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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bo May 12. 2022

아중저수지와 금팔찌 (part 2)

이란 혁명이 왜 거기서 나와

** part 1이 있습니다. 먼저 읽으시는 편이..절대적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중 저수지는 내 기억속엔 없지만, '원래' 그곳에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렇다. 우리 동네 인후동과 접한 우아동 남쪽에 붙은 저수지. 거기에 있다는 건 언제나 알았지만, 2018년 여름이 되어서야 민물매운탕을 먹으러 처음 갔으니 그곳을 안다고 할 수도 없고, 모른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1952년에 농업용수를 가두는 용도로 조성됐다는 아중리 저수지는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가서는 안되는 곳이었다. 지역 변두리 저수지에 한 번씩은 있을 법한 흉흉한 사건이 잊을만하면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까지만 전주에 살았던 나에게는 막연히 위험했다.


전주에서 다소 늦게 개발된 동네가 아중리다. 찾아보니 전주시가 2016년에 아중 저수지를 아중 호수라고 개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를 계기로 전주가 호반 도시로 발전할 것이라는, 아마도 그러면 좋겠다는 전주 시장님의 바람이 살짝 가미된 듯한 기사가 나온다. 내 짐작으로는 저수지라는 이름에 붙은 오래된 듯한 이미지를 산뜻하게 바꿔보려고 한 것 같다. 이름 갈아끼우기는 억만금 드는 일도 아니고, 뭐라도 해보려는 시도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70년된 저수지 이름 하나 바꾼다고 전주가 춘천이 되는 건 무리다. 본격 호반 도시로 발돋움하는 것까지는 언감생심이라 해도, 저수지 주변 사유지에 빽빽히 들어찬 카페며 매운탕집, 가든을 피해 물 위로 저수지 가장자리를 쭉 둘러 데크를 지은 수변 순환 산책로는 2018년 말 완공되자마자 우리 아부지를 포함, 전주 시민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했다.


오..밤엔 이렇다고 한다 (출처: 전주시청)


아닌게 아니라 공원 옆 주차장은 차로 넘쳤고, 인근 주택가 골목은 이중 삼중으로 아무데나 차들이 거의 버려진 게 아닌가 싶게 세워져 있었다. 왜 그런거 있지 않나. 영화에 보면 킹콩이나 고질라 같은 것이 뉴욕시 한복판에 나타나자 운전자들이 모두 차를 그대로 세우고 일제히 달아나버린 것 같은 장면. (전주 음식이 말도 안되게 후하고 맛있다는 건 이제 온 나라가 안다. 그런데 외부에 덜 알려진 것에 비해 더 인상적인 특징은 엄청난 불법주차라고 생각한다. 가관을 넘어 장관이다.) 아빠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거의 길 한복판에 차를 세우고 내리라 해서 너무 놀랐지만, 연휴니 상관 없나, 늘 오는 양반이니 알고 하는 거겠지, 어찌됐든 내 차는 아니니 괜찮다고까지 생각이 미치니 조금 편해졌다. (이후로도 아빠는 아중천에 달리기하러 간 날, '건물 앞 절대 주차금지' 표지판 앞에 떡하니 차를 세웠다. 이쯤 되면 주차에 관한 한 전주 사람들만 이해하는 숨겨진 코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관광 도시가 되어..그렇다고 합니다. (출처: 전라일보)


꽤 추운 날이었다. 물 위로 산책로가 지어져서 그런지 저수지를 둘러싼 언덕배기에서 내려와 호수 위로 부는 바람도 제법 셌다. 물가에서 물을 보는 풍경은 익숙했지만, 물 위로 걸으며 물 안쪽에서 바깥을 보는 느낌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낯설고 좋았다. 데크 양 옆을 따라 저수지 가장자리에 살얼음이 껴있어서, 어느 지점에서는 얼음 아래로 바람에 밀려가는 물결이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새 같기도 하고, 악기로 하는 연주같기도 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콧노래도 작게 나올만큼,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었다. 내 앞에 걷던 엄마가 'AC!!!' 하는 소리와 동시에 오른쪽 눈꼬리로 흐릿한 것이 휘릭 튕겨 날아가는 걸 보기 전까지는.  


