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에요?”
수업을 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대뜸 질문이 날아왔다. 열다섯 살 남학생의 질문이었다. 전에 없이 표정이 진지한 것으로 보아, 나에게 알려주진 않았지만 뭔가 인생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있는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섣불리 대답하기보다 왜 그게 궁금해졌는지를 되묻는 편이 좋다. 저 문장 하나에 무수히 많은 상황과 맥락, 의문이 얽혀있기 때문에 그걸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늘어놓는 대답은 아이의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헛돌기 쉽다. 하지만 그날 나에게는 계획해 온 수업이 있었고, 45분 동안 나가야만 하는 진도가 있었다. 그래서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글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
”쌤 생각은 어떤데요?“
”음, 나는… 누가 나처럼 되고싶다는 말을 하면, 그때 내 인생이 성공했다고 느끼는 것 같아.“
”오오~~“
교실에 앉아있던 많은 학생들이 리스펙의 신호를 보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나는 대화가 끊긴 틈을 타 서둘러 수업을 시작했고,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내 안에 이런 대답이 있었구나. 나는 성공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하는구나. 이건 타블로 때문이겠지.
타블로라는 사람이 내 세계에 들어온 것은 2006년이 끝나가는 겨울이었다. 그 전에도 예능에서 타블로를 종종 볼 수 있었지만, 그래서 이름도 얼굴도 알고 있었지만, 나는 타블로를 2006년에 처음 알게 된 것만 같다. 그 전까지 타블로는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연예인 1명이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켜면 나오는, 텔레비전을 끄면 세상에서 사라지는. 다른 모든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타블로는 내 세계에 들어온 첫 번째 연예인이기도 했다.
그날 나는 열세 살이었다. 시간을 때울 무언가가 필요했고, 언니의 추천으로 라디오를 틀었다. 자발적으로 라디오를 켜고 귀 기울여 들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라디오에선 “타블로와 조정린의 친한 친구”가 나오고 있었고, 그날 그 라디오에서 에픽하이의 노래 ”Fly”를 처음 들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절대로 내 꿈을 포기 못해.” 세상에 이런 노래가 있었어? 이런 생각이, 이런 사람이 세상에 있었어? 그날부터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방에 틀어박혀 2시간씩 라디오를 들었고, 타블로가 하는 얘기들에 매일매일 매료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열세 살은 가치관을 형성하는 시기다. 세계를 해석하는 자신만의 색안경을 만들어가는 시기. 그 시기에 나는 타블로를 들었고, 타블로가 하는 모든 말을 진리로 받아들여 신념으로 삼았다. 건물에 비유하면, 타블로는 내 지반공사였다. 건물을 쌓아올릴 땅바닥은 모두 타블로로 만들었고, 타블로라는 전제 안에서 벽과 지붕을 쌓아나갔다. 지금까지 내가 나의 모든 면을 비난하고 통째로 허물고 다시 짓는 시기가 두 번 있었는데, 그때에도 바닥만은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나를 미워하고 모조리 버리고 싶어하던 그 시기에 정작 내 밑바탕, 가장 근본이 되는 부분을 바꾸지 않을 만큼 나는 타블로의 생각들을 좋아했다. 그때 썼던 일기에 이런 문장이 있다. “나의 빛나는 부분은 전부 타블로의 조각들이다.” 근본을 그대로 가져갔으니 아무리 헌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어봤자 완전히 새로운 인간이 되는 데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실패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 그렇게까지 타블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까? 가설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열세 살에 만난 것이 우연히 타블로였을 뿐이라는 것. 오리는 눈을 뜨고 처음 만난 대상을 엄마라고 생각해서 내내 따라다닌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나도 오리처럼, 세상을 보기 시작한 그 시기에 처음 만난 것이 타블로였기 때문에, 타이밍이 원인이 되어 타블로를 쫓아다니게 되었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이미 내 안에 있던, 하지만 있는지 나도 몰랐던 생각들을 타블로가 언어화해줬다는 것. 쉽게 말해, 내 성향이 어느 정도 확립된 상태에서 타블로의 말들이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타블로 말고도 많으므로, 타블로 이전에도 그런 사람이 내 인생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기억에서 삭제해버리고, 처음 만난 것이 타블로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므로, 아마도 두 가설이 모두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우연한 타이밍과 나의 기질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겠지. 아무튼 그렇게 타블로는 나의 첫 덕질 대상이자 변치 않는 본진이 되었다. 최초이자 최고의.
