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으로 키운 아이, 왜 더 쉽게 무너질까

by 진다락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함께 일하는 20년 이상의 경력자 선생님들에 비해 나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내가 경험한 아이들과 학부모, 여러 가정의 사례 역시 편협할 수밖에 없음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이후 가장 크게 마음에 남았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바로 '과한 존중'이 아이를 흔들리게 하는 순간이다.



존중, 왜 꼭 필요한가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사실 '존중'이라는 단어는 유아교육이나 가정교육의 핵심 가치로 자리 잡고 있지 않았다. 체벌과 다소 강압적인 훈육이 오히려 보편적인 교육 방식이었다. 그렇다 보니 지금 부모가 된 세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존중'이라는 화두 앞에 자주 딜레마에 빠진다.


존중은 분명 중요한 덕목이다. 존중이란, 상대의 존재와 의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귀하게 여기는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아이가 존중받는 경험은 자존감을 세우고, "나는 소중하다"는 감각을 길러준다. 분명 존중이 없다면 우리가 살아갈 세계는 더 삭막하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존중이 '과해질 때'이다.



과한 존중, 흔들리는 아이들

교육 현장에서 자주 마주하는 풍경이 있다. 밥 먹기, 양치하기, 옷 입기 등 기본 생활습관과 자조 기술을 배워야 하는 상황에서 부모는 끝까지 기다려주거나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신해 준다. 하기 싫은 일을 두고 갈등이 생길 때는 “네가 하고 싶을 때 해”라며 책임을 온전히 아이의 기분에 맡기기도 한다. 친구와 다툼이 있을 때조차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어른이 개입해 모든 불편을 대신 정리해 준다.


처음에는 아이가 존중받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오히려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무너진다. 어른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아이, 아주 사소한 일에도 크게 상처받고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패의 경험과 결핍의 필요

발달심리학에서는 유아기가 자기 조절력과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핵심 시기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시행착오와 작은 실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진다. 그러나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실패의 기회를 모두 차단한다면, 아이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잃어버린다. 이는 단순한 불편이나 좌절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아이의 자립심과 자존을 갉아먹는 일이 된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은 실패의 경험뿐 아니라 적절한 결핍이다. 우리는 흔히 결핍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결핍은 아이가 성장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극이 된다. 원하는 것을 즉시 얻지 못할 때 아이는 기다림을 배우고 부족함 속에서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며 충족의 기쁨을 더 크게 느낀다. 결국, 결핍은 아이의 내적 자원을 단단하게 다지는 기회이다. 충분히 가지지 못하는 순간이 있어야 아이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할 줄 알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존중이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힘이라면 결핍은 아이가 자기 힘으로 세상과 마주하도록 밀어주는 또 하나의 교육적 도구라 할 수 있다.



진정한 존중은 무엇일까

나는 여전히 교사로서 배우는 중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진정한 존중은 아이를 무조건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필요한 경험과 도전을 허락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존중만으로는 길러지지 않는다. 아이는 스스로 부딪히고, 배우고, 실패하면서 성장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가 선택할 자유를 주되,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기회를 주기

필요한 규칙과 한계를 세워주어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의 자유'를 경험하게 하기

작은 성취라도 스스로 해낸 과정에 충분히 기뻐하고 인정해 주기

모든 욕구를 다 들어주는 대신 기다림과 절제를 배울 기회를 주기

갈등을 회피하기보다 갈등 속에서 스스로 타협하고 해결하도록 지켜보기

"네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주되, 세상은 나만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도 배우게 하기


존중은 아이를 위한 따뜻한 보호막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아이를 유리 상자에 가두는 순간, 아이는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잃어버린다. 아이를 존중한다는 것은 결국, 아이가 세상과 마주할 수 있도록 적절한 거리에서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용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토요일 연재
이전 02화완벽한 아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