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여행을 바라고 꿈꾸게 되었을까?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거래처의 구조조정 여파로 일감이 줄어 권고사직을 받았다. 소규모였지만 8년 동안 걱정 없이 잘 다녔는데 너무 불안했다.
‘쉰셋의 나이로 다시 취업할 수 있을까? 하던 일을 계속할 수는 있는 걸까?’
수많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넘어진 김에 쉬어 가자고 마음먹었다. 가고 싶었던 곳을 찾고, 만날 사람도 떠올렸다. 그러나 행복한 상상도 잠시, 현실 앞에서 걱정을 멈출 수가 없었다.
‘생활비는 어쩌지? 카드값은?’
놀겠다는 생각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 종일 취업 사이트만 들락거렸다. 다행히 다니던 회사 사장의 소개로 재취업이 결정되었다. 30년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도 여유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다. 새로운 직장에서는 출근을 서둘렀지만, 이번만큼은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나에게는 3주라는 시간이 허락되었다. 사람에 치이고 시간에 쫓겨 휩쓸리듯 다녔던 여행에서 벗어나,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가까운 곳이어도 좋고 멀리 떠나도 상관없었다. 전시회, 예쁜 카페, 혼자 여행, 강원도, 경주, 부산, 제주도, 일본, 베트남, 스페인, 터키 등을 검색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빼곡히 노트에 적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언제나 여행을 꿈꾸었다. 올해 초 작성했던 ‘50가지 버킷리스트’만 살펴보아도 절반 이상이 여행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언제부터 여행을 바라고 꿈꾸게 되었을까?
2010년, 남편의 사업(?)으로 빚이 불어날 대로 불어나 빚 얻어 빚 갚는 지경에 이르자 나는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나는 남편과 떨어져 친정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나마 자식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촌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독일 갈래?”
“어? 지금 내 형편으로 어떻게 가?”
“언니, 지금 못 가면 다른 때도 못가!”
그건 그렇지, 당시의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를 빚에 치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돈이라는 감옥이 따로 없었다. 월급은 고스란히 빚 갚는 데 꽂혔다. 몇 년간 돈과의 사투에 밀려 자기 계발은 포기한 지 오래되었고, 다른 돈벌이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었다.
해외여행이 어떤 건지 동생이 선택한 독일이 어떤 나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책임져야 할 모든 상황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경비가 있을 리 만무했다. 신용은 바닥이었고, 카드는 막혔다. 더 이상 돈 빌릴 데도 마땅치 않았다. 가겠다고 선언한 순간부터 다시 돈 고민이 시작되었다. 지긋지긋한 이놈의 빚. 나는 결국 포기를 선언했다.
“언니, 같이 가요. 나도 보험 약관 대출받아야 하는데 언니 것도 같이 받을게요. 형편 될 때 갚으시면 돼요.”
함께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던 후배 하나가 보험 대출을 받아준다며 손을 내밀었다. 빚 갚는 상황에 또 빚을 만들어 굳이 여행을 간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싶었다.
“언니, 돈은 아무 때나 갚아도 되니 머리 식히고 오자.”
후배의 진심과 위로가 용기가 되어 결심할 수 있었다. 1년 후에 떠날 뮌헨 항공권을 미리 끊었다. 우리는 여행지에 대해 각자 가고 싶은 곳을 알아보고 루트를 정한 후 만나 일정을 조율하고 숙소를 정했다. 번역기를 돌려 이동 구간의 기차표를 예매했다. 다른 세상에 대한 즐거운 수다만으로도 구겨진 나의 자존감이 회복되는 듯했다. 여행 준비 과정은 답답한 현실 속에서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됐다. 일정을 조율하고 맞추는 사이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2011년 9월 11일,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향하며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났다. 남편이 있지만 없는 상황, 엄마네 얹혀 있는 현실, 돈에 발목 잡힌 답답함 등 오만가지 생각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일행과 만나 출국 수속을 마치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잘 갔다 오라는 울음 섞인 목소리에는 어렸을 때부터 돈 벌어 집안 살림에 보탰던 장녀가 결혼해 잘 살지 못하고 고생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묻어 있었다. 나도 눈물이 났다. 손에 꼭 쥐어 준 엄마의 쌈짓돈, 여동생과 남동생까지 잘 다녀오라며 용돈을 보냈다.
러시아를 경유하는 일정이라 비행시간이 길었다. 저가 항공답게 좁고 답답한 자리였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우리는 구름 위에서 흥분된 서로의 마음을 수다로 풀었다.
