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부산, 이제는 지역 예술가 중심으로
대한민국 제2의 수도, 부산은 화려한 해양 경관과 역동적인 산업 도시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문화예술 도시로의 전환을 모색하며 부산콘서트홀을 개관했고, 2027년에는 부산오페라하우스도 문을 열 예정이다. 대형 문화 인프라의 확충은 도시의 위상을 높이고, 문화예술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킨다. 그러나 진정한 문화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과연 웅장한 건물만으로 도시의 문화예술이 성장할 수 있는가? 그 답은 분명하다. 공간이 아니라 사람, 곧 지역의 예술가와 창작자가 중심에 있어야만 공연장은 비로소 살아 있는 문화공간이 될 수 있다.
특히 부산콘서트홀은 국내외 유명 연주자나 단체의 무대가 주를 이루는 ‘객연 중심 공연장’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유럽과 영미권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콘서트홀 운영 방식과 유사하다. 그러나 문화예술의 생태계가 뿌리내린 대부분의 유럽 도시에서는 이와 같은 대관형 공연장을 반드시 지역 기반의 ‘제작극장’과 병행하여 운영한다. 객연극장은 세계적 수준의 공연을 시민에게 제공하고, 제작극장은 지역 예술단체의 상주 공간으로서 고유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창작하고 축적한다. 문제는 부산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공극장이 이 두 기능을 명확히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극장 안에서 혼합된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이제 부산은 새로운 문화예술지형의 분기점에 서 있다. 공연예술 경관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부산콘서트홀은 기존 부산문화회관이 담당해 온 국내외 기획공연의 상당 부분을 흡수할 것으로 보인다. 2027년 오페라하우스가 문을 열면, 음악극과 발레 중심의 주요 콘텐츠 역시 그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즉, 도시의 공연예술 중심축이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부산 공연예술의 핵심 거점은 (재)부산문화회관 산하의 부산문화회관과 시민회관이었고,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7개 시립예술단체—교향악단, 합창단, 국악관현악단, 한국무용단, 연극단, 청소년오케스트라, 청소년합창단—는 지역 공연예술 중심을 지탱해 왔다. 그러나 대형 공연장의 등장과 함께 이들이 ‘빈틈을 메우는’ 보조적 존재로 인식될 우려가 크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부산 문화예술의 주체가 누구인지 성찰이 필요하다. 공연예술의 지속성과 지역성, 공공성을 함께 고민할 때, 오랜 역사와 전문성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부산시립예술단이 그 중심에 자리해야 한다.
부산시립예술단은 부산 문화예술의 소중한 자산이자 미래 성장 동력이다. 그러나 현재 그 역량은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자체 공연은 109회, 관람 인원은 약 4만 명에 그쳤고, 2024년에도 105회 공연에 약 5만 명 수준에 머물렀다. 부산 인구 340만 명을 고려하면, 시민 100명 중 1명만 시립예술단의 공연을 경험한 셈이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이 격차는 더욱 분명해진다. 독일의 단독 콘서트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은 한 시즌 동안 각각 평균 100~150회의 공연을 소화하며, 이와 별도로 지역의 제작극장은 시즌 평균 500회 공연 및 행사를 가진다. 부산시립예술단의 공연 규모와 공공성은 이에 비춰 분명 미흡하며, 이는 부산만이 아닌 국내 대부분 공공예술단체가 직면한 공통 과제이기도 하다.
