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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에서 비문학으로

감상자에서 설계자로 move forward

by 비읍비읍

나는 글을 열심히 써보려 하고 있다.

특히 많은 것을 보고, 읽고, 감상하는 내게 '후기'의 형식을 빌려 글을 쓰는 일은 자연스럽고도 본능적인 흐름이었다. 후기는 내가 경험한 순간의 감정과 기억을 세세히 되살릴 수 있는 수단이었고, 때로는 사진이나 영상보다도 더 생생하게 그 장면을 환기시켜줬다. 또한 후기는 내가 느낀 바를 타인과 나누고 토론할 수 있는 '생각의 운동장'을 만들 수 있었다는 장점이 있다. 줄거리보다 훨씬 더 많은 감상, 분석, 상상, 의문점들이 그 안에서 피어났다.


내가 브런치스토리에 주로 올린 주제는,
책을 읽고 난 후, 여행을 다녀온 후, 혹은 영화를 본 후—그 모든 글들이 후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최근에는 독서 후기를 꾸준히 올리고 있으며, 후기를 올리면서 내가 읽기만 하고 기억에서 날려버리는게 아니라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후기에서 비문학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경험과 성찰을 넘어서서, 내가 먼저 무엇인가를 제안하는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아니, '언젠가는'이 아니라 이제는 그렇게 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내가 최근 감명 깊게 읽었던 『페이크와 팩트』, 『정의란 무엇인가』, 『부의 심리학』 같은 책들을 보면, 작가들이 본인의 개인적인 감상만을 써 내려간 것이 아니다. 그들은 주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구조와 논리를 갖추고 있다.


예컨대 『페이크와 팩트』에서는 진실과 거짓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챕터별로 파고들며, 왜곡과 프레이밍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사회과학적·심리학적 사례로 풀어낸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개인의 직관을 흔드는 질문을 던지고, 각 사조별 정의관을 치밀하게 구성해가며 독자가 생각을 전개하게 만든다.
『부의 심리학』은 돈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형성되고, 그것이 실제 투자 행동과 어떻게 엇갈리는지를 정리하며, 인간의 비합리성과 재정적 태도에 관한 명확한 논지를 이끌어낸다.


이처럼 작가들은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구조화된 메시지를 설계하는 입장에 서 있다. 나는 그런 글을 '비문학적 글쓰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후기에서 벗어나 그런 글을 쓰는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후기형 글쓰기에서 출발해, 이제는 내가 먼저 어떤 문제를 정의하고 그에 대해 제안할 수 있는 글쓰기를 시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런 방향성은 내가 일하고자 하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아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은 결국 어떤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거나 새롭게 구조화해내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무언가를 설계하고, 셋업하고, 운영하는 일이다.



후기형 역할의 한계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떠올려보자. 초년차 시절에는 구조화된 시스템 안에서 단위 업무를 맡게 된다. 시스템적인 루틴, 때론 잡무로 느껴지는 반복작업들이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에 관여하게 되지만, 그 의사결정이라는 것도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선택지를 고르는 정도일 수 있다.

특히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일수록 '결정권자'는 윗선이고, 실무자는 결정된 안건을 문서화하거나 실행하는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인사이동이나 보고라인처럼 사소해 보이는 조직적 변수에 따라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나 발언권도 제한된다.


담당자의 열의나 역량이 아무리 높아도,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권한은 제한된다. 결국 주어진 역할 안에서만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구조다. 중요한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도, 그 결정은 상위 부서나 경영진으로부터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판단이 조직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퍼즐의 조각을 맞추는 데 그치게 되는 셈이다. 이런 조직 안에서의 일은 마치 후기를 쓰는 글쓰기와도 유사하다. 큰 조직 속에서 중요한 일을 하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큰 구조의 일부를 담당하는 일에 불과할 수 있다.


