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요즘 할머니가 왜 자꾸 생각나는지 알 길이 없다.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 말을 잇지 못하게 되고, “정하야”라고만 부르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답답한 마음에 상담실도 찾아가 봤다. 혹시 정신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했다. 한 상담가는 할머니를 잘 떠나보내지 못해서라고 했다. 어쩌면 떠나보낼 생각이 없는 것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어느 날은 버스를 타고 가는 출근길에 버스를 타고 싶다고 외치며 투쟁하고 있는 동지(함께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의 영상을 보았다. 서울 한복판에 서 있게 된 출근길 버스는 활동가를 금세라도 칠 듯 무섭게 위협하고 있었다. 숨이 막히고 한숨이 났다. 그리고 이내 슬퍼졌다. 할머니가 생각나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장애인도 함께 버스타자'고 외치는 영상 메시지는 그칠 수 없는 눈물샘을 터뜨렸다.
나의 어린 시절, 할머니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읽지 못하는 한글과 숫자를 곱게 적은 수첩을 들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때마다 ‘병신이 왜 버스를 타냐'며 욕하는 사람들의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지 어딘가에 가야 할 때면 할머니는 자신을 병신이라고 말했다. 어린 마음에 할머니의 상황이 슬퍼서 못 들은 채 하곤 했지만 마치 그 광경을 직접 보기라도 한 듯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영상을 통해 본 장애인의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출근길 버스를 가로막고 서서 ‘장애인도 같이 버스 타고 가자’라며 외치는 활동가가 등장한 것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언젠가 할머니에게 허리가 왜 굽어있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 할머니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났는데 그때 척추를 부딪쳐 다친 후 펼 수 없었다고 했다. 보상은커녕 버스를 탈 때마다 ‘병신’이란 말을 듣고 못 들은 채 하거나 조용히 내려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어디 가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멀리 다니시길 좋아하는 분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해드릴 수 있는 건 한순간이라도 욕을 덜 먹고, 버스를 빨리 탈 수 있도록, 수첩에 버스 번호를 최선을 다해 정갈하고 크게 적어드리는 거였다. 할머니는 어떤 버스를 타야 제대로 이동할 수 있는지 알 수 없고, 알게 되어도 계단이 높아 느리게 탈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수첩을 들고 정류장에서 사람들에게 이 버스가 오면 좀 알려달라, 태워달라 때때마다 얘기했다. 달력을 찢어 만든 수첩엔 할머니와 가보지 못한 할머니의 고향과 친척집의 연락처와 가는 길을 적어두고, 그 종이가 닳으면 다시 적어드렸다. 할머니가 버스를 타지 못해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수첩이 할머니를 데려다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할머니와 버스를 정말 타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좋은 곳에 놀러 가고 말로만 듣던 할머니 고향 집도 가보고 싶었다. 당시에는 이루기 어려운 너무 큰 희망이었다. 할머니의 신체적 시간은 너무 빨리 흘렀고, 사회의 변화는 지지리도 느렸다. 결국 할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지 못했고, 할머니와 처음 탄 버스는 운구차가 되었다. 그 차 안에 태워지는 할머니의 관을 보면서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하도 기가 차서 대답 없을 할머니에게 '화장터 가는 길이 나와 가는 첫 여행인데 기분이 어떠냐'며 계속 물었다.
‘장애인도 함께 버스타자’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장애인은 탈 수 없는 계단형 차별 버스를 가로막고 서 있는 장애운동 활동가는 나에게 '왜 예전에는 이런 상상을 하지 못했는가' 하는 부끄럽고 억울한 마음이 들게 했다. 한편으로는 할머니와 같은 수많은 사람을 내려둔 채 빠르게 내달려 온 사람들과 세상을 이제라도 잠시나마 멈추고 있다는 사실은 위로가 되었다. 세상에도 우리 마음을 대변하는 사람, '우리 편이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복받쳐 한동안 많이 울고 나니 이제는 담담히 그때의 이야기를 적을 수도 있게 되었다.
버스와 지하철 투쟁은 계속 이어졌고 지금은 전국의 수많은 동지들과 시민들이 함께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라고 적은 종이를 들고 지하철에 선다. 이제는 꾸깃한 수첩 대신 당당하게 '모두가 마음 편히 버스 타고, 지하철도 타고 먼 고향길 함께 가자'라고 외치는 시대가 되었다. 그 옛날 버스를 탈 때마다 사람 아닌 존재로 취급받고 내쫓기던 사람들이 앞장서서 누구나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이 되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가 쫓겨났던 수많은 날들처럼 지금도 지하철이나 버스 앞에서 장애인을 욕되게 바라보는 시선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도 이제 출근길에 타겠다"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세상이니, 앞으로는 삶이 끝날 때까지 버스를 타지 못해 억울한 기막힌 눈물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