜거리며 아빠가 원하는 지점에 도착했을 때도 여전히 세상은 깜깜했다. 정상은 아니지만 꽤 높은 곳이었고, 아래로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셀 수 없이 많은, 노랗고 작은 빛가루들. 이걸 보여주려고 데리고 오신 건가? 하지만 산동네에 사는 나에게 이 정도 야경은 흔하고 익숙했다.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채로 멍하니 서 있는데, 도시 건너 저 멀리 반대편 산 위로 붉은 빛이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태양이 보이지 않았다. 동그란 불덩이가 올라오기 전에, 하늘 색이 먼저 변했다. 검은 하늘 아랫부분을 붉은빛이 물들이면서 하늘 전체가 조금씩 푸른빛을 띠었다. 하늘을 검은색이라고 해야 할지 파란색이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질 때쯤, 깨달았다. 땅에서 반짝이던, 수많던 노란 빛가루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그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맞춰놓고 일제히 전등을 껐을 리 없다. 그러므로 사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너무 밝아서. 아직 해는 뜨지도 않았는데 그 빛이 인간의 조명을 모두 잡아먹은 것이다. 곧이어 떠오른 해는 생각보다 작았다. 동전보다 훨씬 작은, 하나의 동그라미. 저 동그라미 하나가 이 넓은 하늘과 땅을 다 밝혔구나. 에디슨의 위대한 발명품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요약하면 이런 말이다. "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구나. 내 고민이 정말 사소한 것이었구나."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아빠가 나를 산에 데려오지 않고 집 소파에 앉아서 이 요약된 말만 했다면 어땠을까? 귀찮은 밤등산 없이, 편하고 빠르게, 요지만 전달했다면. 아마 나는 아빠에게 화를 내고 가출이라도 했을 것이다.
아빠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나에게 "네 불행은 너무 사소해.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흘려버려"라고 말한다면 나는 전혀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이야? 네가 뭘 알아? 그런 생각을 하겠지. 그런데 일출에 압도당하면서 스스로 같은 결론을 내리는 일은 왜 이렇게 위로가 될까? 아마도 태양이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움, 감동, 감정의 힘은 아주 세다. 적어도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말이나 이성보다 훨씬 세다. 논리보다 강한 설득력. 그것을 이용하는 게 예술일 것이다. 언제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인간의 손으로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같은 근거로 같은 결론을 내리더라도, 논증보다 예술이 훨씬 강하다. 논문보다, 통계보다, 증명보다 아름다움이 훨씬 더 강하다.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만큼은.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