평화롭게 오후를 마무리하려던 우리는 순간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산책로 난간 너머 얼음 위에 작고 누런 고리가 보였다. 엄마가 늘 차고 있던 금팔찌. 엄마는 한 4키로를 걷다보니 슬슬 몸에 열이 올라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박력있게 잡아빼며 벗었고, 장갑 손목에 걸쳐져 있던 팔찌가 함께 빠지며 휙 날아간 것이었다. 데크 아래쪽 물로 퐁당 빠졌어야 할 팔찌는 마침 추운 날씨에 얼어붙은 구간의 끄트머리 즈음 착지해서 그렇게 그림의 떡이 되었다.


희미한 작은 고리..ㅜㅜ (똥손 죄송)


사람 마음이 묘하다. 그게 물로 퐁당 빠져서 눈앞에서 사라졌다면 안타깝지만 우린 쉽게 단념했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서 있는 산책로 데크는 물에서 3미터는 족히 올라와 있었고, 팔찌는 데크 아래 기둥에서 최소 5미터는 떨어져 있었다. 그러니 삼각형 빗변에 해당하는 우리 시선과 팔찌 사이의 거리는 어림잡아도 7-8미터. 그런데 이게 눈에 뻔히 보이니 착잡한 것이었다.


우리는 난간에 팔을 괴고 한참 팔찌를 봤다. 등뒤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 사람들이 걷다 말고 물을 내려다보나 궁금해하는 시선도 느껴졌는데, 그 때만큼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나는 대충 엄마가 이 팔찌를 먼 곳에 살던 친구로부터 받았고, 함께한 시간이 내 나이만큼 된다고 알고 있었다. 그 세월 동안 마음이 깃든 물건을 그렇게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 순간 이입돼서 왈칵 속상해졌지만, 정작 당사자가 담담해 보이기에 내가 먼저 슬플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엄마는 충격이 큰 탓인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잘 훈련된 고양이를 보내서 주워오라고 하면 어때?' (어?!!!)


'수건 같은 걸로 삭삭 쓸어 오면 되지 않을까?' (이건 무슨 말인지 감도 안잡힘)


'119에 전화하면 좀 그런가?' (엉...엄마. 그러면 팔찌 잃어버린 게 문제가 아니라...신문에 나와요. 욕을 전국적으로 먹을 수 있어.)


내가 아는 한 그 누구보다 총기가 팔팔한 엄마가 더 헛소리를 하기 전에 매듭을 지어야 했다.


'엄마, 저 팔찌와의 인연이 다한 모양이네. 작별 인사를 하고 가요.'


 '저게 이란 혁명 때 간신히 빠져나와 나한테 온 거야. 그 때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면서..'


응? 이란 혁명? 그게 왜 거기서 나와요. 이거 뭐야 ㅋㅋㅋㅋ


왠지 아련해지던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렇다. 방금 엄청난 이야기 보따리의 한 귀퉁이가 툭. 뜯어진 것이다.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일명 창세기 화법의 권위자. 모두 지쳐 나가 떨어지고 나서 한참 지나도 본론이 나오지 않는 가공할 TMI가 엄마의 장기다. (이 글은 어쩌면 배워서 써먹는 도둑질이다.)


이 팔찌 이야기는 사실 전에도 여러 번 들었다. 물론 귓등으로.  그런데 이번에는 제대로 멍석을 깔아드린 책임이 있었고, 이 팔찌와 엄마의 인연이 끊어질 기로에서 내가 먼저 감정이입을 해버린 탓에 열심히 듣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엄청난 디테일이 콸콸 쏟아져나왔다. 아빠는 액땜했다고 치라며 손사레를 치고 이미 슬슬 주차장 방향으로 뒷짐을 지고 멀어지려 했고, 우리는 주춤주춤 안떨어지는 걸음을 옮기며 엄마 얘기를 들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당시 팔레비 왕조에 반발하여 종교 지도자인 호메이니가 1979년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고, 사람들은 빠르게 혼돈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나라를 앞다투어 탈출했다. 이란에 살고 있던 엄마 친구도 공항을 통해 간신히 나오려 했는데, 공항은 이미 총 든 군인들이 가득 차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군인들이 눈만 크게 떠도 급하게 챙겨나온 금붙이며, 돈을 죄다 그 자리에서 포기하고 몸만이라도 빠져나오는 것을 천우신조라 여겼다고 한다. 남자들은 당연히 몸수색을 당했고, 여자들도 잔뜩 움츠러들어 입고 걸친 값나가는 것은 죄다 내놓는 분위기였다고. 울엄마 친구는 그 긴박한 상황에서 손목 반뼘 위부터 팔꿈치 사이에 시계며 팔찌 같은 것들을 꽉 올려붙여 옷소매로 가리고 나오는 기지를 발휘했다고 한다. (나...나이스. 리스펙)


