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만 하는 아이, 기다림을 배우다

혼자 말하던 아이가 함께 듣게 되기까지

by 사유

“선생님!”


아이가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교사가 누구와 이야기 중이든, 무엇을 하든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는 아직 ‘기다림’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보다 먼저 기다리는 법부터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1. 듣는이 없는 말


그 아이는 친구들과도, 선생님과도

순서를 기다리거나 반응을 기다리는 것이 어려운 아이였습니다.


누가 말하고 있어도

“선생님!” 하고 불러놓고는

곧장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아예 이름도 부르지 않은 채

자신의 말을 중얼거리듯 흘리곤 했습니다.


심지어 친구가 발표하고 있는 도중에도

과하게 손을 흔들거나

눈빛으로 “나를 시켜달라”고 강하게 표현해

주변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2. 조심스럽게, 기다림을 연습시키다


학기 초, 저는 그 아이에게

‘기다리는 말하기’를 하나씩 훈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랑 이야기 중이야.

조금만 기다려줄래? 네 차례가 오면 꼭 들어줄게.”


그다음엔 말 대신, 손으로 조용히 ‘멈춤’ 신호를 보냈습니다.

시각적인 신호로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기다림’을 알려주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처음에는 기다리는 텀을 아주 짧게 두어

아이 스스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 텀이 익숙해지면 조금씩 기다리는 시간을 늘려가며

점진적으로 ‘기다림’의 감각을 키우도록 연습했습니다.


이런 훈련이 수없이 반복되기를…

무려 3달, 100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선생님.”

하고 부른 그 아이가,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고 조용히 멈춰 서 있었던 겁니다.


제가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자,

그제야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 아이가 말보다 먼저 ‘기다림’을 배웠다는 감동에

가만히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는

그 기다림 덕분에 다음 단계,

곧 친구를 사귀는 방법도 배울 수 있는 문이 열렸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지금처럼 기다려줄 수 있다면,

친구들도 너랑 이야기하고 싶어질 거야.

정말 멋졌어. 선생님이 너무 감동했어.”


이런 폭풍 칭찬의 순간,

절대 놓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럴 때,

칭찬은 기술이 아니라 타이밍이라는 걸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됩니다.



3. 금쪽이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이 아이는 기다림뿐 아니라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도 어려움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하고,

‘무시당했다’는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했지요.


그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저는 단순히 “버릇없다”거나 “말이 많다”고 단정하지 않고

행동 뒤에 숨어 있는 감정과 욕구를 읽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는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행동을 안내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금쪽이 행동 패턴과 교사의 해석


• 자꾸 말을 끊고 자기 이야기를 해요

해석: 말차례와 타이밍에 대한 감각 부족

지도 문장:

“지금은 선생님이 와 이야기 중이야.

네 차례가 오면 꼭 들어줄게.”


• 친구 발표 중 손을 흔들며 자기를 시켜달라고 해요

해석: 자극에 민감하고 표현 욕구가 큼

지도 문장:

“(손짓하며) 친구 말 끝나면 네가 말할 수 있어.

지금은 들어주는 시간이야.”


• 선생님 이름도 부르지 않고 말을 시작해요

해석: 말 시작의 예의, 대화 순서에 대한 개념 부족

지도 문장:

“선생님을 먼저 부르고, 선생님 대답이 있으면

그다음에 말해보자. 그게 더 잘 들릴 수 있어.”


• 같은 말을 반복해요

해석: 인정받고 싶은 욕구, 혹은 불안감에서 비롯됨

지도 문장:

“선생님이 네 얘기 들었어.

어떤 대답을 할까 생각하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줘.”


• 반응이 없으면 감정적으로 화를 내요

해석: ‘무시당했다’는 감정에 매우 민감함

지도 문장:

“네 말은 중요해. 그런데 대답은

상대가 선택할 수 있는 거야.

네가 한 번 더 말해볼 수도 있고,

그냥 지나갈 수도 있어.

그건 네 선택이야.”



4. 어른과 먼저 연습한 아이가 친구에게 덜 실수합니다


이런 행동 수정은

처음부터 또래 친구들과 직접 연습시키기보다,

안전한 관계인 어른과의 관계에서 충분히 연습한 후

친구들에게 옮겨가도록 하는 것이 훨씬 안정적입니다.

• 실패 없는 연습

• 오해 없는 말하기

• 조절 가능한 타이밍


이 세 가지를 교사가 잡아줄 수 있을 때,

아이는 실수 없이 친구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5. 다음 이야기 예고


‘기다림’을 배운 그 아이는

이후 친구들과의 관계 안에서

“내 말이 무시당했다”는 감정을

이전과는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갑니다.


〈무시당한 감정, 아이들의 구조 요청〉

–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달라지는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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