물론 예술단체의 성과를 단순히 공연 횟수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시스템이 본연의 역량을 끌어내고 있지 못하다는 점은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 각 장르가 가진 고유한 매력과 예술적 가능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역할 재정립이 시급하다. 예술단체의 존재 이유는 공연 제공을 넘어서 예술 교육과 지역 문화 정체성 확립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는 공연예술 소비층 확대뿐 아니라 미래세대 관객을 개발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부산시립교향악단은 단지 명곡을 연주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부산시향만의 소리’를 구축해야 한다. 특정 작곡가나 레퍼토리에서 독보적인 해석과 음색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은 시민들에게 하나의 문화적 자산이자 지역 정체성의 상징이 된다. 나아가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합주체가 아니다. 서로 다른 음색과 기능을 지닌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는 구조 자체가 공동체의 축소판이며, 이는 예술의 공공적 가치와 직접 연결된다. 각 악기의 고유한 소리를 이해하고, 이들이 어떻게 하나의 음악으로 결합되는지를 경험하는 과정은 단지 음악적 훈련을 넘어서, 다양성과 협력, 창의적 공존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이러한 접근은 예술의 의미와 역할, 공공예술단체가 사회와 맺는 관계를 시민과 공유하는 교육이다.
국악관현악단도 같은 맥락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현대적이다’라는 말처럼, 국악은 전통이라는 기반 위에서 오히려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가야금, 대금, 해금 등 국악기의 고유 음색은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못지않은 감성과 깊이를 지니며, 현대 작곡기법과 결합해 색다른 예술 실험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서양 악기에 더 익숙해져 있으며, 아이들 역시 서양 오케스트라 악기 구성은 알지만 국악기 구성은 낯설어한다. 이는 단순히 공교육 부족 탓만이 아니다. 지역 공공예술단체가 학교 교육과 적극 연계해 국악 접촉 기회를 넓히고, 국악 매력을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국악이 단순 전통 보존에 그치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문화로 살아 숨 쉬려면 예술단체가 주도하는 지속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교육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
‘찾아가는 음악회’가 단순 실적용 공연에 그치지 않으려면, 공연 프로그램의 질적 내실화와 장기적인 예술교육 연계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공연 횟수만 늘린다고 공공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단체가 시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진정한 공공성을 실현하려면, 그 활동이 시민 예술 감수성과 문화 권리를 확장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부산시립무용단은 전통 한국무용을 바탕으로 한 창작무용에서 뛰어난 예술성과 독창성을 보여준다. 이들의 역량은 국내를 넘어 국제 경쟁력으로 발전할 충분한 가능성을 지닌다. 이를 위해 해외 예술단체와 교류 확대, 마케팅 전략 강화, 인근 국가와 문화외교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 이러한 활동은 부산의 예술성과 지역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고, 도시 문화적 위상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부산시립연극단은 남부지역 연극계의 상징이자 오랜 전통을 지닌 자부심 있는 존재다. 그러나 전통에 안주한 정체는 곧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연극은 무대 장치와 제작 과정이 필수적인 장르이기에, 제작극장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공연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자체 제작하고, 여러 팀이 병행해 활동할 수 있는 유연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연극단은 2~3개 팀이 상시 운영되며, 배우는 연기에 전념하고 무대 제작, 분장, 의상, 소품 등은 전문 인력이 분업적으로 협업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특히 연극은 국어, 영어, 역사, 정치 등 다양한 공교육 과목과의 연계를 통해 교육적 파급력 또한 크다. 따라서 부산문화회관을 연극 중심의 거점 공간으로 설정하고, ‘레퍼토리 제작극장’ 방식으로 체계적인 운영을 시도해 보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히 행정이나 정책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부산 문화예술경관이 전환점을 맞이한 지금, 예술가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 방향을 함께 고민하며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 공공예술단체는 단순히 ‘소비되는 공연’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의 창의성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예술 생산의 주체’로서 역할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부산의 문화예술경관은 콘서트홀이나 오페라하우스 같은 웅장한 건축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진정한 문화도시는 그 공간 안에서 예술을 창작하고, 시민과 호흡하며 살아 숨 쉬는 지역 예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 변화의 중심에 부산시립예술단이 있어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예술이 일상 속에 자리 잡은 문화도시로서 부산을 이끌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원동력이다. 부산의 문화 인프라, 그만하면 충분하다. 이제는 지역 예술가 중심의 문화도시 전환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글 인용 시 출처를 꼭 밝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