내가 타블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증명할 만한 일화는 엄청 많지만, 네 가지만 써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운전면허에 관련된 것인데, 타블로는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었다. 일부러 따지 않았다고 했는데, 방송에서 그 이유를 명확하게 말한 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들은 바가 없다. 그런데도 열세 살의 나는 타블로를 따라서 운전면허를 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유는 그냥 괜히, 멋있어보여서. 그런데 내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서른 살의 타블로가 혜정언니와 결혼하면서 운전면허를 땄다는 얘기를 들었다. 배신자! 타블로에게 배신당한 이후에도 운전면허를 따지 않겠다는 나의 결심은 유지되었는데, 어찌어찌 살다보니 서른한 살에 운전면허를 따게 되었다. 우연히도, 결혼준비를 하던 기간에. 신혼집이 근무지로부터 너무 멀다는 이유로. 타블로도 나도 비슷한 나이에 결혼이 계기가 되어 신념을 버리고 운전면허를 획득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어이없고 좋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타블로가 운전면허를 땄다는 얘기는 헛소문이었다. 그는 아직도 운전면허가 없고 나만 배신자로 살고 있다.)
두 번째 일화는 정말 뜬금없지만, 사회주의에 관한 것이다.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북한을 연상할 것이다. 그 다음은 김정은, 핵폭탄, 뭐 그런 것이겠지. 그러나 스무 살 겨울, 친하게 지내던 선배들이 사회주의자였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내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것은 타블로였다. “타블로? 사회주의자래.” 이 충격적인 문장은 에픽하이의 노래 가사다. 타블로는 진짜 사회주의자일까? 혹은 젊을 때, 과거형으로? 내가 알 길은 없지만 어쨌든 그 순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머릿속에는 북한이 아니라 타블로가 떠올랐고,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랬기 때문에 그 선배들로부터 멀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나의 대학 생활은 어마어마한 변화를 겪게 된다. 매일 수업을 복습하던 대학생이 학생운동을 하고 우울증에 걸리고, “한때 넌 똑똑했지”라는 말을 듣는 대학생으로 변했으니까. 그 모든 게 다 타블로 때문이라는 말이다. 북한이 먼저 떠올랐다면 아마 도망치지 않았을까? 이상한 사람들이다! 하면서 그날 들은 수업을 복습하러 갔을 것이다.
세 번째로는 비슷한 일화들을 하나로 묶어 소개하려고 한다. 열네 살에는 존경하는 사람을 발표하는 학교 수업 중에 타블로에 대해 발표했다. 연예인을 고른 학생은 나뿐이었다. 독립운동가나 세종대왕, 아니면 자기 부모님을 발표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열여덟 살 생활기록부 ‘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 란에는 담임선생님이 이렇게 써 주셨다. “자신에게 꿈의 소중함과 꿈을 향해 열심히 도전하고 노력하는 삶이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는 이유로 연예인 타블로를 롤모델로 삼고 있으며…(후략)” 모르긴 몰라도 연예인 이름이 생활기록부에 적힌 학생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스물한 살에는 대학교 ‘인문학 글쓰기’ 수업에서 과제로 ‘나를 소개하는 글’을 쓰라길래 타블로를 소개하는 글을 써서 제출했다. 사람은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닮아간다고, 나는 타블로를 멋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지금까지 점점 더 타블로를 닮아왔고 앞으로도 닮아갈 거라고.
존경하는 사람, 롤모델, 되고싶은 것. 나에게는 그 3가지가 모두 같은 질문이고, 답은 언제나 타블로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친구들 앞이든 선생님 앞이든 자랑스럽게 타블로라고 얘기했고 나는 타블로를 자랑스러워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타블로는 내 스타이자 내 자랑이었고 타블로가 나를 빛나게 했다. 타블로가 멋진 사람일수록 멋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나의 안목이 멋있어졌고, 내가 되고 싶은 나의 꿈이 멋있어졌고, 그 꿈을 닮아가는 내가 멋있어졌다. 나는 타블로처럼 되고 싶었고, 그 마음이 나를 타블로처럼 되게 했다.
열네 살이 시작하는 1월에 에픽하이는 4집을 발매했고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돈을 주고 음반을 구매했다. 연예인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에게 돈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그래서 나는 타블로의 팬이 된 기점을 그날로 지정했다. 그때 타블로는 스물여덟 살이었고, 자연스럽게 스물여덟은 나에게 특별한 나이가 되었다. ‘타블로는 스물여덟에 나의 롤모델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스물여덟에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의미에서.
