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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이곳이 치앙마이

1일차인지 0일차인지.

by 비읍비읍

6시간 반을 날아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했다.

치앙마이가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공항과 시내가 가깝다는 점도 한몫하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올드타운 내에 '반 후엔 펜'이라는 태국식 부티끄 호텔에 묵었는데, 공항에서 택시로 15분 만에 도착했다.


저녁에 도착하긴 하지만 하루를 그냥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내와 나는 최대한 숙소에 짐을 푸는 것까지 빨리 끝내고, 조금이라도 치앙마이를 느껴보고 싶어 했다.


저녁 9시에 숙소에 도착했고, 리셉션에 혼자 앉아있던 분과 체크인을 진행했다. 리조트도 아니고 호텔도 아닌 독특한 형태의 구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게 부티크 호텔인가- 하고 들어갔다.

내가 따뜻한 나라에 온 게 맞는지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는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샌들을 신고 밖으로 나가니 알게 되었다. 이곳이 밤에도 영상 25도의 태국 치앙마이구나-하고 말이다.


이날 이후로도 한 2일은 내가 휴가를 온 게 맞는지, 한국의 영하 10도를 피해 따뜻한 나라로 온 게 맞는지 인지부조화를 좀 겪었다. 그저 즐기면 됐었는데, 내 머릿속은 한국의 기온과 한국에서의 일들로 가득했던 것 같다.


산책하고 먹을 것도 좀 먹고 돌아오는 길에는 편의점에 들러 물도 사려는 계획으로 숙소를 나섰다. 생각보다 치안이 좋은 상태로 보였고, 인도는 좁았지만 삼삼오오 걸어 다니는 여행객들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걸어 다니며 보이는 정말 커다란 나무들에 1차 충격을 받고, 아주 세세한 곳까지 장식과 문양이 빼곡히 들어선 걸 보면서 2차 충격을 받았다. 더 자세한 건 다음날 낮에 구경하면 될 것 같은 기대감을 뒤로 남겨두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호기롭게 길거리 매대에서 먹어볼까- 했는데, 아직 현지화가 덜 되었는지 멀쩡한 가게를 찾아 들어가서 먹는 걸로 결정했다. 어느 정도 외국인들이 있는 가게에 들어갔는데, 배고픈 우리와 달리 맥주 한 병만 마시고 있다든지, 코코넛 워터를 각자 1개씩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우 허기진 우리는 메뉴판에서 팟타이, 쏨땀, 오징어 튀김을 시켰다. 종업원 중에 응대하는 사람 따로, 주문받는 사람 따로, 음식 가져다주는 사람 따로 있었는데, 아마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지 여부로 갈린 것 같다. 우리가 가게에 들어올 때 너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 주신 분에게 주문을 하려 했더니, 갑자기 당황을 하며 누군가를 급히 불러왔다. 그분도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this", "two", "check plz"는 알아들으시는 것 같았다.


이날 이후로 우리는 태국에서 '튀김'은 안 먹기로 결정했다. 팟타이나 야채/과일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굳이 고기와 튀김을 먹을 필요는 없다는데서 합의를 이룬 셈이다. 그리고 퀄리티가 너-무 낮은 느낌이라 태국에서는 태국식으로! 제대로 해보기로 했다.


처음 온 태국에서 처음 먹는 태국 음식!

