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아요. 그러면 모두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by 이정

탈시설운동을 하면서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장면이 있다. 탈시설당사자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전 생애를 토로하는 장면들이다. 꼭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항상 이렇게 시작한다. “나만 운이 좋아서 탈시설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된다. “시설 안의 동생, 친구들이 더 많이 탈시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부르는 대목이다.

그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넌 안될 거야”라고 말하는 걱정 같은 비난의 시간들을 통과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너도 누구나처럼 살 수 있는 존재야”라고 손을 내민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속에 저장하고 싶어서 손 저릴 때까지 동영상으로 촬영하곤 한다.

새로운 힘이 주입되는 것 같다. 시설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인데, 요상하게 나에게 하는 말 같다. 나를 위해 손을 내밀어주는 것 같달까? “우린 같은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시설에 있는 당신과 시설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나를 가르지 않게 된다.

사실 활동을 하면서는 더 많은 혐오와 비난의 말들도 듣게 된다.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지원 조례의 폐지를 앞두고 날마다 투쟁이 이어지고 있던 중이었다. 시설과 관련된 법인에서 일하는 옛 동료들을 투쟁의 거리에서 처음 만난 날이었다. 사회적 참사로 돌아가신 장애인과 가족의 빈소가 차려진 농성장 앞에서 시설 측 사람들은 신나게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실낱같이 남아있던 사회복지 조직에 대한 실망 때문인지, 엄청난 분노 때문인지 모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집회 중에 지나가는 시민들은 나를 위로하려는지 굳이 붙잡고 말을 건넨다. 자신은 탈시설 조례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말했다. “그래서 시설에서 나오면 알아서 살겠다는 거지요? 집이랑 돈을 달라는 건 아니죠?”라고 나의 답변을 기다린다. 행정이나 의회는 장애인이 시설 밖을 나오는 것은 위험하다며 묵묵부답으로 탈시설 조례 폐지를 강행했다.

이런 폭풍이 몰아치는 세계 속에서 탈시설당사자의 발언을 들을 때 힘이 나서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은 탈시설당사자의 발언이 쏟아져 나온 그 자리에 박재된 느낌이 들었다. 탈시설한 지 15년이 된 당사자가 탈시설 조례가 폐지되는 것을 염려하며 보내준 발언문을 대독하게 된 날이었다.

“아무런 삶의 의미가, 자유가 없는,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시설 안에서, 누군가가 당신에게 손을 내밀면 꼭 잡아주세요. 그러면 어느덧 우리 모두에게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겁니다. 그 사람이 내미는 손을 뿌리치지 말아 주세요.”

그 말은 내 손을 뿌리치지 않는 말이었다. 시설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괴로웠던 나에게는 구원 같은 말이었다.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해방시켜 주는 힘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난 이후로는 폭풍 같이 비난과 혐오의 말이 들려오는 자리에서 서게 될 때마다 그 말씀이 생각난다. 한 자리에 뿌리내린 식물들처럼 흔들려도 그 자리에서 자랄 수 있게 된 것 같다.

당사자는 이 말을 누구보다 작고 담담한 목소리로 건넸다. 탈시설하기 어려운 초대형시설에서 나와, 서울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를 향해 오랫동안 투쟁해 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지금도 변하지 않으려는 사회를 안타까워하셨다. 지금은 누구보다 꿈꾸는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그분의 삶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벚꽃이 피는 때가 되면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풍류를 나누길 좋아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올해도 제대로 흔들릴 힘을 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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