영화 ‘틱틱붐’의 주인공 조나단은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직업적 성취를 이뤄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긴다. 꼭 조나단이 아니더라도, 내 또래 대부분이 노래방에서 한 번은 ‘서른 즈음에’를 불러보았을 것이다. 늦어도 서른 살에는 꿈꾸던 어른이 되어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초조함을, 다들 조금씩은 느끼는 듯하다. 그들의 서른이 나에게는 스물여덟이었다. 스물여덟에는 무언가가 되어 있고 싶었다. 타블로만큼 멋있는 것, 타블로처럼 멋있는 것이.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도. 그런 나를 안심시킨 것은 중학생의 한 마디였다. “선생님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나는 누군가의 ‘되고 싶은 것’이 되고 싶었나 보다. 타블로가 나에게 그렇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네 번째. 열세 살의 나는 불법다운로드 음원뿐만 아니라 온갖 mp3 파일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열네 살부터 나는 주로 CD를 사서 음악을 들었지만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라이브 무대의 녹음 파일을 모았다. 관심없는 뮤지션의 음반에 타블로가 피처링을 한 경우 그 곡만 음원 파일을 구매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파일이 쌓이다 보면 언제 녹음된 파일인지 알 수 없게 되기도 하는데, 나에게는 목소리만 들으면 그것이 대략 몇 살의 타블로인지 구분하는 능력이 있었다. 스물네 살의 타블로, 스물여섯 살의 타블로, 스물여덟 살의 타블로는 목소리가 달랐다. 타블로는 랩하는 스타일도 해마다 달랐고 말할 때나 가사를 쓸 때 자주 쓰는 표현도 해마다 달랐으므로 ‘스물여섯 살의 타블로가 발매한 노래를 스물여덟 살의 타블로가 방송에서 부른 소리다’ 하는 식의 구분도 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과거형으로 적은 이유는, 삼십대 이후의 타블로는 거의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에픽하이와 타블로가, 그리고 그들의 음악이 내 안에서는 거의 같은 개념이라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미쓰라진이 쓴 가사도, 투컷이 만든 비트도, 심지어는 에픽하이의 곡에 피처링한 사람이 들고 온 가사도 내게는 전부 타블로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아니라는걸 알면서도. 나에게는 타블로가 그 모든 것을 대표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안에서 타블로가 그 모든 것 없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어로 명확히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첫사랑 상대와 젊은 시절의 자신을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첫사랑 상대, 젊은 시절의 자신, 좋아했던 감정, 그때 경험한 사건 등등은 다 다른 개념인데도 그것들을 분리해서 추억하기 어려운 것처럼, 나에게 타블로와 에픽하이와 그들의 음악은 감정적으로 분리되지 않는 개념이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글을 이어가 보겠다.
삼십대의 타블로가 만든 음악은 그전만큼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 타블로가 화를 내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타블로가 자신과 관련된 일에만 화를 내기 시작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가사를 잘 곱씹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데, 오랫동안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정확히 표현하면, ’99‘라는 이름의 음반부터. 그때 타블로는 서른세 살이었다.
이십대 타블로는 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하다가도 무례한 문자가 오면 청취자에게 화를 냈고, 옆에서 조정린이 그를 말리느라 쩔쩔맸다. 일본 대사관에 전화해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화를 낸 적도 있었다. 데이트폭력을 행하는 남성들에게, 혹은 여성을 성매매로 내모는 사회에게 화를 내는 노래를 쓰기도 했다. 2026년의 내가 볼 때 2007년의 그가 여성차별을 다루는 방식이 적절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그건 그 개인의 한계라기보다는 당시 한국 사회의 한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2007년의 나보다는 2007년의 그가 여성인권적으로 훨씬 나았고, 그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 배운 여성담론이었다.
타블로가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싫었다. 나를 그의 팬으로 만든 4집에서 타블로는 정말 다양한 사람을 위해서 화를 냈는데, ’99‘ 앨범부터 타블로는 거의 자기자신을 위해서만 화를 내는 것 같았다. 타블로의 마음 속에 타블로 1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 일에도 화를 내지 않는 건,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일 거라고. 타블로가 더 이상 이십대가 아니었던 것처럼 나도 더 이상 십대가 아니었고, 그래서 타블로의 모든 행보를 진리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게 불만이 생겼고, 그래서 사십대 타블로가 공연하는 에픽하이 20주년 콘서트도 보러 가지 않았다. 이십대의 타블로가 만든 노래만 듣고 또 들으면서. 나는 여전히 이십대 타블로의 팬이었지만, 삼십대 그리고 사십대 타블로의 팬은 아니었다.
