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6]한국에만 존재하는 출근 도장 찍는 예술가들

국공립 예술단의 낡은 관행과 구조적 문제 진단

by Arete

최근 경기필하모닉에서 현직 단원 98명 중 34명이 징계를 받았다. 출퇴근 대리타각, 무단 조퇴 등이 사유이다. 이는 비단 경기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출근계 시스템이 낳은 국공립 예술단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필자도 시립교향악단에서 12년간 연주자로 일하며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기에 놀랍지 않다. 터질 게 터졌을 뿐이다.


문제는 누가 도장을 찍었느냐가 아니라, 왜 이러한 비효율적인 운영 구조와 낡은 관행이 계속 존재하는가이다. 이 사건은 통제와 관리 시스템에 갇힌 예술 노동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왜 예술가의 노동을 일반 행정직과 동일한 시간 노동으로 간주하며, 근태와 복무 규정으로 획일적인 통제를 가하는가? 왜 예술 공공 조직이 행정 조직의 하위에 묶여 여전히 단순한 관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잘못된 방식인 것을 알면서도, 왜 예술가들조차 이 비효율적인 시스템에 저항하거나 개선을 위해 싸우지 않는가?


오케스트라는 리허설과 공연으로 성립하는, 협업이 생명인 조직이다. 그런데 경기필과 유사한 다수 국공립단체는 리허설이 없는 날에도 정해진 출퇴근 시간(통상 9시~16시 또는 10시~17시)을 채우도록 설계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출근 행위'가 곧 노동으로 둔갑했고, 그 형식적 노동을 충족시키는 것이 평가 기준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누가 '출근 도장'을 찍는지에만 관심이 갈 뿐, 시민이 체감하는 공연 횟수와 예술적 성과는 외면된다.


사실 이러한 근무 형태의 배경에는 단순한 통제 목적을 넘어선 법적·행정적 이유가 있다. 양창섭 칼럼이 지적하듯, '연차와 연차수당 지급 문제'가 핵심이다; 과거에는 리허설이나 공연이 없으면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노조가 연차 미사용분 수당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단원들의 개인 연습도 근로로 봐야 한다며 노조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사측은 단원들에게 주 5일 출근을 강제하고, 결근 시 연차를 사용하도록 했다. 이로써 형식적 출근이 법적·행정적 이유로 고착됐다.


세금과 성과의 불일치는 숫자로도 명확하다. 현직 98명의 인건비가 매년 수십억 원으로 환산되는 상황에서, 경기필의 공연 횟수는 극히 제한적이다. 한국 국공립 오케스트라의 지원금은 통상 95%가 인건비에 쓰이며 지자체에 100% 의존한다. 세금을 재원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라면, 그 집행의 정당성은 출퇴근률이 아니라 '무엇을 제공했는가'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경기필의 대응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다. 근로시간 월 단위 총량제, 지문 인식 출입 시스템, 성실근무 서약 등은 모두 감시·통제의 고도화일 뿐이다. '성실근무 서약'은 개인에게 도덕적 부담을 더할 뿐 시스템적 미비를 보완하지 못한다. 요컨대, 현재 제안된 대책은 증상 치료용 맹독제이며, 관행의 원인을 외면한 채 통제만 강화한다.

한국과 독일의 비교가 의미 있는 이유는 두 나라 모두 공적자금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한국 약 95%, 독일 평균 85%). 이는 영미권처럼 수익과 기부금 중심 조직과 달리, 공공재적 책임을 전제로 한 운영 사례로 적합하다.


양국의 공공 오케스트라 수를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순수 콘서트 오케스트라만 보면 한국과 독일 약 30여 개로 수가 비슷하다. 그러나 독일은 여기에 극장 오케스트라, 방송 및 챔버 오케스트라까지 총 129개의 공공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며, 약 1만 개의 정규 단원 일자리를 창출한다. 한국의 약 30여 개 콘서트 오케스트라가 창출하는 약 2천 개와 대조된다. 이 조직들이 효율적·지속 가능하게 운영될 수 있었던 핵심 동력은 단체협약(Tarifvertrag)에 근거한 운영 시스템에 있다.


독일 공공 오케스트라의 강점은 통일된 단체협약(TVK)으로 규정된 '직무 중심 운영 구조'에 있다. 독일에서는 '시간'이 아니라 '직무(리허설·공연·교육·커뮤니티 아웃리치)'를 기준으로 운영된다. 콘서트 및 극장 오케스트라 모두 연간 약 347회 직무, 약 900시간의 리허설·공연 시간을 기준으로 시즌을 운영하며, 주 평균 7~8회 직무(주당 약 20~30시간)를 근무한다. 리허설이나 공연 없는 날은 출근하지 않으며, 연간 약 45일의 비수기(휴가)가 제도화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시즌 약 10.5개월 동안 통상 80~120회의 연주가 현실화된다.


즉, 독일에서는 공적자금의 투입이 '시간의 형식'이 아니라 '사회적 산출물'로 환수된다. 이러한 직무 중심 시스템은 한국의 공무원 보수 규정 및 복무 규정에 묶인 낡은 관행과 대비된다. 한국이 획일적인 단원 평정 시스템과 근태 규제를 적용하는 반면, 독일은 통일된 단체협약을 기반으로 평정 제도가 존재하지 않으며, 전문성을 존중한다.

경기필 단원 34명은 이러한 국공립 오케스트라 시스템의 증상일 뿐, 병든 것은 구조적 관행이다. 지문 인식과 서약으로 대응하는 한, 문제는 반복될 것이며, 국공립단체의 해체까지 야기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필요한 체질 개선과 운영 재설계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직무 중심 단체협약 제도화: 직무 총량, 휴가, 공연 수, 교육 책임을 명문화하여 노사 협의를 제도적으로 운영한다.

전문 예술경영 조직 확립 및 투명 경영: 공무원도, 연주자도 아닌 '예술경영인'이 운영의 중심에 서서 기획을 주도하고, 투명성을 확보한다.

행정의 역할 재정립 및 거버넌스 혁신: 공무원은 행정 지원과 감사에 충실하되, 기획과 운영 권한을 침범하는 관행을 청산하여 거버넌스를 재정비한다.

공적자금 환수 기준 재설계: 단순 출근률이 아닌 연주횟수·지역 프로그램 영향력·음악교육 성과로 보조의 적법성과 수준을 평가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태는 단원의 근태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예술 조직을 공무원식으로 묶어둔 ‘구조적 관행’과, 예술단체로서 정당성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한 한국 예술계의 책임이 얽힌 복합적인 결과이다. 최근 최고 권력자의 발언처럼, 공공 예술단이 독과점이자 ‘돈 먹는 하마’로 인식되는 현실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공공 오케스트라의 미래 가치를 증명하려면, 직무 중심 단체협약과 전문 예술경영 조직 도입을 통해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클래식이 다양한 장르와 공존하는 한국 사회에서 10년, 20년 뒤에도 공공재로서 그 가치와 위치를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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