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4] 행정이 아닌 창작의 통합을

문화예술단체 통합, ‘행정 통합’이 아닌 ‘창작 통합’이어야

by Arete

최근 문화예술계에서는 국공립 예술단체의 ‘통합운영’ 방안이 여전히 현장 예술가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유인촌 장관을 통해 추진되어 온 정책으로, “행정 효율성”을 명분 삼아 국립극단, 국립오페라단, 국립무용단 등 장르별 단체들을 통합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문화균형 발전, 창작 환경 개선, 중복된 인력과 예산의 효율화라는 명분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방식의 통합은 창작자 중심이 아닌 행정 중심의 구조 개편일 뿐이며, 장기적으로는 한국 공연예술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위협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6월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새 정부 출범하였고, 조만간 문체부 장관 역시 새로 임명될 것이다. 정권이 교체된 지금, 우리는 문화예술 정책 역시 근본적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를 주목하게 된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문화 정책 방향이 ‘포용과 균형’, ‘지속가능한 창작 기반’, ‘생활 속 문화기본권’ 강화에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물리적 행정 통합 중심 정책은 방향성부터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독일의 공공 제작극장 모델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연방제 국가로, 각 주마다 고유한 문화 정체성과 자립된 창작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126개 도시에 140개의 공공 제작극장이 존재하며, 연극·음악극·무용극·오케스트라 등 여러 장르가 하나의 극장 안에서 통합적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이 통합은 단순히 행정 조직을 하나로 묶는 것이 아니라, 극장이 창작의 주체가 되어 예술가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다.

독일의 제작극장은 ‘한 지붕 아래 창작 생태계’를 실현한다. 예술가뿐 아니라 무대감독, 조명, 음향, 분장, 의상, 세트제작 등 60여 개의 다양한 직종이 극장 내부에 상시 고용되어 있고, 외부 용역 없이 자체적으로 대부분의 창작을 소화할 수 있다. 이처럼 극장이 자체 제작소가 됨으로써 창작의 효율성과 완성도가 동시에 높아진다. 또 예술가가 하나의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보장되며, 여러 장르 간 협업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통합은 비용 절감이 아닌 창작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구조인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구조가 예술가 중심의 자율성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독일 극장의 예술감독은 장르별로 존재하며, 창작의 방향과 작품 선정, 제작 방식에 대해 독립적인 권한을 갖는다. 행정은 이를 지원하는 역할에 머무른다. 장르마다 창작의 주기와 리듬이 다르기 때문에 통일된 임금 체계나 복무 시간으로 묶지 않는다. 대신 각 장르의 특성과 인력 규모를 고려하여 현실적인 제작량과 예산이 배분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현실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최대치를 기반으로 구조가 설계된다. 이처럼 창작자의 리듬과 자율성이 존중될 때 비로소 ‘통합’이 창작의 효율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현재 한국에서 추진되는 예술단체의 통합은 예술가의 자율성과 장르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행정 효율을 중심에 두고 있다. 기획, 회계, 인사 등의 부서를 통합 사무처로 일원화하고, 각 단체의 운영을 하나의 기준으로 묶으려는 방향은 오히려 장르 간 차이를 무시하고 창작의 흐름을 왜곡할 수 있다. 연극과 오페라, 무용은 제작 준비와 창작 주기, 공연 방식이 전혀 다른데, 이를 같은 조직 틀 안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관리하려는 발상은 예술을 일반 행정처럼 다루는 위험한 시도다. 이미 공무원식 근무시간 규정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더욱이 국립 단체의 통합은 지역 이전이라는 물리적 재배치와 맞물려 있으면서도, 지역 창작 생태계를 실질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전략이 부재하다. 단순히 서울에서 지방으로 단체를 옮긴다고 해서 문화의 지역균형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지역 주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호흡하며 지속적으로 작품을 만들고, 지역 내에서 문화가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독일의 제작극장은 그 도시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문화기관으로 기능하며, 각 지역은 극장을 통해 자신만의 문화적 언어를 발전시켜 왔다. 한국이 진정으로 문화 분권을 원한다면, 단체의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제작극장 모델을 통해 지역이 창작의 거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


예술가도 노동자다. 그러나 예술은 공장이 아니다. 행정 효율이라는 기준만으로 예술단체를 통합하고 재편하려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창작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훼손하고, 예술가를 진정한 창작의 주체가 아니라 관리 대상의 일부로 전락시킬 수 있다. 진정한 통합이란, 예술가가 협업과 융합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극장이 그 가능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창작 구조를 갖추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통합은 묶는 것이 아니라, 창작을 위한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예술가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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