같은 이유로, 20주년 콘서트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 ’에픽하이 더 무비‘도 원래는 관람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셋리스트에 노래 ’무제‘가 있는 걸 봤고, 예매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제는 못 참지. 그리고 영화관에 갔는데, 상영관에 사람이 딱 3명 앉아 있었다. 모르는 사람 1명, 나, 그리고 에픽하이에는 관심 없지만 나를 따라 온 당시의 남자친구. 나를 제외하면 에픽하이를 보러 온 사람은 그 상영관에 1명뿐이었던 셈이다. 민망할 만큼 텅텅 빈 상영관에서 나는 상영시간 내내 눈물을 줄줄 흘렸다. 훌쩍이는 걸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눈물콧물을 흘리면서 2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사십대의 타블로가 이십대의 타블로와 너무 똑같다는 것. 외로워서, 다른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음악을 시작했다는 타블로. 그 시절의 본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십대의 타블로.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감동적인 말을 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감동적인 말을 하면서 꼭 자기가 우는 타블로. 20주년이란 숫자가 무겁다고,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많다고 영화 속에서 사십대 타블로가 말했다. 그런 타블로를 보면서, 어쩌면 그는 여전히 화가 많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타블로는 여전히 감동적인 말을 하면서 자기가 우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타블로는 여전히 화가 많은 사람일지도 몰라. 단지 표현을 못 하고 있을 뿐. 화가 나는데,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는 화를 내기도 하는데, 미디어나 매체나 음악 등 내가 볼 수 있는 곳에서는 참고 있는 중인지도 몰라. 나도 그러니까.
20대의 나는 20대의 타블로를 닮아서 화가 많았다. 정치적 사건, 일상 속 불의, 부당한 차별 등등에 화가 났고 화를 냈다. 30대의 나는 여전히 20대의 타블로를 닮아서 화가 많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직장에서 그 모든 화를 표현하지는 않는다.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퇴근 후에 친구에게만 이야기하지, 공개적으로 화를 내는 일은 거의 없다. 쉽게 말해, 사회 생활. 그러니까 어쩌면 타블로도.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 상상이 현실이기를 바라면서.
타블로는 타진요 사건 직후 발매한 솔로앨범에서 말했다. “Don’t act like you know me ‘cause you recognize me. You sell my record, not me.” 노래 제목은 “Dear TV.” 텔레비전은 타블로를 전부 담지 못한다. 타블로가 보여주는 모습만 일부 담을 수 있을 뿐. 방송에게 하는 말이자 타진요, 악플러, 헤이터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통쾌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타블로의 전부가 아니라 TV에 비친 일부만을 볼 수 있는 것은 나도 안티팬들과 마찬가지니까. 그들과 나는 똑같이, 타블로를 알지 못한다. 타블로가 화를 내는지 안 내는지, 타블로의 마음 속에 타인이 있는지 없는지, 그들도 나도 알 수 없다. 그들처럼 나도.
2024년, 에픽하이는 2004년 음반에 들어있던 음악을 틀어놓고 이런 대화를 한다. “사실 이 음악이 나오면 뭐라도 까야 될 것 같은데.” “저희는 그대론데 시대가 바뀌었네요.” “할 말을 줄여야겠죠?” 어쩌면 내 상상은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서 얻은 두 번째 깨달음은, 내가 여전히 타블로를 닮아가는 중이라는 것. 영화관에 앉아있던 나는 서른한 살이었다. 영화에서는 삼십대의 타블로가 만든 노래들이 흘러나왔고. 삼십대의 타블로가 그 노래들을 발매했을 때, 당시 이십대였던 나는 그 노래들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그랬는데 그날은 그 모든 노래들이, 내 얘기인 것만 같았다. 꼭 처음 듣는 것처럼 날아와 내 마음에 박혔다. 2012년에 타블로가 발매한 음악이 2024년의 나를 울렸다. 타블로와 나는 14살 차이다. 노래는 12년을 기다려 내게 닿았다.
그랬구나. 삼십대의 나는 삼십대의 타블로를 닮았구나. 여전히 나는 저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밟으며 자라고 있구나. 이십대를 지나보내면서 내 이십대가 타블로의 이십대와 참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삼십대의 나도 삼십대의 타블로를 닮았다는 사실은 그날에서야 알았다.
영화 속 타블로는 ”살면서 비오는 날이 없을 순 없겠지만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의 우산이 되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멘트와 함께 부른 노래에는 "그대의 그림자는 나의 그늘"이라는 가사가 있다. 타블로의 그림자가 나의 그늘이구나. 이십대의 타블로가 외로워서 만든 노래들이 나의 외로운 이십대를 지켜주었다. 삼십대의 타블로가 드리운 그림자는 삼십대의 나를 지켜주고 있다. 나는 여전히 사십대의 타블로가 만든 노래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십대의 나는 그 노래들을 전부 공감하겠지. 내 얘기 같다고 생각하겠지.
사십대의 나는 틀림없이 사십대의 타블로를 닮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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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존경이란 개념을 분석하듯이 쓰기보다는, 제가 한 인간을 열렬히 존경했던 경험을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써보았습니다. 써놓고 보니 제가 원래 이 시리즈를 통해 하고싶었던 작업이 이런 것이었다는 생각도 드네요! 다음 글은 어떤 형식일지 저도 궁금합니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들고 왔어요. 더 성실히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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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에픽하이의 노래가사를 많이 인용하고, 차용했습니다. 큰따옴표로 표시하지 않은 부분에도 꽤 숨어있으니 찾아보시는 재미가 있을지도…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