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 시대, 순수예술이 우리의 마지막 자유를 지킬 이유
김대식 KAIST 교수의 강연은 인공지능(AGI, 범용 인공지능)의 급부상과 그로 인해 변화할 인류의 미래를 날카롭게 조명한다. 그는 AGI가 인간 지능을 흡수하고 노동의 가치를 붕괴시키며, 기본소득과 엔터테인먼트로 채워진 사회에서 인간이 ‘영원한 아이’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AGI는 효율성과 합리성을 극대화하며 우리의 선택—밤늦게 치킨을 먹거나 커리어를 포기하고 시를 쓰는 ‘비합리적’ 자유까지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시대에 순수예술은 왜 중요한가? 순수예술은 AI가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 즉 비합리성과 감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자, AGI의 통제를 넘어 자아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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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I의 위협: 인간성을 잃은 '어린이'의 미래
김 교수는 AGI가 10~20년 내에 등장할 수 있다고 예상하며, 단순한 도구 수준을 넘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대체할 잠재력이 있다고 설명한다. AGI는 스스로 업그레이드하며 자율성을 갖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 그는 로마 제국의 몰락을 비유로 들어, 노예 노동으로 시민의 노동 가치가 상실되고 ‘빵과 서커스’로 지루함을 달래던 사회가 결국 붕괴했다고 지적한다. AGI 시대도 유사하다. 노동의 가치는 사라지고, 실업률은 30~40%에 달할 수 있다. 국가나 빅테크는 기본소득이나 OTT 구독 같은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며 시민을 달래겠지만, 이는 혁명을 막기 위한 통제일 뿐, 인간의 자아실현이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인간의 자유 중 하나는 내 인생을 망칠 자유”라는 김 교수의 말처럼, AGI는 효율성과 공리주의를 앞세워 우리의 선택을 교묘히 가스라이팅 할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은 더 이상 ‘어른’이 아닌, AI의 판단에 의존하는 영원한 어린이로 남게 된다.
기술 봉건주의에 맞서는 민주주의의 방패
AGI가 민주주의를 붕괴시키고 ‘기술 봉건주의’(테크너리즘)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언급한다. 로마 제국이 노예 경제로 피라미드형 사회로 전환된 것처럼, AGI 시대에는 극소수 기술 엘리트가 사회를 지배하고, 나머지 대다수는 생산적 활동 없이 기본소득에 의존하게 될 수 있다. 그는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사회는 중세 봉건제처럼 된다”고 전망한다.
이런 세상에서 순수예술은 인간의 자율성과 민주적 가치를 지키는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반항적이기 때문이다. AGI가 효율과 통제를 강요할 때, 순수예술은 그 통제에 저항하며 인간의 자유를 주장한다.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억압적 체제 속에서 추상미술로 자유를 표현했고, 칸딘스키와 말레비치의 작품은 소련의 경직된 이념에 맞서 인간 내면과 상상력을 시각화했다. 마찬가지로 1980년대 폴란드 반체제 예술 운동 ‘오렌지 얼터너티브(Orange Alternative)’는 유머와 퍼포먼스로 공산주의 체제를 조롱하며 시민들의 상상력과 저항 의식을 일깨웠다.
순수예술: AG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
순수예술은 단순히 상업적 목적의 유무로 정의되지 않는다. 예술이 생계나 시장의 요구 속에서 만들어지더라도, 그 본질은 효율이 아닌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내면적 표현에 있다. 회화, 문학, 음악, 공연 등은 AGI의 계산 가능한 세계관과 달리, 불완전하고 모순된 인간의 감정과 사유를 드러낸다. AGI의 핵심 기술인 트랜스포머는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카프카의 부조리, 피카소의 고뇌, 무대 위 배우의 숨결과 같은 인간적 모순과 진정성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예술은 바로 이러한 비합리성과 감정의 불완전성 속에서 인간다움을 증명한다.
김 교수는 “판단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AGI가 수천 개의 이미지를 생성해도, 그중 ‘무엇이 더 나은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예술가는 그 판단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고, 혼돈 속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 주관적 선택과 감정의 깊이야말로 AGI가 도달할 수 없는 인간성의 핵심이며, 예술은 그 본질을 가장 순수하게 드러내는 행위다.
AGI 시대, 예술로 인간다움을 지키다
김대식 교수는 AGI 시대 인간이 맞이할 가장 큰 위기를 ‘지루함’과 선택의 상실에서 비롯된 공허라고 진단한다. 노동이 사라지고, 즉각적 쾌락과 표준화된 콘텐츠가 인간의 일상을 채우는 사회에서, 우리는 자기 정체성과 내면적 자유를 잃게 된다. 특히 경쟁과 외로움이 일상인 한국 사회에서, AGI가 제공하는 편리함과 피상적 즐거움은 이런 공허를 해소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인간의 정신적 생존 전략이자 자아 회복의 수단이다. 창작과 공연은 효율이 아닌 의미를 탐구하고,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며, 사회적 연결감을 강화한다. 유네스코 2023년 보고서와 2024년 Journal of Creative Behavior 연구는 예술 활동이 정신건강과 자기효능감을 높이고, AI로 인한 불안을 완화한다고 밝힌다.
그 중에서도 공연예술은 AGI가 결코 복제할 수 없는 인간 경험의 정점이다. 시각성과 공간성을 지닌 무대에서 배우의 호흡과 관객의 즉흥적 반응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카타르시스는, OTT 콘텐츠가 제공하는 도파민형 쾌락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외로움과 경쟁으로 지친 현대 사회에서, 공연예술은 인간 존재를 확인하고 자유를 회복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김 교수의 조언처럼, AGI가 선택을 통제하기 전에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지금이 바로 인간다운 자유를 발휘할 마지막 기회다. AGI 돛대가 수평선 위로 드러나고 인간의 자유가 서서히 좁아지기 전에, 예술을 통해 감정과 판단력을 회복해야 한다. 도파민이 아닌 카타르시스—무대 위든 객석에서든 예술을 경험하는 순간이 곧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