맛은 꽤 쏠쏠하고 준수했다. 한국에 워낙 외국음식을 현지스타일로 가져오는 가게가 많았어서 그런지 비교할 수 있었다. 특히 쏨땀이 태국의 김치라고 불린다는데, 입가심을 해주는 상큼한 맛이었다. 팟타이는 왠지 한 그릇 더 먹고 싶은 맛이었는데, 1.5인분으로 팔면 아주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여행 중에 적어도 팟타이는 4~5번 먹게 되지 않을까? 하며 각 음식점마다 맛을 비교해 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곳은 집을 짓거나 건축물을 지을 때, 기존에 있는 나무를 베어내거나 옮기지 않고 그대로 활용하는 것 같다. 가게 중앙에 큰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지붕과 벽을 지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긴 나무가 적당히 큰 수준이 아니라 엄청나게 높고 두꺼운 특이한 형태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KakaoTalk_20250303_122536014_01.jpg 건물 안에 진짜 나무에서 진짜 망고가 자라고 있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길을 나서는데, 길거리 매대에서 꼬치구이를 팔고 있는 것을 봤다. 주변에서는 목욕탕 의자처럼 생긴 것에 앉아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분위기에 나도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내와 소고기 2개, 돼지고기 2개를 시켜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개당 15바트였으니 한화로 2500원 정도였다. 극 소형 화로를 사용해서 꼬치를 굽고는 디테일하게 탄 부분을 가위로 잘라내었다. 대충 데코레이션 할 수도 있었겠으나, 산적같이 생기신 주인장이 정성스레 상추 위에 오이도 깔고 고수도 올려주었다. 이런 모습에 작은 거 하나에도 진심이시구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너무 조금 시켜놓고 자리 차지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KakaoTalk_20250303_122536014_03.jpg 섬세하고 친절한데, 티셔츠는 찢어져있는 사장님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세븐일레븐에 들러 생수를 사는데, 치앙마이 현지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한 외국인들이 편의점으로 모이는 것 같은 기분을 받았다. 그래서 편의점을 이용하고 싶지 않아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행을 할 때 현지-스타일이 아닌 곳을 가거나 한국인들이 몰려있는 곳을 보면 본능적으로 도망치게 된다. 그냥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아지는 것 같고, 한마디도 입 뻥긋을 안 하고 싶기도 하다. 여행 온 만큼, 그 나라의 문화에서 그 나라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다고나 할까?


숙소에 돌아와서는 널찍한 베란다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한잔씩 마시면서 이야기했다. 나는 아직도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어안이 벙벙'해 했고, 아내는 그런 나를 진정시켰다.


숙소의 인테리어는 눈에 띄는 특이점이 몇 개 있었다.

일단 엄청나게 큰 원룸 형식의 방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큰 응접실에 1인용 대형 의자(소파..?)가 2개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천장에 대형 샹들리에가 있는데, 샹들리에를 놓기 위해 해당 부분만 천장을 3m를 높게 뽑아버렸다. 조금 더 앞으로 가면 킹사이즈 침대가 있고 왼쪽으로는 베란다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응접실 오른쪽에는 화장실이 있는데 24명은 동시에 사용해도 될 것 같은 투머치하게 넓은 화장실이었다.


KakaoTalk_20250303_122536014_02.jpg 샹들리에를 위해 천고를 높여버린 독특한 인테리어.


곳곳에 대형거울이 있었고, 태국 국적의 작가로 추정되는 분의 유화 그림이 방 4면에 각각 하나씩 있었다. 화장실 손잡이는 공작새 같은 새로 장식이 되어있었는데 되게 멋있었다.


다음날 화이팅있게 여행!을 하기 위해 잠에 들어야 하는 시간이 됐다. 불을 다 껐는데 샹들리에를 어떻게 끄는지 모르겠는 것이다. 이 버튼 저 버튼 다 눌러봐도 찾을 수가 없어서 리셉션으로 내려갔다. 새벽 1시라서 그럴 순 있다지만... 리셉션이 다 퇴근해 버린 이 상황은 무엇인가? 아내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다가, 전기 전원을 들어오게 하는 객실 키를 뽑아버리고 자기로 결정했다(?). 눈이 부셔서 못 자는 것보다 에어컨 없이 약간 답답하게 자는 게 더 낫지 않겠나-하는 이유였다.

(다음날 리셉션에 문의해 보니, 우리가 시도한 방법 중 조도를 낮추는 다이얼을 '딱'소리 날 때까지 돌리는 게 방법이었다...)


신기함과 낯섦, 호기심과 기대감을 일단 접어두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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