그렇게 간신히 목숨만 건져서 고국으로 돌아와 고향 친구들을 만난 자리였으니 얼마나 각별한 마음이었을까. 엄마는 그 날 입고 있던 흰색 손뜨개 조끼가 이쁘다는 말을 친구가 하자 선뜻 벗어줬고, 친구는 고마움에 이란에서 목숨걸고 가져온 가느다란 금 실팔찌 네 개 중 하나를 엄마에게 줬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 팔찌가 엄마 팔을 떠난 적이 없었던 이유다.


그 팔찌는 24k보다는 덜 누렇고 단단한 정도로 보아 14와 18k 사이 어느 즈음인 것 같고, 아주 작은 훌라후프처럼 가느다란 고리 모양으로 바깥면을 자세히 보면 섬세한 빗금이 촘촘히 새겨져서 꽤 정교했다. 엄마와 만나기 전 팔찌의 생은 알 수 없으나, 금이니 소홀한 대접을 받진 않았을 성 싶다. 그리고 간난신고 끝에 중동에서 한국까지 와서 물경 43년을 엄마와 동고동락한 그 팔찌가 이제 아중 저수지 얼음 위에 위태롭게 누워있는 것이다. 오호 통재라.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마음이 되어 걷는데, 불쑥 나도 모를 말이 나왔다.


'근데 이렇게 포기하긴 너무 아깝잖아. 뭐든 한 번 해볼 수는 있는 거 아냐?'


아뿔사. 나 새키 지금 뭐라고 한 거냐. 날은 춥고 바람도 솔찬히 불고...진짜 하자고 덤비면 골치아픈데. 급 후회가 몰려왔다.  


나한테 무슨 계획이랄 게 있었을 턱이 없다. 다만, 이건 실패해도 재밌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산책 후 낮잠 타임을 놓칠새라 조바심이 난 아빠가 자꾸 액땜했다 치라고 하는 소리가 거슬렸던 탓도 조금은 있겠다.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튀어나온 마음의 소리가 평소의 나의 것이 아니었음은 확실했다. 마치 김영하 작가가 내 마음속에 들어와 '삶이 여행이라면 모험의 문턱에서 그냥 돌아서긴 아쉽지 않은가요. 밑져도 우리에게 신나는 이야기가 남는다면 더욱.'이라고 속삭인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니 그 순간은 말하자면 그가 뿌린 씨앗이 내 안 어딘가 숨어있다가 떡잎을 하나 펼쳐 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부인의 추억이 깃든 금팔찌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K 남편이지만, 딸들에게는 다만 다정함밖에 모르는 아빠가 어거지로 궁리를 시작(하는 척을)할 때까지도 여전히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가나 보고 싶은 마음 외에는.


'낚싯대를 가진 사람이 누가 있나....저녁에 전화를 한 번 해봐도 되고...'


'그러면 그냥 포기하자는 말이죠. 이건 지금 해야돼 무조건.'


우리의 직장인 D가 자기도 모르게 대화에 빨려들며, 내가 지핀 불씨에 석유를 부었다. 화르륵. 이제는 그냥 가는 거다. 이 산책의 시작에서도 그랬듯이, D의 참여는 중대한 국면의 전환을 의미했다. 내가 아는 한 D는 그때까지도 그저 한없이 피곤할 뿐이고, 어서 집에 가서 반듯하게 누워 회사독을 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그녀의 자아가 훅 치고 올라왔으니, 그것은 이른바 해결사 성격이다. D는 소름끼치는 기억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남다른 문제 해결 능력을 보유한 우리집 꾀보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지금까지 모든 상황과 대화를 입력해뒀던 그녀의 컴퓨터 두뇌가 이란 혁명이며, 고양이며, 수건이며, 119이며, 낚싯대며...하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참다 못해 나선 것이다.


(part 3에 계속.....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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