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유감스러운 「2026년 문예회관 특성화 지원 사업」 공모요강
2026년 「문예회관 특성화 지원 사업」 공고가 발표되었다. 2025년 공고가 지역문화자원을 활용한 특화 콘텐츠 발굴 자체에 초점을 뒀다면, 2026년 공고는 문예회관이 기획 의도·콘셉트·제작 방향을 스스로 설정하고 창·제작을 주도해 자체 브랜드를 구축해야 한다는 요구를 전면화했다. 대관 중심, 일회성 이벤트 공연이 지역 문화정체성을 약화시켜왔다는 비판이 이어진 만큼, 이번 공고는 문예회관이 ‘지역 문화의 생산자’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한 문체부의 응답처럼 보인다. 사업 예산 또한 지난해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 전제가 가능할 만한 내부 구조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공모요강은 문예회관이 기획·창작·제작을 주도할 것을 당연한 것처럼 전제하지만, 실제 문예회관에는 그 역할을 감당할 기획자, 프로듀서, 드라마투르그, 창작자 등 전문 인력이 없다. 행정직 공무원과 시설 관리 인력, 외부 공연 편성 담당자가 조직의 중심을 이루는 현재 구조는 애초부터 창·제작 기능을 목표로 설계된 조직이 아니다. 그런데도 공고는 문예회관이 스스로 기획 의도를 만들고 지역 문화자원을 반영한 신작을 제작해 브랜드를 구축하라고 요구한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전문성으로? 공고는 이에 대해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는다.
이 인력 공백은 결국 문예회관이 다시 외부 창작단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기존의 프로젝트형 외주 제작 방식과 무엇이 달라지는가? 실질적인 변화는 거의 없다. 공모가 말하는 ‘문예회관의 주도성’은 기획·창작 주체의 전환이라기보다는, 주최 명의·예산 집행 권한·저작권(IP)의 귀속 방향을 문예회관 쪽으로 돌리는 데 가깝다. 과거에는 “외부 단체가 창작 → 문예회관은 초청 기관”이었다면, 이번 공고에서는 “외부 단체가 창작 → 문예회관이 ‘창·제작 주체’ 명의를 확보”하는 구조다. 창작의 실질적 주체는 그대로인데 결과물의 소유만 바뀌는 셈이다. 이것을 ‘주도적 창·제작’이라 부른다면, 이는 역량 강화가 아니라 명목상 주체성을 부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지점은, 공모요강이 ‘제작극장화’라는 표현을 직접 쓰지는 않지만 그 요구 사항이 사실상 제작극장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문예회관이 자체 기획을 설정하고 제작 방향을 결정하며 단체를 관리하고 브랜드를 구축해야 한다는 내용은 제작극장의 기본 기능과 다르지 않다. 실제 공고는 사업 목적 첫머리에 “문예회관의 자체 역량·자원·인력을 활용해 특성화를 지원하고, 제작역량 강화 및 자생력 제고(창·제작·프로그램 기획·전용극장화 등)를 도모한다”고 명시한다. 이름만 다를 뿐 실질적으로는 제작극장 모델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제작극장은 단지 “방향을 정하는 기관”이 아니다. 전문 기획자, 프로듀서, 드라마투르그, 기술팀, 상근 예술가 등이 기본값으로 존재해야 한다. 이 기반 위에서야 비로소 한국적 현실에 맞는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다. 예컨대 공립예술단을 제작 조직으로 전환하거나, 인근 기초지자체가 연합해 공동 프로젝트를 운영하거나, 지역 예술대학과 연계해 청년 창작 생태계를 구축하거나, 지역 특성을 반영한 장르 혼합형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방식 등이다. 즉, ‘한국형 제작극장’이란 기본 조건을 생략한 채 ‘한국적 변형’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 조건을 갖춘 뒤 그 위에서 한국적 여건을 반영하는 모델이어야 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공고가 지적하는 ‘대관 중심 운영’이 문예회관의 의지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관행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더 큰 원인은 문예회관의 인사 구조와 운영 시스템이 애초부터 대관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는 데 있다. 이런 조건에서 대관 중심 운영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필연이다. 따라서 이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조직 개편, 전문 인력 배치, 창작 인프라 구축, 다년제 예산, 지역 연합 모델 등 구조 전체의 재설계다.
하지만 문체부와 한문연의 2026년 문예회관 특성화 지원사업은 이러한 기반을 전혀 손대지 않은 채, 사실상 외부 예술가가 만든 작품에 문예회관이 IP 도장을 찍어 ‘지역 레퍼토리’라고 발표하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이것을 ‘창·제작 주도’라고 부른다면, 이는 역량 강화가 아니라 성과 포장에 가깝다. 문예회관이 지역 문화의 생산자로 기능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지만,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도, 인력도, 구조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만 요구하는 방식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문예회관에 “기획·창작을 하라”고 지시하는 일이 아니라, 먼저 “기획·창작이 가능한 문예회관”을 만드는 일이다. 구조적 기반을 바꾸려는 의지 없이 성과만 요구하는 현재의 공모 방식은 매우 유감스럽다. 이대로라면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