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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둥 Mar 09. 2023

그 남자의 기념일

https://bit.ly/422rSaT

책소개

반짝이는 날들을 위한 비둘기 할머니의 특별 레시피!

기쁘고 벅찬 날에, 즐겁고 설레는 날에, 혹은 지치고 우울한 날에

케이크 한 조각의 행복을, 사랑을, 응원과 격려를, 여러분의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소박한 일상에 깃든 삶의 특별함에 살갑고 따스한 격려를 보내는 그림책





 나는 기념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기념일은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이벤트이고, 이러한 기념일들이 빠르게 흘러가는 인생의 시간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 나는 가능하면 우리의 모든 날들을 기념하고 싶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부터 시작해서 발렌타인데이,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 로즈데이 같은 약간의 상술(?)이 가미된 날들을 비롯해 만난 지 100일, 200일, 300일, 1주년 기념일을 열심히 챙기려고 했다. 나는 이런 기념일들을 놀랍도록 잘 기억하는 사람이다. 기념일이 다가오기 일주일 전부터 어떤 데이트를 할지, 어떤 선물을 준비할지 설레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런데 나와 연애하는 이 남자는 기념일에 참으로 무심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처음 맞이 하는 화이트데이 날이었다. 발렌타인날 직접 만든 티라미수를 준 나는 이 날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오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나의 말에 그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가 빈 손인 것을 확인한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오늘 화이트데이잖아."  

"아 그렇구나... 깜빡했어. 진짜 미안해. 네가 좋아하는 젤리 사러 가자."  

그의 손을 잡고 걸으며 '그래 한 번은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애써 서운함을 넘겼다.


  하지만 그는 빼빼로 데이를 비롯해 우리의 300일도, 1주년도 까먹고 말았다. 내가 내민 선물을 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의 눈을 보며 "또 까먹었지 또!"  화가 나 소리쳤다. 오늘이 300일인지 몰라서 선물을 집에 두고 왔다는 그의 말에 또 한 번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며칠 전에 얘기했음에도 미안하다고, 기억하려고 하는데 자꾸만 까먹는다는 그의 말이 너무 서운했다. 그의 말이 핑계처럼 들렸고, 그가 날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큰 문제였다. 행복해야 할 기념일마다 다툼이 생기고, 혼자만 기념일에 연연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결국 나는 기념일을 챙기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기념일을 챙기지 않게 되자 우리에게는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응어리가 남아있었다. 내가 더 이상 기념일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자 각종 기념일들이 그냥 보통의 날처럼 조용히 지나갔다. 우리가 언제 만났는지도 까먹은 것 같은 그를 보며 마음속에 무언가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를 오랜 시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시험 접수 날짜를 깜빡해 시험을 보러 가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몇 차례 목격하고, 지인과의 약속들, 결혼식 날짜를 헷갈려하는 것을 보며 그는 정말 날짜에 둔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걸 알게 되자 그냥 웃음이 나왔다. 이런 사람에게 300일 기념일을 챙기자고 했으니...  각종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나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지만 그에게는 고난도의 미션이었던 셈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려워하는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비로소 그를 이해하게 되었고, 마음속 응어리가 풀렸다.

 

  그는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다. 이 남자는 생각지도 못한 날에 근사한 식당을 예약하고, 또 어떤 날은 뜬금없이 선물을 내민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그렇지 않다.  그는 기념일을 챙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무 날도 아닌 날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니 나도 어느새 그의 방식에 스며들었다.

 

 할 수 있다면 비둘기 할머니에게 케이크를 주문하고 싶다. "다가올 금요일에 맞춰 달콤한 딸기와 무화과를 가득 넣은 케이크를 주문할게요." 그럼 비둘기 할머니가 금요일이 어떤 날이냐고 묻겠지? 그럼 나는 대답할 것이다. "그날은 아무 날도 아니에요. 그렇지만 곧 특별해질 거예요." 하고 말이다.







*매주 그림책 스터디를 함께하는 <노들리에> 작가들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같은 책을 읽고 쓴 <#노들리에> 작가님들의 글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기이해의 브런치 (brunch.co.kr)

 암사자의 브런치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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