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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by 깨리

애들 초등학교 때는 소풍이나 체험학습을 갈 때 꼭 도시락을 싸서 보냈다. 큰딸은 김밥을 좋아해서 정성껏 만들었다.

아침 5시부터 김밥 싸기에 돌입한다. 밥을 새로 안치고 밥이 되기를 기다리며 재료를 손질해서 하나하나 조리한다.

오이를 길게 썰어서 소금에 절이고 계란지단을 붙이고 당근을 볶고 햄과 맛살을 굽고 단무지와 김을 준비한다. 밥이 완성되면 약간의 소금과 식초 참기름 매실청을 뿌리고 간을 한다. 여기서 매실청은 음식이 상하는 걸 늦춰주는 역할과 소화에 도움을 준다.

둘째는 소풍 때 김밥 대신 김치볶음밥을 요구했다. 따로 갈 때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둘이 같은 날 갈 때는 잠이 부족할 만큼 힘들었다.

둘 다 양보하지 않아서 두 가지 음식을 이른 아침에 하려면 4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도시락과 애들을 챙길 수 있었다. 음식도 너무 뜨거울 때 뚜껑을 닫으면 쉽게 상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열기를 식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거기가 간식 또한 준비해야 했다. 과자보다 과일을 좋아하는 애들을 위해 제철 과일을 세 가지 정도 먹기 편하게 준비해서 밥과 같이 보냈다.

도시락을 싸는 날은 면접 보는 날처럼 시간과 싸우고 깔끔한 의복과 마음가짐, 면접 볼 내용을 준비하듯이 내 아이의 입에 들어갈 깔끔하고 맛나고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도시락에 사랑을 담아 준비한다.

면접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처럼 아이도 행복한 시간을 경험하길 바란다.


하지만 소풍을 보낸 후 우리 집 주방은 폭풍이 지나간 듯 설거지와 요리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다.

나는 김밥 꽁지를 입에 넣고는 노동요를 틀고 정리에 돌입한다. 남은 김치볶음밥은 점심으로 먹어야겠다. 다 치우고 나서 여유 부리며 마시는 커피는 꿀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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