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에게서 배우는 프로정신
어느 날 강남에서 약속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늦은 시간 택시가 잡히지는 않았지만, 지하철로 갈 수는 있었으니 대중교통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로 지하철을 탔다. 집에 도착할 때는 마치 얼마 마시지 않은 것처럼 '멀쩡한'상태가 되어야 했기에- 택시보다 지하철이 더 좋은 방법이었겠다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참 독특하다.
최근에 옛 가수들의 라이브영상을 찾아보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추천해 준다. 마침 이런 감성과 적당한 길이감의 영상이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다행이다.
가수 이예준 님이 '그날에 나는 마음이 편했을까'라는 노래를 버스킹 하는 자리에서 부르는 영상을 봤다. 이 영상은 이미 10번도 넘게 본 것 같은데 매번 새롭다. 매번 처음 보는 영상인 것처럼 거의 비슷한 순간에 소름이 돋는다.
'그래 가수라는 건 저렇게 독창적인 감정을 넣어서 부르는 것이지'라고 생각해 본다.
저렇게 이별하는 감정을 수시로 꺼내야 하는 직업은 어떤 삶일까? 생각해 본다. 대충 불러서는 감 떨어졌다는 소리만 들을 텐데, 매번 기억의 편린들을 끄집어내어 노래 부르기에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본인의 마음을 다 드러내며 슬픔을 표현한다는 것이 정말 인상 깊었다.
그러다 다음 영상에는 빅마마 이영현 씨가 나왔다. 킬링보이스라는 콘텐츠에 빅마마 네 분이 다 나와서 명곡들을 부르는 영상이었다. 이것 역시 이미 5번은 본 것 같다. 볼 때마다 그 노래를 들었던 과거의 내 어떤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기분이 든다. 이제 와서 찬찬히 보니 빅마마 멤버 중 이영현 씨보다 덜 주목받은 분들의 가창력과 음색, 표현력을 눈여겨보게 된다. 하이라이트만 있어서는 요리가 아니지, 바닥을 다져주는 베이스(기타)가 꼭 필요한 것이겠지 싶다. 댓글에는 '교수님들이 하는 팀플의 정석'이라며 요란을 떨기도 한다.
그 바로 다음 영상을 보는데 노래방에 간 이영현 씨가 나왔다.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본인이 누군지 밝히지 않고 빅마마 노래(또는 이영현 씨 솔로곡)를 부르는 영상이었다.
캬 이번에도 장난이 아닌 가창력이구나, 콘서트도 전율인데 이토록 가까이서 보면 얼마나 감동일까- 싶은 생각을 하며 영상을 봤다. 심지어 하이라이트 구간에서 손짓과 머리카락 털기 등등 그녀가 얼마나 이 노래에 매진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그래! 이영현 노래는 온몸으로 쥐어짜며 감정을 토해내는 노래지!
그러다가 문득 이영현 씨의 거-의 변하지 않는 열정이 프로정신이라는 프레임으로 내게 박혔다.
그분의 입장에서는 명곡이라거나 사랑받는 곡이라는 것을 대체 몇 년을 불러왔던 것일까.
한번 행한 것을 거의 그대로, 퀄리티 그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같은 곡에 같은 퀄리티와 같은 감동을 줄 수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저 음원으로만 남아있었다면, 20년이 지난 이 시점까지 듣는 사람들만 찾아 듣는 노래로 사장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유튜브에 나와서 노래를 하고, 콘서트장에서도 노래를 하고, 행사를 가서도 노래를 하며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프로라는 건 계속해서 높은 레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05년도에 중학생인 내가 느낀 빅마마 노래의 감동을, 2025년에도 어느 누군가가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가수들이 존경스러운 순간이었다.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본 라이브 영상들은 감정을 잘 전달해서, 가창력이 좋아서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걸 부르는 사람의 태도가 멋있었던 것이다. 요즘엔 그런 게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