물론 최근에는 수평적 문화, 자율적 협업, 직급 파괴 등을 지향하는 기업들도 많아졌다. 구글, 네이버, 카카오 같은 기업들은 일찍부터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 기반의 목표 설정 방식이나 팀 중심의 유연한 의사결정 구조를 도입해왔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도 역할의 ‘프레이밍’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주도적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과, 그 방향에 따라 실행하거나 보완하는 사람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실제로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이 프로젝트는 누가 ‘그림’을 그리고, 누가 ‘따라가는지’는 자연스럽게 정해진다"는 인식이 공공연하다. 그렇기에 아무리 유연한 환경 속에서도 ‘후기형 역할’의 애로는 계속 존재할 수 있다. 이는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 기획과 실행의 간극, 또는 구조를 제안하는 사람과 그 구조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 사이의 근본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대기업의 시스템 안에서는 구조화된 역할 수행이 대부분이지만, 나는 과거 회계법인에서 일할 때 이와 유사하면서도 또 다른 종류의 간극을 경험했다. 대형 비상장사나 2조 이상 상장사의 감사팀에서 일하며, 누군가가 내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회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당시 나는 내가 그 회사의 해외 플랜트를 총괄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실상은 해외 플랜트의 재무정보가 감사보고서에 충실히 반영되어 있는지만을 체크했을 뿐이다. 나는 일정한 확률분포 위에서, 양자역학적 결론을 써 내려가는 감사인이었다.



비문학 역할의 매력: 설계자와 운영자


그렇다면 "말하자면 무언가를 설계하고, 셋업하고, 운영하는 일"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까지 이야기한 대기업 조직이나 빅펌 회계법인에서의 업무와는 결이 다른 사례가 있다. 로컬 회계법인에서 개업한 친구들은 매달 15만 원짜리 기장 수수료를 받으며, 연간 3천만 원도 되지 않는 감사 보수 속에서 법인 설립부터 각종 인허가, 세금 신고, 회계 처리, 투자자 실사까지 모두 직접 다룬다. 이 일은 단순히 감사보고서를 작성하는 수준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업 전반을 꿰뚫고 설계하며, 의사결정을 하나하나 실시간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 일은 내가, 저 일은 저쪽 부서에서'라는 분업적 사고가 통하지 않는 구조. 오히려 기획과 실행, 책임까지 모든 것을 한 사람 혹은 소수의 팀이 아우르는 형태다.


작년에 벤처캐피탈 업계에서 일하시는 이사님과 저녁을 함께한 적이 있다. 그분은 VC업계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왜 이 일을 계속하는지를 설명해주었다. 본인은 스타트업을 직접 창업할 만큼의 아이디어나 추진력, 카리스마는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창업자의 기업가정신을 곁에서 배우고 따라가며 일하는 데서 더 큰 의미를 찾는다고 했다. 그분에게 있어 VC라는 직업은 단순한 자금 공급자가 아니라, 창업자들이 세상을 바꾸는 여정을 함께 설계하고 밀어주는 조력자의 위치였다. 마치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본다'는 말처럼, 스스로 모든 걸 창조하진 않더라도 창조자 옆에서 그 시야를 공유하며 일하는 방식. 나는 그 태도에 깊은 공감이 들었다.



후기에서 제안으로: 나의 출발점


나는 아직도 구조화된 틀 안에서 후기만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치 증권사 백오피스에서 규정 준수만을 강조하는 사람처럼, 내가 느끼는 세계와 경험을 그저 감상으로만 남겨두는 것은 아닐까?


단지 글을 쓰는 방식에만 머무는 문제가 아니라, 일의 방식, 삶을 바라보는 태도까지도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상자에 머무르는 사람과, 스스로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나는 그 간극을 좁히고 싶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세계를 구조화해보고 싶고, 문제를 인식하고 그에 대한 나만의 해답을 제안해보고 싶다. 그것이 곧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앞으로 일을 설계하는 방식이며, 궁극적으로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다.


이제는 나도 글을 통해 제안하고, 구조를 짜고, 주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후기에서 비문학으로.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구조를 짜고 실행해내는 '설계자', 혹은 의미 있는 흐름을 만들어내는 '조율자'가 되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글쓰기의 방향 전환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 일을 대하는 자세,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 전반의 변화이기도 하다.


나는 당장 다음 스텝으로 창업자나 기업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과 태도를 글쓰기를 통해 가까이에서 배우고,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천천히 구현해가고 싶다. 창업과 투자처럼 거대한 흐름을 설계하진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편의 글을 진지하게 써내려가는 것. 그렇게 쓰고, 사유하고, 나누는 일부터가 나의 출발점이자 연습일 것이다. 마치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사람처럼, 멀리 있는 것을 보기 위해 오늘도 조심스럽게 발돋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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