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떠나보내고...
명치가 답답하다. 고요한 연못에 묵직한 돌 하나가 툭 떨어졌다. 누구의 잘 못도 아니지만 죄책감이 드는 건 왜일까?
5월에 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하시더니 거동이 불편해지며 건강이 악화돼서 한 달을 병원에서 지내시다가 하늘로 가셨다.
병원에서 아픈 모습을 보고 마음이 이상했다. 늘 내 눈앞에서 강하고 자존심이 센 분이셨는데 여리고 아기처럼 약해 보이는 어머니 모습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 괜찮아진 줄 알고 안심했다가 다시 개인병실로 가셨다. 그리곤 6월 첫째 주 금요일에 막내아들 손을 놓으셨다.
퇴근하고 너무 힘들어서 애들 저녁을 챙겨주고 잠시 누워있었다. 휴대폰이 그날따라 묵직하게 진동한다. 남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한다.
"빨리 병으로 와! 엄마 가셨어."
"뭐, 바로 갈게."
아무것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주어 입고 휴대폰 달랑 하나 들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다. 30분 거리가 3시간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내 머릿속에 꼭 박혀 떠나질 않는다. 처음 겪는 임종이라 뭐가 뭔지 몰랐다. 어머니 옷을 갈아입혀 드리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아직도 체온이 느껴지는데...
머릿속이 하얀 도화지로 변해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과 나는 얼굴이 꽹한 채로 5킬로가 빠져있었다. 어머니의 막내아들 남편은 잿빛 얼굴에 볼살은 쑥 들어가 건들면 곳 터질 것만 같은 수도꼭지처럼 보였다. 손대면 안 되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듯 서로 조심스러웠다. 언제든 터질 텐데 그게 걱정이다.
조금 무서운 건 장례 3일 동안의 일들이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술을 과하게 먹고 필름이 끊긴 것처럼 드문드문 기억날 뿐 정확한 일들이 머릿속에 없다.
다만 발바닥이 너무 아프고 머리는 깨질 것 같고 눈과 볼이 쑥 들어가 사람들에 걱정을 듣고 복숭아뼈에 물혹이 생겨 지금도 치료 중이다.
남편도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게 안쓰럽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
어머니의 마지막 한주가 머릿속을 맴돈다. 애들 얼굴을 유심히 담가가는 어머니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너무나 힘겹게 눈물을 흘리며 더 많이 더 오래 보려고 노력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지금도 실감이 안 난다. 어머니 집에 가면 거기 계실 것만 같다.
어머니는 늘 퉁명스럽게
"왔냐? 뭐 하러 왔어?" 하셨다.
"어머니, 어제 전화드렸잖아요? 그냥 갈까요?"
하고 대답해야 하는데...
나는 솔직히 어머니 아니 시어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워하지도 않는다. 다만 어머니의 삶이 같은 여자로서 공감되고 안타깝다. 내가 감히 어머니 인생을 다는 알 수 없지만 가끔 어머니의 말씀에 고단함과 외로움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명치가 아프다. 아니 답답하다.
체한 건 아닌데 먹으면 답답하고 안 먹으면 배가 아프다. 남편과 나는 요즘 이런 상태다.
각자의 방법대로 견디고 있다.
시한폭탄을 마음에 품고 모른 체하고 있다.
그날이 안오길 바라지만 방법을 몰라서 의식 저편으로 미루고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고 있다.
벌써 7월 마지막주인데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바쁘게 일을 만들어 시간에 빈틈을 없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