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에 남고자 한 발달장애인의 ‘몸부림’에서

혼자가 된 발달장애인 인터뷰 1편

by 이정

탈시설단체에서 실습을 하면서 발달장애당사자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지역사회에서 나고 자라 학교를 다닌 후 직장을 다니거나 주간보호 같은 낮활동을 다니는 성인이었다. 다만 다른 것 하나는 함께 살던 부모와 여러 이유로 헤어지게 되어 혼자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었다.

함께 실습을 하던 학우는 성인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였다. 학교 면접을 보는 날 처음 만났는데, 첫 만남부터 “같이 공부하면 좋겠다.”라고 힘주는 말을 건네던 동지 같은 학우였다. 그 학우와 함께 장애와 자립생활에 대해 배우고 토론하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생각이나 의지도 잘 통해서 탈시설단체에서 실습하려고 같이 면접도 보고 발달장애당사자 인터뷰를 기획하고 논문을 써냈다.

처음 인터뷰를 구상하게 된 것은 한 여성 발달장애인이 시설에 가지 않고 자신의 집에 남고자 했던 몸부림에서 출발했다. 단체에서 소개해 준 여성 발달장애인은 연세가 많으신 어머니와 40여 년을 살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자, 발달장애당사자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입원하신 어머니와 통화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당사자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당사자가 수십 년 드시던 뇌전증 약에 대한 정보가 없어 약을 드시기 어려워졌다. 매일 가던 낮 활동을 온몸으로 거부하셨다. 살이 많이 빠지고 하루에 100번씩 엄마를 부르는 일이 생겼다. 그러다 가게 된 단기보호시설에서 20일 만에 욕창이 생겼다. 결국 인권단체로 긴급한 요청이 왔고,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 수 있도록 해보자. 그냥 덜컥” 당사자를 둘러싼 지원체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활동가가 이 말을 할 때에 첫눈에 반해버렸다. 지금도 눈에 선할 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어서 ‘일단’ 야간 지원을 할 사람을 모집했는데 하루 만에 한 달치 일정분담표가 다 채워졌댔다. 당사자가 매일매일 바뀌는 지원자들을 혼란스러워하실 것 같아서 ‘일관적으로’ 지원해 보자고 지원할 수 있는 정보를 모으고 공유하는 ‘섬세함’을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했다. 낮에는 야간학교에서 지원을 해보기도 하고, 힘들어 보이시면 일찍 귀가해서 쉬실 수 있도록 인권단체가 모인 ‘건물’ 혹은 ‘조직들’ 전체가 변신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활동가가 ‘미안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눈물을 흘리는 순간, 감동은 멀어지고 지원자에 이입해 있던 시선이 뒤집어졌다.

“미안했죠. 활동지원 시간이 없으니까. 제일 힘들었던 건 언니였을 거예요. 되게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이 환경도 낯설고. 어머니와 살던 집에 낯선 사람들이 오고... 그래도 요즘 조금 야간학교에 적응을 하고 계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내 부끄러웠다. 습관적이고, 자동적으로 지원자의 노력에 감정을 이입해오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의 전환이었다. 40여 년 동안 만들어 온 삶의 방식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당사자가 겪었을 일이 다가왔다. 하지만 어느 날 어머니가 사라지고,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응급실에 가고, 집을 떠나게 되는 과정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도 없었기에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감히 그 무거운 얘기들을 들을 수 있을까? 어떻게 들어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발달장애인 부모 동지는 담담하고 분명하게 용기를 주었다.

(당사자분의) 표정이 엄청 사랑받은 표정이셔”

그리고 우리는 혼자가 된 발달장애인을 만나면서 그들의 증언대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홀로 남겨질, 혹은 홀로 남겨진 발달장애인이 자립생활의 위기 경험을 나누고 원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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