밤 11시가 넘어 뮌헨공항에 도착했다. 오스트리아행 아침 기차를 타야 했기에 우리는 공항에서 버티기로 했다. 2층 사무실 구석에 자리 잡은 동생이 우리를 불렀다. 창피하고 민망해서 싫은 표정을 짓는 나에게 동생은 “언니, 아무도 신경 안 써.” 하며 씽긋 웃어주었다. 그 말이 정확했다. 한밤중이기도 했고 몇몇이 곁을 지나갔지만, 우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우리는 공항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었다. 공기는 따뜻했고 마음이 편해졌다. 마스크팩을 하고 돗자리에 누워 이 우스운 상황을 즐기며 해외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해외 첫 경험이 공항 노숙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새어 나온다. 여행에서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다. 남 눈치 보며 늘 조심조심 살았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뭔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다.
해외에서의 첫 아침을 맞았다. 공항 직원들 출근 전에 서둘러 씻고 카페로 이동해 베이글과 커피를 마시면서 주변을 탐색했다. 낯선 공기, 낯선 사람들, 낯선 풍경을 바라보느라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낯섦이 주는 긴장감이 좋았다. 외국이라는 걸 실감하면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독일 여행이지만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가 더 기대되었다.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동화 속 호수마을이라니, 사진만 봐도 힐링이 되는 곳이라 반나절이 걸리는 이동시간을 감수하며 일정에 욱여넣었다. 4시간 기차에 다시 20여 분 버스를 타고 할슈타트 근처 마을 오버트라운으로 향했다.
오스트리아 특유의 깨끗함과 먼지 하나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공기,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그 아래 어우러진 마을, 자연이 주는 행복감이 이런 것이구나. 가만히 있어도 온몸이 정화되는 듯했다. 낯설고 생소한 마을을 돌아보며 행복했다.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깨끗하고 예쁜 집, 발코니에 걸려 있는 다양한 꽃, 축구하며 떠드는 아이들의 정겨운 소리, 청명한 가을하늘에 인적 드문 시골 마을에서의 하루라니, 여기까지 떠나오기를 정말 잘했다. 빚내서 여행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버트라운의 공기와 자연은 생생하게 남았다. 가장 신기했던 건 전봇대 같은 기둥에 작은 통을 매달아 놓았는데 산책 중 처리해야 할 강아지들의 배변을 넣는 통이었다. 바로 강아지 해우소였다. 동물을 사랑하는 유럽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모든 것들이 새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며, 오감이 열리는 것 같았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새로운 것에 대해 경험해 보고 싶은 욕구도 강하다. 싫증도 잘 내기 때문에 언제나 자극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것에 부합하는 게 여행이란 걸 알게 됐다. 잔잔한 할슈타트 호수를 바라보며 서울에서의 우울한 현실은 모두 잊었다. 현실에 나를 가둬 두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며 세상을 차단한 채 살았다. 나는 나를 돌보지 않았다. 오로지 가족 생각뿐이었고, 책임감만 남은 결혼생활을 붙들고 있었다. 나는 알았다. 이 남자는 아니라는 것을. 아니 나만 몰랐다. 그저 내 선택에 책임지고 싶었고, 실패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았다. 이 악물고 10년을 버텼다. 하지만 더 이상 내 인생을 나눠주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자. 호수를 바라보며 나에게 외쳤다. 행복해지고 싶다.
여행의 진가는 돌아온 현생에서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여행의 추억은 냉혹한 삶을 버틸 힘을 내게 주었다. 나는 나의 세상을 열어 여행을 허락하기로 했다. 독일은 시작이었다. 코로나 3년을 제외하고 매년 짐을 꾸렸다. 일본, 캄보디아, 중국, 스위스, 체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마카오로 틈만 나면 떠났다. 이제 내 명의의 카드로 결제하고 갚을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빚을 내어 여행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첫 해외여행 후 나는 미련 없이 홀로 서는 인생을 선택했다. 나 자신과 나의 행복에 집중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3년 후에는 모든 일을 멈추고 6개월간 세계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살고 있는 집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직장은 어떻게 할지, 가서 무엇을 할지 세부 계획까지 촘촘하게 채웠다. 경비 모으고 자료 수집하다 보면 3년 시간은 금방 흐를 것이다. 내 인생의 밑줄이 된 여행, 오버트라운과 할슈타트의 감동은 새로운 설렘으로 채워질 게 분명하다.
ps. 첫 해외여행의 사진이 없다. 아쉽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